마을만들기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참여를 중심으로 마을의 일상생활환경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해나가는 주민 주도의 활동을 의미한다. 본고에서는 한국의 마을만들기와는 조금 다른 일본의 마을만들기의 개념과 함께 일부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지역 개발에서의 주민참여의 중요성과 지역 속에서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
고자 한다.

○  한국의 마을만들기와 일본의 마치즈쿠리

마을만들기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 스스로가 마을의 일상생활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개선해나가는 것으로, 주민참여를 통해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문화·경제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는 주민참여를 통해 침체되어가는 마을의 분위기를 개선하고 마을에 활력을 어넣기 위한 사업으로 이해되며, 지방자치제도하에서 매우 요한 사업으로 인식된다.

한국의 마을만들기 또한 상술한 바와 같은 맥락 속에서 ‘도시재생’의 관점으로 이해되어 왔다. 도심지로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침체된 마을의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마을의 명물을 개발하거나, 귀농하는 젊은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기존의 공공 주도의 재개발 사업 등과는 다른 방법으로 도시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한편 일본에서는 ‘마치즈쿠리(まちづくり)’라는 이름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마을을 뜻하는 まち(마치)와 만들기를 뜻하는 づくり(즈쿠리)의 합성어로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마치즈쿠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마치즈쿠리 조례’를 마련하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지역주민 모두의 참여와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강조되는 한편, 지역의 모든 구성원이 살기 좋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환경 조성을 지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눈여겨 볼 부분은 조례 내용에 ‘도시재생’에 대한, 즉 도시 부흥에 대한 관점이 언급되지 않고, 보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든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내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또 하나의 용어가 있는 점을 통해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치오코시(まちおこし)’이다. 마치오코시는 まち(마치, 마을)과 おこし(오코시, 일으키다)의 합성어로 한국어로는 ‘마을 일으키기’ 혹은 ‘마을부흥’ 정도의 의미가 된다. 마치오코시는 마치즈쿠리처럼 문장으로 체계화된 개념은 아니지만 경제적 측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마치즈쿠리와는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두 용어 모두 완전히 통일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아래 [표]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표] 마치즈쿠리와 마치오코시의 비교

  마치즈쿠리 마치오코시
참여 주체 지역주민 지역주민
주요 목표 살기 좋은 지역 지역 활성화
주요 관점

지역의 역사와 풍토

배리어프리, 유니버셜 디자인

지역의 경제적 발전

지역 산업 부흥 및 일자리 창출

주요 내용 지역 특색을 중시한 마을 지역 특산물 개발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마치즈쿠리가 더욱 종합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오코시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일본의 마치즈쿠리는 한국의 마을만들기에 비해 ‘웰빙’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아동복지 및 노인복지 관점에서의 마치즈쿠리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 아동복지 관점에서의 마치즈쿠리 ‘고치 어린이 펀드’

고치현 고치시( 高知県 高知市)에서는 2012년부터 ‘고치 어린이 펀드(こうちこどもファンド)’를 통한 저출산 관점에서의 마치즈쿠리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가 살기 좋은 마을을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마련된 이 펀드에는 18세 이하의 어린이만 참여할 수 있고, 펀드의 최종 결재 또한 초등학생 3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고치 어린이 펀드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데, 첫 번째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지역에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들의 개선 방안을 제시·실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체성을 가지고 지역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마을의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어린이 주민참여를 통해 이들과 관련된 주변 어른들의 지역 과제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 어린이의 보호자 등 주변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지역 과제 해결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다세대 교류는 지역활동을 활성화 시킬 뿐 아니라 어린이에게는 배움과 깨달음을 통한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진정으로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의 관점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제시된 아이디어를 마치즈쿠리에 반영함으로써 어린이뿐 아니라 모두가 살기 편한 지역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고치 어린이 펀드를 통해 이루어진 일부 기획을 살펴보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토삿코 타운(とさっ子タウン)’이 있다. 토삿코 타운은 약 250명 정도의 아이들이 시에서 제공하는 건물에서 직접 작은 마을(사회)를 형성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그 속에서 일을 하여 돈을 받고, 세금을 내고, 선거
로 시장·의원을 뽑는 등 활동을 통해 사회 구조를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활동은 총 2일 동안 시의 관계자 및 어른 자원봉사자의 도움 속에서 이루어지며, 보호자의 참여는 참관조차도 금지되고 어른의 조언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외에 ‘어린이 여름 축제의 기획’, ‘소방서에 어린이 벽화 그리기’, ‘지역 문화재를 위한 안내판 작성 및 설치’, ‘지역 청소 및 꽃 심기 어린이 단체 결성’, ‘재난 시 피난 구역의 안내판 설치 및 청소’ 등의 활동이 어린이들만의 참가로 심사 및 결정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 노인복지 관점에서의 마치즈쿠리, ‘고지카라 마을’

아이치현 나가쿠테시( )에서는 3만3000m² 정도의 부지를 활용하여 ‘고지카라 마을(ゴジカラ村)’이라는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에 둘러싸인 이곳에는 노인홈, 주간보호 서비스, 그룹홈, 유치원, 어린이집, 복지전문학교 등 약 26개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 외에도 마을 안에는 카페나 잡화점 등이 있어 마을 안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지역 주민들도 편하게 출입이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마을의 이름인 ‘고지카라’는 ‘5시부터(五時から)’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퇴근하는 5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불편하더라도 천천히 하나하나 대충대충 이루어나가자는 마을의 이념이 담겨있다. 이런 이념에 맞춰서인지 시간 감각을 잊게 만드는 수많은 나무 사이에 성된 이 마을의 구조는 독특하다. 앞서 언급한 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서 있으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세대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한 예로 ‘모리비토상(杜人さん)’이라는 이름의 단기보호시설 2층에는 누구나 이용 가능한 카페가 운영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시설 이용자 가족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이자카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이 시설 바로 옆에는 어린이집 ‘코로폿쿠루(コロポックル)’가 위치하고 있어,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자연스레 카페 이용객, 어린이집의 아이들과 교류하게 된다.

고지카라 마을은 기본적으로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노인을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마을을 구성하고 조성하는 ‘주민참여의 주체’로 인식한다. 주로 시설에입소해 있는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논의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에 필요한 새로운 시설들이 하나하나 들어섰다. 현재는 단순히 마을만들기를 위한 논의에 그치지 않고 ‘키네즈카 쉐어링부(きねづかシェアリング部)’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정년 은퇴한 ‘마을 주민’들이 현역 시절의 전문 분야를 활용해 관련된 강의를 열거나,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 주민참여와 지역복지

지금까지 일본의 두 지자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치즈쿠리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각 사례를 아동과 노인이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구분하였으나, 실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주민참여를 통한 활동은 단순히 아동복지와 노인복지를 넘어 지역 구성원 모두의 ‘웰빙’에 초점이 맞춰진 형태로 상호 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 주민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마을 정책에는 단순히 행정 기관에 의한 일방적인 정책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이 있고, 그 속에는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사랑과 온기가 느껴진다.

한국의 마을만들기는 일본의 마치즈쿠리보다는 마치오코시에 가까운 개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최근 ‘경제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는 관점에서 마치즈쿠리보다는 마치오코시에 더욱 큰 힘을 쏟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복지를 위해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 속에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지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누구나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고민해 보는 그런 한숨 돌리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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