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져, 정부, 지자체, 민간 등 다양한 주체들에 따른 지원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일본 영 케어러에 대한 정의와 실태를 다각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영 케어러 지원에 있어서 필요한 시점과 과제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영 케어러의 정의와 그 의미

일반사단법인 ‘일본 케어러 연맹’에 따르면, ‘영 케어러(Young Carer)’란 ‘가족 중에 케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어른이 맡아야 할 케어의 책임을 대신 맡아 가사, 가족 돌봄, 개호, 감정적 지지 등을 수행하는 18세 미만의 아동’을 의미한다. 또한 영 케어러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례로서 다음과 같은 10가지를 들고 있다.

 +) 일본 영 케어러에 해당하는 10가지 사례 
① 장애나 질병이 있는 가족을 대신해 장 보기, 요리, 청소, 빨래 등 가사를 맡음
② 가족을 대신해 나이가 어린 형제를 돌봄
③ 장애나 질병이 있는 형제의 돌봄을 수행함
④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가족이 있고 곁에서 계속 지원함
⑤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위한 통역을 수행함
⑥ 가계를 꾸리기 위해 노동을 하고, 장애나 질병이 있는 가족을 돕고 있음
⑦ 알코올, 약물, 도박 관련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에 대응함
⑧ 암, 난치병, 정신질환 등 만성적 질병이 있는 가족을 간병함
⑨ 장애나 질병이 있는 가족의 신변을 돌봄
⑩ 장애나 질병이 있는 가족의 목욕, 배변 개호를 함.

어린이가정청은 일본 케어러 연맹의 영 케어러 정의와 10가지 구체적 사례를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며, 2024년 국회에 제출 예정인 영 케어러 관련 법안에서는 영 케어러 지원이 연령에 따라 단절되지 않도록 법정 지원 대상 연령을 18세 이상 청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 케어러라는 용어가 도입되기 이전에 일본에서 주로 사용되어 왔던 유사 용어로는 ‘가족개호자’라는 용어가 있다. 영 케어러 연구자 사이토 마오에 따르면, 가족개호자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주로 고령자나 장애인에 대한 개호로 이미 지나 내용이 한정되기 쉬우나, 영 케어러 용어를 사용할 경우, 식사 준비나 빨래 등 가사를 포함한 가족 내부의 케어 실태를 보다 폭넓게 가시화할 수 있으며, 성장 발달의 중요한 시기인 아동·청년기의 특성을 고려하여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전국 조사를 통해 본 영 케어러의 생활 실태와 과제

일본에서는 2016년 무렵부터 오사카부, 사이타마현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규모의 영 케어러 실태 조사가 수행된 이후, 2021~2022년에는 초·중·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 규모의 영 케어러 실태 조사가 두 차례에 걸쳐 실행되었다. 이하에서는 전국 규모의 영 케어러 실태 조사(이하 ‘전국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영 케어러의 생활 실태와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국 조사에 따르면, 영 케어러의 출현율은 초등학교 6학년 6.5%, 중학교 2학년 5.7%, 고등학교 2학년 중 전일제(평일 주간 수업 6~8시간, 3년제)는 4.1%, 정시제(야간 등 특별 시간대 수업 약 4시간, 4년제)는 8.5%, 통신제(통신 수업 위주, 3~4년제)는 11.0%, 대학교 3학년 6.2%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의 경우 약 6% 내외 비율로 영 케어러가 존재하고 있으며, 고등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유형에 따라 영 케어러 출현율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통신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유 및 전일제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유에 관한 자유기술식 응답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가족 돌봄 때문에’라고 대답한 학생들이 있으며, 가족 돌봄이 고등학교 진로 설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학교 3학년의 경우, 취학 전(9.3%) 혹은 초등학교(19.5%) 시기부터 장기간 가족 돌봄을 수행해 온 영 케어러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영 케어러의 생활 실태에 있어서 초·중·고 전 학령에 걸쳐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첫째, 초·중·고 전 학령에 걸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케어 대상자는 ‘형제자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배경에는 전국 조사부터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나이 어린 가족의 돌봄’을 처음으로 케어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 있다. 특히 초등학생 영케어러의 경우 70% 이상이 형제자매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영 케어러 학생의 경우, 영 케어러가 아닌 학생에 비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에 해당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고, 지각이나 조퇴,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고 등교하거나 기한 내에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게 나타나는 등  가족 돌봄이 학교 생활의 여러 면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 케어러 중에서는 가족 돌봄 시간이 길어질수록 건강 및 학교 생활면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고충을 느끼는 비중이 높아지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음’, ‘학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음’ 등 대인관계 면에 있어서 고립 상황에 놓이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본인이 영 케어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기술식 답변에는 ‘조사를 통해 자기 자신이 영 케어러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라고 응답한 학생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한편, 영 케어러의 케어 내용이나 고충은 케어 대상자의 속성이나 가구 형태(한부모가정, 양부모 가정 등), 경제적 수준 등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면밀한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지원자의 관점에서 본 영 케어러의 생활 실태와 지원 과제

필자는 현재 사이타마현을 거점으로 ‘생활곤궁자 자립지원 제도’의 아동학습·생활지원사업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전개 중인 ‘채색의 나라 아동·청년지원네트워크’에서 지원자로서 활동 중이다. 이 단체의 사업 내용에 대해서는 본지 2022년 8월호에 소개한 바 있다. 본 단체가 2021년에 지원한 초·중·고교생 아동 8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회수율 82.0%, 분석 대상 722명)에 따르면, 취약계층 아동 7명 중1명(14.1%), 생활보호수급가구 아동 4명 중 1명(24.4%)이 영 케어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대적 빈곤층의 경우, 일과 가정 양립으로 육체적,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한부모가정이 많고, 보호자가 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으로 임금 노동 뿐만 아니라 가사나 아이 돌봄 등 가정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 케어러의 출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원 대상인 영 케어러 중에는 비슷한 또래 아동들이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충족하는 자기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참으며 살아온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의 현장 경험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고 일상적으로 케어 역할을 수행하는 빈곤층 아동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살아온 영 케어러들이 자신의 욕구를 형성하고 표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오랜 기간 자신의 처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자라온 영 케어러의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심정을 언어로써 알기 쉽게 타인에게 설명하는 데 서툰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영 케어러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은 내담을 전제로 한 상담 지원의 확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교나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고립되기 쉬운 영 케어러들을 위해 그들이 안심하고 머무르며 관계성을 넓힐 수 있는 이바쇼(居場所) 만들기를 추진하여 다기관 연계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영 케어러의 경우, 지원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완만한 관계성을 구축·유지하며,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 가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욕구가 형성되고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원자의 입장에서 긴 시간 동안 일상적으로 돌봄을 수행하는 등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영 케어러일수록 이바쇼가 마련되더라도 참가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기적 가정 방문이나 SNS 등을 활용한 소통과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가정 방문이나 연락이 사생활 간섭이나 통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이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한번 가보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신뢰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영 케어러 혹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가족 돌봄 아동·청년이라는 용어의 정의에는 아동·청년기의 가족 돌봄이 ‘아동·청년의 성장·발달, 기회(Life Chance)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제3자의 가치판단이 반영된다. 때문에 영 케어러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의도치 않게 당사자들에 대한 낙인 혹은 고정관념을 형성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가 부정적인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영 케어러가 희생자나 피해자로서 표상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영 케어러들이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우려가 있다.영 케어러에게 있어서 소중한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일’인 동시에 많은 고충과 불이익이 따르는 ‘벗어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 케어러 지원에 있어서는 영 케어러 당사자들이 떠안고 있는 양가감정과 상황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면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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