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어린이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행정기관으로서 2023년 4월에 새롭게 출범한 어린이가정청에서는 어린이정책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를 설정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일본 어린이 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이바쇼의 의미와 이바쇼 만들기의 사회적 배경, 정책 동향, 과제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 ‘이바쇼(居場所)’의 의미와 사회적 배경

‘이바쇼’는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모호한 일본어 고유의 용어로써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의를 거쳐 정립된 개념이다. 2011년부터 생활보호수급가구를 대상으로 사회적 이바쇼 만들기 지원 사업을 추진해 온 후생노동성의 정의에 따르면, ‘이바쇼’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최근 2023년 3월에 내각관방 어린이가정청설립준비실이 공표한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에 관한 조사 연구 보고서’(이하 ‘어린이 이바쇼 연구 보고서’)에서는 선행연구 106건의 분석을 통해 어린이·청년 이바쇼의 구성 요소로서 아래와 같이 총 13가지 요소를 추출하였다. 

♣ 어린이· 청년 이바쇼의 13가지 구성 요소
① 어린이·청년이 안심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곳
② 어린이·청년이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으며, 그 모습이 수용되는 곳
③ 어린이·청년이 자신의 기분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곳
④ 어린이·청년이 자기긍정감을 가질 수 있는 곳
⑤ 어린이·청년이 자신의 역할을 느끼며, 자기유용감을 가질 수 있는 곳
⑥ 어린이·청년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
⑦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성이 펼쳐져 가는 곳
⑧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배움이 있는 곳
⑨ 연령에 따른 단절 없이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
⑩ 어린이· 청년이 주체인 곳
⑪ 언제든지 자유롭게 혼자서 갈 수 있는 곳
⑫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
⑬ 어린이·청년의 편이 되어 주는 어른이 있는 곳

최근 일본사회에서 어린이를 위한 이바쇼가 요구되는 배경은 현대사회의 사회구조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사회는 도시화, 핵가족화에 따라 공동체의식이 희박해지고, 이웃 주민 간의 교류와 협력의 장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어린이들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정은 경제의 불안정화로 인해 생활 기반이 흔들리고 가족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양육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고립 육아나 아동 학대 등 다양한 문제들이 가정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학우들 간의 협동과 배려보다는 경쟁과 이기는 것이 더욱 강조되는 일본 교육 환경은 교내 이지메를 심화시키는 사회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최근 일본에서는 가정과 학교를 이바쇼라고 느끼지 못하는 어린이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가정과 학교 이외에 제3의 사회적 이바쇼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추진되고 있다.

 

○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의 정책 동향

일본에서 어린이 이바쇼에 대한 논의가 처음 시작된 시기는 1980년대부터이다. 이때에는 주로 교육학 분야에서 부등교 상황에 놓여있는 어린이들의 학교를 대신할 장소로서 이바쇼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으며, 그 후, 사회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등 다양한 분야로 이바쇼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확대되었다.

어린이정책에서는 2011년에 후생노동성이 생활보호수급 가구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이바쇼 만들기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이바쇼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2014년에는 ‘아동빈곤대책추진법’이 시행되어 빈곤가정의 어린이와 ‘아동복지법’에 근거한 지원대상아동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이바쇼 만들기 사업이 실행되었다.최근 2023년 4월 기존 내각부와 후생노동성의 어린이정책 업무를 일원화하

여 내각총리대신 직속 행정기관으로 출범한 어린이가정청은 내부조직으로 어린이성육국(子ども成育局)을 두고 있는데 어린이성육국의 핵심 정책 과제 중 하나로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가 선정되었다. 2022년 8월부터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 검토 위원회의 다섯 차례에 걸친 논의와 어린이들의 의견 청취를 위한 다양한 조사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향후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에 관한 지침’(가칭) 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의 현황과 과제

2023년 3월 발표된 어린이 이바쇼 연구 보고서에서는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에 있어서 중요시해야 할 3가지 시점으로서 ‘있고 싶다’, ‘가고 싶다’, ‘해보고 싶다’를 제시하고 있다. ‘있고 싶다’는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 곳, 평가하지 않는 곳, 내 편이 되어주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써 어린이들이 있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며, ‘가고 싶다’는 어린이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언제든 마음 편히 가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해보고 싶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곳, 새로운 배움이 있는 곳, 미래를 생각할 기회가 있는 곳으로서의 이바쇼를 뜻한다.

이바쇼는 대상 범위나 기능 등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분류된다. 어린이 이바쇼 연구 보고서에서는 대상 범위를 기준으로 보편적 접근, 선별적 접근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보편적 접근은 대상자를 한정하지 않고 모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며, 선별적 접근은 특정 욕구를 가진 어린이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보편적 접근 방식에서의 이바쇼는 어린이와 지역 주민들 간의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중시하며, 선별적 접근 방식에서의 이바쇼는 어린이 개개인의 니즈에 따라 세밀한 지원을 제공하는 기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상 범위에 따른 이바쇼의 종류는 표1과 같다.

[표1] 대상 범위에 따른 어린이 이바쇼의 분류
[표1] 대상 범위에 따른 어린이 이바쇼의 분류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 정책의 향후 과제로는 크게 5가지의 내용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 과제는 어린이·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린이·청년의 시점에 입각해서 이바쇼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이바쇼에 있어서 지원의 질을 제고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바쇼에서 활동하는 직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 강화, 직원에 대한 케어와 슈퍼비전을 제공하기 위한 체제 정비, 관계 기관 간의 네트워크 구축 등이 제시되었다. 세 번째 과제는 지역사회 내의 이바쇼를 조정(coordinate)할 인재의 확보 및 육성을 위한 지원이다. 이는 어린이들 각자의 욕구에 맞는 이바쇼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네 번째 과제는 이바쇼 만들기를 실행하는 단체들에게 질 높고 안정적인 이바쇼 운영을 지원하는 중간지원단체에 대한 지원이다. 다섯 번째 과제는 민관 역할 분담이다. 지금까지 지역사회 내에서 민간단체들이 수행해 온 역할과 주체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욕구를 가진 어린이·청년에 대해서는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민관 간 역할이 적절히 조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으로 일본 어린이가정청이 새롭게 추진을 준비 중인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 정책은 그동안 각 지역사회에서 주로 민간 주도하에 산발적으로 수행되어 온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의 공통된 이념과 시점, 구성 요소를 명확히 하고,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부 주도로 새롭게 추진될 어린이 이바쇼 만들기 정책이 어린이들의 삶의 질과 행복 증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향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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