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공영방송 ABC 뉴스의 부편집장인 바네사 블라이코비치(Vanessa Vlajkovic)는 시력과 청력을 모두 상실한 어셔 증후군(Usher syndrome) 여성 장애인이다. 올해 26세인 그는 생후 9개월이었을 때 시력 80% 상실을 진단받았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보청기로도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촉각 수화를 할 수 있는 통역사를 통해 수화를 손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휴대전화와 태블릿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브레일리언트(Brailliant)라는 기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 사용한다면서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산소 같은 기술’이라고 말한다.

시청각 장애, 균형장애 동반하는 어셔 증후군

어셔 증후군은 전 세계적으로 약 4000명 중 1명에게 나타나는 질환으로 200만 명 이상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 실명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는 어셔 증후군은 부분적 또는 전체 청력과 시력 상실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유전성 희귀질환으로서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각각의 유형은 청력 손실의 심각성, 균형 문제의 유무, 증상이 나타나는 나이로 진단한다.

제1형 증후군을 가진 대부분은 중증 난청을 가지고 태어나며, 어린 나이에 색소성 망막염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는 몸의 균형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남보다 늦게 앉거나 걷기 시작하고,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제2형은 태어날 때부터 난청을 가지고 있으며, 청소년기 또는 성인기에 점진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 제2형 어셔 증후군은 제1형, 제3형과는 달리 균형 장애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3형 환자는 다소 늦은 나이에 청력 상실과 시력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제1형, 제2형과 달리 제3형 증후군은 태어날 때 아무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어 능력이 발달한 후기 아동기 또는 청소년기에 난청이 시작되며, 색소성 망막염으로 인한 시력 상실이 따라온다. 일부 사람들은 몸의 균형에 문제를 보이기도 한다.

유전성 질환이 아니더라도 청력과 시력을 동시에 상실하는 이중 감각 상실 발생률은 나이가 들수록 크게 증가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85세 이상 인구 중 청력과 시력 상실 유병률은 각각 81%, 41%였으며, 청력과 시력이 모두 저하된 이중감각 상실 유병률은 36%에 달했다. 특히 요양원에 있는 노인의 이중 감각 장애 유병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50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한 이중 감각 상실 연구에서는 유병률이 4.6~9.7%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으며, 호주 정부는 2050년에 이중 감각 상실 인구가 최대 16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어셔 증후군과 함께 살아가기

※ 출처 : SENSES AUSTRALIA 촉각 수화

이중 장애를 가졌지만 바네사 블라이코비치 씨는 애완동물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고, 치어리딩, 체조, 축구, 테니스, 하키와 같은 운동도 즐긴다. 음악을 듣지 않고 어떻게 춤을 추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는 모든 것이 촉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답한다.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다른 학생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면서 자신이 외롭고, 무가치하고, 사람들이 그녀의 장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바네사와 같은 어셔 증후군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는 촉각이다. 그들은 다양한 표면을 쓰다듬음으로써 사람이나 사물뿐만 아니라 주변 방이나 풍경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한 장애인은 촉각, 후각, 예리한 상상력, 그리고 ‘내면의 눈’을 통해 겨울아침의 공기나 얼어붙은 풍경의 황홀한 분위기 등 시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감지한다고 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주변 사람들은 어셔 증후군 장애인에 대한 두 가지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네사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든 그들도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성인이 된 후 어셔 증후군이 발병한 한 은퇴 교사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그에게 누군가가 입고 있는 옷의 천을 만져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향기나 머리카락의 질감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면서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팔짱을 끼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촉각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손과 손끝을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햇빛을 느끼는 머리 꼭대기 감각부터 거리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느끼는 발의 촉감까지 촉각은 우리 몸의 모든 측면을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다양한 환경과 공간의 특성을 인식하고 정신적 지도를 만드는 데 발로 느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셔 증후군 장애인 지원, 실태는?

호주에는 어셔 증후군 장애인을 돕는 많은 단체가 있다. 이 중 어셔 증후군을 가진 아동의 부모들로 구성된 ‘어셔키즈 호주(UsherKids Australi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호주 아동 청각장애에 관한 연구는 아동의 특성과 요구를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난청을 정의, 평가 그리고 진단하는 데 있어 연구자들 간에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이 단체는 청각장애 아동의 요구 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통일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어셔 증후군 장애인에게 최상의 치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료 임상의, 특히 청각학자, 검안사, 그리고 정형외과 의사와 같은 다양한 의료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최근 빅토리아 주 교육부가 전문 교사 정책을 변경하여 어셔 증후군 장애 학생을 위한 청각, 시각 장애 전문 방문 교사 지원을 축소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방문 교사는 감각 장애가 있는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최신 모범 사례를 학교에 적용하여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개별 학생의 필요에 맞는 전략과 도구를 교사와 학교에 추천하여 학생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지원해 왔다. 어셔키즈는 교육부의 정책 변경이 ‘모든 장애인이 인간의 잠재력과 존엄성, 자존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평생 학습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UN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 교사가 없으면 어셔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학생들은 청각과 시력 상실로 인해 학습과정 접근성이 떨어져 또래보다 뒤처지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어셔 증후군 장애인을 돕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도 활발하다. ‘어셔 증후군 연합(the Usher Syndrome Coalition)’은 전 세계 어셔 증후군 커뮤니티의 핵심으로 어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증후군에 대한 더 나은 이해, 삶의 질 향상, 치료와 관리를 위한 여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어셔 증후군을 앓고 있는 개인은 글로벌 유전자 이니셔티브인 ‘레어엑스(RARE-X)’에서 제공하는 어셔 증후군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 보안 플랫폼에 입력된 건강 정보는 개인정보가 제거된 상태로 전 세계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어셔증후군과 관련된 시력, 청력 상실 및 균형 문제에 대한 임상시험과 치료법 개발에 쓰인다. 또한 전 세계 어셔 증후군 환자와 개인이 활발히 소통하는 여러 소셜 미디어도 있으며, 연합에서 직접 관리하는 폐쇄형 커뮤니티도 있다.

 

치료방법 없는 어셔 증후군, 호주 정부 어떻게 지원하나?

어셔 증후군 치료는 시력과 청력 그리고 균형 문제를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어셔 증후군을 포함한 유전성 망막 질환 대부분은 현재로서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 치료와 줄기세포 기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 곧 임상시험도 예정되어 있어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이들을 위해 인공와우, 보청기, 수화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의사소통 기술 훈련도 제공한다. 균형 문제 관리를 위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프로그램도 있다. 이중 감각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한 보조기기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의미 있는 일상생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촉각 점자 판독기, 돋보기, 스크린 리더, 주변 소음을 제거해 소리를 더 뚜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히어링 루프 시스템, 보청기 등이 있으며, 음성 인식 샤워기와 수도꼭지도 개발되어 있다.

어셔 증후군이 아니더라도 이중 감각 상실은 당사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노인의 경우 건강 악화, 신체적 쇠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겪거나 예기치 않은 돌봄 역할을 맡게 되는 등 달라진 삶에 적응해야 하는 생애과제를 안고 있는 데 더해 감각 상실이라는 어려움까지 가중되면서 다른 노인에 비해 신체적·사회적 활동이 더욱 위축된다. 삶의 변화와 함께 시력·청력 장애를 동시에 마주하게 됐을 때,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청기를 착용했다고 해서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보청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셔 증후군과 같이 이중 감각 상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과 함께 활동할 때는 이런 점을 미리 인식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지원·격려하기 위해 힘쓰고,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도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도 함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노인의 시력·청력 상실은 노화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겨져 도움을 요청해도 필요한 지원을 받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첨단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관련 전문가도 늘어나고 있는 만큼 더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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