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호주 멜버른의 한 부부가 2022년 1월부터 10월 까지 8개월 동안 영어가 서투른 여성 피해자에게 ‘강압과 협박’을 통해 가사 노동을 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해자를 진찰한 의료진의 신고로 알려진 이 사건은 호주 사회에 현대판 노예가 얼마나 흔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줬다. 피해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 여성 이주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대우하며 자유를 제한할 때 발생한다. 국제노동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 명이 현대판 노예 상태에 처해 있다면서 그중 약 4만 명이 호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였다.

전문가들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서 현대판 노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부채의 늪에 빠져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근로자, 국내외에서 결혼을 강요당하는 젊은 여성과 소녀, 직장이나 보호시설에서 착취당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농장, 상점 그리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종종 현대판 노예제도의 희생양이 되고 있고, 농업, 미용, 청소 등의 산업 현장에서도 현대판 노예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는 현대판 노예를 근절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여러 국가 중의 하나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2018년 전 세계 최초로 현대판 노예 방지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현대판 노예로 일하는 사람들의 수는 2018년 1만5000명에서 2023년 4만 명 이상으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 현대판 노예란 무엇인가?

현대판 노예는 협박이나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으며 일을 강요당하거나 빚이나 재정적 속박에 갇혀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이동의 자유와 발언권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종종 상품으로 거래되며,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노예 상태에 갇힌 사람들의 70%이상이 여성과 소녀일 정도로 현대판 노예제도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성차별 등 사람들을 현대판 노예의 위험에 노출하는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대규모 인구 이동,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식수, 식량 등 기본적인 생필품 공급 부족, 높은 인구 증가율, 그리고 현대판 노예의 낮은 인건비는 착취에 취약하고 일회용적인 인구의 증가를 더욱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상품화된 사람들의 강제 노동은 비용 효율성에 매달리고 있는 많은 기업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들은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제품을 생산·가공하고, 건설, 접객업부터 불법 성 노동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산업과 기타 경제의 숨겨진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현대판 노예의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가격, 편의성과 같은 요소를 소비 선택의 우선순위로 삼는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현대판 노예제도를 영속화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다.

호주 인권단체 워크 프리(Work Free)가 발표한 2023년 세계노예지수는 전 세계 160개 국가들이 현대판 노예 제도에 취약한 정도를 잘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북한이 인구 10명당 1명에 해당하는 약 270만 명이 ‘현대판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 지수는 현대판 노예제가 모든 지역과 국가에 존재하지만 노예제가 나타나는 방식은 인구 내 취약 집단의 규모와 분포, 정부가 취약성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가부장적 견해가 성 불평등과 차별로 이어지는 국가에서는 강제 결혼이 만연해 있었다. 이런 나라는 여성이 토지를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 시행 중이거나 18세를 최소 결혼 연령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없어서 여성에 대한 차별수준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이주민 인구가 많고 이들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없는 국가일수록 강제 노동이 더 만연해 있었다.

강제 노동은 주로 저소득 국가에서 많이 발견되지만 이는 고소득 국가의 수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원자재 조달에서 제조, 포장과 운송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불투명한 공급망 곳곳이 강제 노동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G20 국가들이 수입한 상품 중 약 600조 원 상당이 현대판 노예들의 기여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가전제품, 의류, 팜유, 태양열 발전판, 그리고 섬유류였다. 이 조사는 한국과 호주가 중국, 방글라데시, 브라질,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수입한 약 25조 원 상당의상품이 현대판 노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 현대판 노예제, 호주 정부는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

전 세계 거의 모든 정부가 국내법과 정책을 통해 현대판 노예제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8년 이후 큰 진전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판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책임이지만 법률을 제정하고, 국민을 위한 안전망을 제공하며, 이러한 끔찍한 범죄에 가담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과 같은 중심적인 역할은 정부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분쟁 그리고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세계적인 도전으로 인해 현대판 노예 문제 에서 자원과 관심이 멀어진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호주 정부의 현대판 노예 근절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호주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부(富)수준에 걸맞게 현대판 노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비교적 강력하다. 인신매매, 노예제, 노역 및 강제 노동 포함을 포함한 노예와 유사한 모든 형태로 나타나는 현대판 노예제를 범죄화했으며, 지난해에는 1930년 제정된 후 2014년 개정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의정서를 비준하기도 했다. 노예제도의 피해자들은 법원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비디오 링크 또는 녹화를 통해 증거 자료나 피해자 영향 진술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현대판 노예 피해자와 관련된 증인의 호주 체류를 보장하기 위한 비자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호주는 특히 정부 및 기업 공급망에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2018년 제정된 ‘현대판 노예법’은 연간 연결 매출액이 우리 돈 약 900억 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기업 운영 및 공급망에서 현대판 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도록 의무화했다.

최근 로레인 핀레이 연방 인권위원장은 착취 노동력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처벌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납세자의 세금이 현대판 노예를 이용해 만든 제품과 서비스에 지출되는 것을 막고, 현대판 노예 생존자들을 노예제도 폐지 운동의 중심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 관련 증인의 호주 체류는 경찰의 협력이 필요하고, 현대판 노예 생존자가 범죄자의 통제하에 있는 동안 벌인 행동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생존자를 위한 국가 보상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16세 미만 아동과 관련된 모든 결혼이 범죄로 규정되어 있지만 16세 또는 17세 아동의 결혼은 여전히 법원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질 수 있는 등 입법 체계의 공백도 남아있다.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 호주로 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관련 법률개정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 사회복지사와 의료종사자가 빈 틈 메울 수 있어

이러한 현실에서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사와 의료종사자들이 정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현대판 노예제도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와 의료종사자들은 종종 인신매매 피해자와 생존자가 가장 먼저 접촉하는 사람들이며, 사후관리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대판 노예제 근절을 위해 의료종사자들의 협력도 필수라고 말한다. 최근 발표된 국제 연구에 따르면 인신매매 피해자 5명 중 4명이 착취당하는 동안 의료종사자와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료종사자와의 접촉을 현대판 노예를 찾아내고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제공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 역시 향후 3년 동안 의료종사자들이 잠재적인 현대판 노예 피해자를 만났을 때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돕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자유네트워크(Global Freedom Network, GFN)는 모든 형태의 현대판 노예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모임이다. 이 네트워크는 2014년 바티칸에서 열린 종교지도자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 행사에서 ‘현대판 노예제 반대 종교 지도자 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설립되었다. 그 이후로 GFN은 전 세계로 확장하여 현대판 노예가 만연한 국가에서 피해자와 법집행기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종교지도자, 정부, 사회복지사, 피해자 지원 단체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여러 국제적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누구나 현대판 노예제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는 어느 한 개인, 단체의 노력과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누군가는 현대판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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