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006년 UN인구 포럼에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수치이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명 이하를 나타냈다. 그의 경고가 우려를 넘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호주에서도 출산율 저하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1961년 여성 1인당 3.55명이던 호주의 합계출산율은 1976년 2.06명으로 급격히 떨어지면서 해외 인구 유입 없이 안정적인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출산 대체율 2.1명을 밑돌기 시작했고, 2020년에는 1.59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2021년에는 1.7명으로 3년 만에 소폭 반등했다.

 

호주국립대, ‘정부 정책이 출산율에 긍정적 영향 미친다’

이런 가운데 2022년 3월,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ANU)는 인구 센터(Centre for Population)의 의뢰를 받아 ‘정책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호주의 출산 추세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정부의 정책이 출산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연구다. 이 보고서에서는 호주 출산율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여성들이 첫 아이를 출산하는 평균 연령이 높아진 것을 꼽았다. 호주 여성의 첫 출산 평균 연령은 1975년에는 25.8세였으나 2020년에는 31.6세로 높아졌다. 또한 호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함께 제시됐는데 호주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자녀를 갖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 보고서는 출산율이 거시적 수준과 미시적 수준을 포함한 여러 복합적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특히 자녀 출산에 따른 비용과 혜택, 부모에게 요구되는 생활방식에 대한 사회적 규범 등 거시적 차원의 제도적·경제적·문화적 환경이 출산 여부 결정에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면서 연령, 관계 상태, 교육 수준과 같은 미시적 요인이 거시적 요인과 상호작용하여 사람들의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다. 이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아이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글에서는 연구보고서 중 정부 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에서는 먼저 세계 각국의 정부 정책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여러 연구를 다뤘는데 이를 통해 정부의 안정적인 자녀 양육을 위한 지원 정책이 해당 국가의 출산율 향상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육아휴직과 육아수당을 통해 부모 모두의 고용 참여를 지원하는 정책과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절감하는 정책도 출산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호주의 다양한 직·간접적 출산 장려정책의 도입이나 변화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호주 가계, 소득 및 노동 역학(Household, Income and Labor Dynamics in Australia, 이하 HILDA) 설문조사’ 데이터도 사용됐다. 분석 대상으로 삼은 정책은 출산 장려금 및 가족 세제 혜택과 같은 재정적 인센티브, 유급 육아휴직 도입 등이었으며, 출산 경험, 출산 욕구, 계획하고 있는 자녀 수, 다음 자녀 출산 예정 시기 등 여러 출산 관련 지표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주요 정부 정책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① 재정적 인센티브: 아동 부양 수당(Baby Bonus), 가족 세제 혜택(Family Tax Benefit) 

OECD 각국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부모에게 장·단기적, 보편적·선별적, 첫 출산 아동만을 또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등 다양한 기준과 형태에 따라 아동 부양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원금이 출산율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녀 양육에 드는 총 비용에 비해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기 때문에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분석된다.
호주는 가족 세제 혜택 형태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일반적으로 2주에 한 번씩 지급되며, 지급률은 대상 자녀 수와 가족의 합산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HILD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4년 추진된 가족 세제 혜택 개혁으로 혜택이 확대되면서 부모들의 계획 자녀수가 0.13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 부양 수당은 자녀를 출산하거나 입양한 후 제공되는 세금 감면 혜택으로 일시불로 지급하는 지원금과 13주간 분할 지급하는 지원금 두 가지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HILDA 데이터 분석 결과, 가족 세제 혜택 도입으로 호주의 출산율은 약 2%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첫 자녀 출산율은 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보고서는 재정적 인센티브가 출산 경험이 없는 부모가 첫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을 앞당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② 육아휴직(Parental Leave)

OECD 각국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정책은 기간, 소득대체율 등이 나라마다 상당히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국가에서는 여성의 유급 육아휴직이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데 비해 남성 육아 휴직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거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이는 육아휴직이 도입된 사회적 맥락과 국가별 성 역할 관념 등 문화적 차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호주 정부는 2011년 어머니를 위한 정부 지원 유급 육아휴직을 도입했으며, 2013년에는 아버지 및 파트너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호주 정부의 유급 육아휴직 정책에 대한 HILD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정책 도입으로 평균 출생아 수가 약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실제로 출산이 늘어나는 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족 세제 혜택과는 달리 이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와 처음 자녀를 가지려는 부모 모두에게서 출산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됨에 따라 유급 육아휴직은 자녀 유무에 관계 없이 모든 부모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저출산 정책임을 시사한다.

 

③ 아동 보육(Child care)

부모들에게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보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책은 일과 가정의 양립 수준을 높여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OECD국가들은 보육을 공적으로 제공하는지, 민간 시장 기반으로 제공하는지 등 보육 정책의 종류와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호주 정부는 보육 보조금(Child Care Subsidy)을 통해 각 가정에 보육 비용을 지원한다. 보육 보조금은 기존 보육 수당과 보육 환급금을 대체하는 형태로 2018년 도입됐다.

2021-22년 예산에서는 가정에 지급되는 보육 보조금 비율을 높이기 위해 보육 보조금 정책이 일부 수정됐으며, 지급액의 연간 상한선도 없앴다. 다만 문헌 연구를 통해서는 보육 서비스 제공 증가가 출산율, 특히 첫 출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HILDA 분석을 통해서는 보육 정책의 변화와 지원금 이체 체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호주 보육 보조금 정책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할 수 없었다.

 

2023-24년, 출산율과 관련된 정책적 이슈

호주에서는 새로운 회계연도인 2023년 7월부터 연구보고서를 통해 검토되었던 네 가지 정책 중 유급 육아휴직과 보육 보조금 제도에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지난 3월 새로운 ‘유급 육아휴직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부모 중 누구라도 20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행 유급 육아휴직의 경우, 부모 중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18주, 그리고 파트너에게는 2주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2026년까지 유급 육아휴직을 26주까지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는 방침이지만 일각에서는 OECD 여러 국가들에 비해 호주가 계속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목표를 상향 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법은 2023년 7월 이후 자녀를 출산하거나 입양한 부모에게 적용된다.

현재 집권당인 노동당은 작년 총선 기간 중 공약으로 보육 보조금 제도의 개혁을 내세운 바 있다. 7월부터 보육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가구 소득 상한선이 연 35만6756호주달러에서 53만 호주달러로 인상되며, 보조금의 상한액은 85%에서 90%로 인상된다. 가구 연소득이 8만 호주달러 이하인 경우에는 90% 전액을, 8만 호주달러를 초과할 경우에는 5000호주달러마다 1%씩 감소하며, 53만 호주달러 이상인 가구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36만2408호주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5세 이하의 자녀를 한 명 이상 돌보고 있는 가정은 둘째 이후자녀에 대해 더 높은 요율이 적용된다.

호주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에서의 연구 결과와 관련 정책에 대한 개선은 16년간 280조 원을 쓰고도 출산율이 더 줄어든 우리나라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콜먼 교수의 지적처럼 국가가 양육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일관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더불어 복지정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가족 친화적 업무 환경 조성, 성 평등 의식 개선 등 국민 모두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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