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뜰 Village Dream-UP 프로젝트
‘마을 변화의 원동력은 주민의 힘’

거제시 능포에 위치한 옥명마을은 1900년대 초반 농어촌마을이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마을공동체가 형성된 곳이었다. 1980년대 들어 근방에 조선소가 들어오면서 도시는 산업화되었고, 조선소 터에 있던 사람들이 옥명마을로 이주하면서 이주 마을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옥명마을은 조선소의 배후마을로 마을공동체의 정체성을 잃고, 단순한 일반주거지로 구획이 나뉘었다. 그 과정에서 마을은 쇠락하고, 인구는 노령화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아온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자녀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 청년층의 외부 유출이 심했다.

옥명, 다시 시작해 봄

2020년, 새뜰 Village Dream-UP 프로젝트(이하 ‘새뜰 빌드업 프로젝트’)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옥명마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대상으로 생활인프라 확충과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새뜰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한국서부발전, 국토교통부가 함께 새뜰마을사업 선정 지역을 대상으로 마을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사업모델을 지원하는 것이 새뜰 빌드업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추진 이후 마을에서는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내자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하드웨어 개선만이 아닌, 마을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자는 흐름이었다. 마을의 정체성을 재정립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문패와 꽃그림 우편함
문패와 꽃그림 우편함

프로젝트에 선정된 거제YMCA 남희정 사무총장은 처음에 마을에서 어떤 사업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마을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고, 새 이름으로 마을을 브랜드화해 주민 스스로 마을에서의 삶을 긍정하고, 마을에 다시 애착을 갖기를 바랐다. 마을 정체성의 재형성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대한 답은 마을 브랜드화였다.

생각이 정리된 다음 마을을 둘러봤다. 꽃이 많았다. 장미공원, 수변공원, 특히 해안도로를 낀 벚꽃길이 정말 아름다웠다. 꽃들로 굽이진 지형이 마을을 따뜻하게 품고 있었다.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정체성 형성의 경로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꽃들을 접하고 있었다. 꽃이라는 화두는 정했지만, 막연하게 주민들에게 “이제부터 여기는 꽃마을이에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설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꽃을 시각화해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꽃마을을 형상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만들고 싶었다.

지붕 위, 아래 프로젝트로 마을을 잇다

먼저 지붕 위 프로젝트로 마을 내 집 옥상에 폭염 대비 쿨루프를 시공했다. 옥상을 내어주기 위해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집을 개방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쿨루프 시공은 마을 주민의 마음을 열고 연결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다음은 지붕 아래 이야기다. ‘마실 가는 날’을 지정해 3개월 동안 13가구 주민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을 전체 가구의 10%를 만나는 중요한 시간이었고, 마을주민의 공동체 의식을 도모할 수 있었다. 주민 인터뷰 결과 꽃을 접하는 경험이 마을에 대한 긍정적인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꽃은 마을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익숙하고 구체적인 주제이기에, ‘꽃마을’을 키워드로 주민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려 했다.

인터뷰에 기반해 사람과 집과 꽃을 연결해 각양각색의 제목 있는 문패와 꽃그림 우편함, 그리고 엽서통신을 만들었다. 엽서통신 제작을 위해 인터뷰 전사 자료를 거제시에 있는 청년 작가에게 발송해 글과 사진을 바탕으로 이미지화를 부탁했다. 이미지와 인터뷰 핵심 내용으로 마을 소식을 담은 13권의 엽서통신을 발행했다. 엽서통신은 코로나19 비대면 시대에 큰 역할을 했다. SNS 상으로 거제 시민들에게 구독 신청을 받아 엽서통신을 발송했고, 이후 지역을 찾아오는 팬들이 많아졌다. 마을 안과 밖의 연결이었다.

코로나19로 주민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지만 꽃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는 과정은 계속됐다. 엽서통신을 가지고 오면 마을카페 이용권을 주는 형태로 마을주민과 만나는 날을 정해 3일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업을 왜 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종의 간담회였다.

옥명마켓
옥명마켓

‘옥명 꽃마을 새로, 봄’이라는 이름으로 옥명마을 주민과 거제시민이 참여해 빈집과 장미카페 등을 새롭게 단장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장미카페, 마을빈집, 골목길 등을 새롭게 단장하고, 빈집을 꽃마켓으로 꾸며 소규모 꽃마을 축제도 열었다. 2021년 4월, 창동예술촌 김경련 대표가 옥명마을에 찾아와 취약했던 골목을 예술촌으로 만든 경험 사례에 대해 강연했다. 주민들의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한 관심이 확장됐고, 꽃을 문화적으로 사업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동안의 마을사업을 시각화하여 전시회도 열었다. 꽃으로 만들어진 옥명마을을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해 한눈에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전시회 일정에 맞춰 ‘옥명,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마을 이야기 책자도 발간했다. 마을잡지 형식으로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춘 이미지 책자였다. 한권한권 꽃갈피를 꽂아 보따리로 포장해 어르신들께 선물했다. 정성이 깃든 결과물이었다.

옥명꽃마을 두 번째 이야기

2020년 9월부터 이어진 사업으로 마을의 정체성을 재형성하고, 실현하는 일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거제 YMCA, 옥명마을, 경남에너지협동조합, 거제시청, 도시재생지원센터, 사회적기업지원센터 등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꽃마켓, 마을꽃축제, 골목정원을 통해 꽃마을이라는 마을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이제 다음 과제는 마을의 정체성을 주민들의 힘으로 지속하는 일이다.

꽃다발 만들기 교육
꽃다발 만들기 교육

2021년 9월부터 시작된 2차 프로젝트의 핵심은 주민 주도로 옥명꽃마을 브랜드화 하기. 꽃마을 브랜드화의 핵심 목표를 △주민역량강화 △변화경험 제공 △주민공간 마련으로 정했다. 주민역량강화 과정에서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교육을 진행했다. 단순히 주민이 교육받는 것만으로 주민 주도가 실현되지는 않는다. 마을 곳곳에 주민이 자신만의 실험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고, 주민 사이의 협력을 위한 기반이 조성되어야 한다.

옥명 고사리 화분
옥명 고사리 화분

주민 주도 활동은 ‘옥명꽃마을’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해 브랜드에 도착했다. 꽃마을 브랜드화를 위한 주민교육을 다채롭게 진행했다. 농산물 가공 판매 교육, 꽃다발 만들기 교육 등을 통해 마을 텃밭작물이 상품으로 변화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예쁜 로고 스티커가 붙은 옥명표 고춧가루, 옥명 유자, 옥명 고사리 화분 등이 탄생했다. 주민들은 상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내놓았다. 20여개 가량의 마을 상품이 판매된 마을마켓에는 마을주민과 거제시민 300여명이 다녀갔다. 브랜드의 지속적인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옥명 고춧가루
옥명 고춧가루

다음 고민은 ‘공간’에 대한 갈망이었다. 주민들을 날마다 만나고 모여서 활동하는데 적절한 공간이 없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마땅치 않았다. 마을회관을 탈바꿈하기로 했다. 썰렁했던 회관 2층을 무대 형식으로 개조해 ‘옥명살롱’을 만들었다. 무대를 활용해 문화공연, 시 낭독회 등을 열었고, 평소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이 메뉴를 고민해 꽃차, 꽃떡, 견과류칩을 담은 다과세트도 만들었다. 옥명살롱이 옥명꽃마을에 새로움 숨결을 불어넣었다.

마을에서의 변화는 더디다. 외부에서 찾아온 전문가들 시선에서 주민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그러나 주민이 가진 힘은 강력하다. 옥명꽃마을의 2021 새뜰빌드업은 마을의 변화가 곧 주민의 변화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마켓 운영을 통해 주민들이 변화를 경험하고, 이 경험은 마을에 마련된 주민 거점 공간에 모여 축적되며, 다시 마을에 스며들어 마을의 변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된다. 앞으로도 주민들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어, 옥명꽃마을 브랜드화를 실현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옥명살롱 문화공연
옥명살롱 문화공연

2021 새뜰 Village Dream-UP 프로젝트는?

새뜰 빌드업 프로젝트는 한국서부발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함께 주민참여를 통한 마을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 민관협력 사업이다. 2020년 11월 6일 국토교통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한국서부발전,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의 새뜰마을 사업지 중 8개 마을을 선정해 지원했다.

지난달 28일, 프로젝트 추진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성과보고회가 열렸다. 2021년 9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2차년도 새뜰 빌드업 프로젝트 수행기관에는 사업비 3000만원과 맞춤형 컨설팅, 교육 등 연속적인 피드백이 제공됐으며, 수행기관별로 각 마을의 상황에 맞는 솔루션을 전개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8개 마을의 수행기관 중 지난해에 이어 2회차 사업에 참여한 거제, 안동, 전주 3개 마을은 1회차 사업을 통해 발견한 마을의 변화 가능성을 모델링하고, 외부의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이러한 모델이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자리잡는 것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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