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한 인간에게 거대한 재난과 같다. 치매가 죽음보다도 두렵다는 노인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치매는 노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의학으로도 증상의 진행을 늦추거나 완화시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치료수단이 없고, 다른 사람의 돌봄을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기에 느끼는 죄책감이 크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영국을 구성하는 4개국 중에서도 선제적인 치매정책을 펼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국가치매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북아일랜드가 통합된 국가로 각 지방정부는 지역별 특성에 맞는 치매전략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세계 최초로 국가치매전략을 수립한 국가이며, 치매경로에 따른 통합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영국의 지방자치정부 중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보다 더 높은 치매 조기진단율을 보이고 있다. 국가치매전략을 5년마다 작성하는 잉글랜드와 달리 3년마다 세우고 있는 스코틀랜드는 매우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영국 내 다른 지방정부에 비해 노인 정책에 있어서 급진적이며, 유일하게 무료 대인서비스와 간호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이렇듯 치매전략에 새로운 도전과 의미 있는 길을 걷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치매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스코틀랜드 국가치매전략 도입배경

노인장기요양, 특히 치매에 관한 문제가 사회화된 계기는 블레어정부의 서덜랜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1997년 출범한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부는 1998년 사회적 서비스에 관한 개혁을 단행했다. 1999년 서덜랜드를 위원장으로 한 장기요양보호에 관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Long-Term Care)는 노인 돌봄 비용을 생활비, 주거비용 및 개인 간병비로 구분해야 하며, 특히 간병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어야 하고, 세금으로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영국 정부가 암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통해 무료로 치료하는 것처럼 치매 환자도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영국 의회는 무료 대인서비스와 간호서비스 도입 제안을 거부했으나 스코틀랜드 의회는 이 권고를 받아 들여 2001년 「지역사회관리 및 건강법」(Community Care and Health (Scotland) Act)을 도입하고, 2002년부터 무료대인·간호서비스(Free Personal and Nursing Care)를 시행했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달리 무료 대인·간호서비스를 통해 사회서비스 접근성에 장애를 없앴다.

이러한 움직임은 치매노인에 대한 접근이 의료적 모델에 서 사회적 모델로 변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 수발자가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특히 의료서비스와 사회서비스의 차별이 철폐되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스코틀랜드의 치매인구는 2023년 현재 약 9만 명으로 향후 25년간 그 수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국가치매전략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2010년 1차 국가치매전략 이후 매 3년마다 치매전략을 세웠고, 2017년에는 3차 치매전략을 발표하였다.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치매에 걸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불균형한 영향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COVID-19 액션 플랜’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올해 5월에는 4차 국가치매전략인 ‘Everyone’s Story’를 발표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 스코틀랜드 4차 국가치매전략의 비전

스코틀랜드 정부는 지금까지 시행되었던 국가치매전략을 바탕으로 치매를 직접 경험해온 노인과 보호자, 치매전문가들의 기록을 분석하여 향후 10년간의 비전을 담은 국가치매전략, ‘Everyone’s Story’를 개발하고 올해 5월 31일 발표했다. 이는 스코틀랜드의 네 번째 국가 치매 전략이다.

‘Everyone’s Story’에서는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경험할 수 있는지,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과 서비스는 무엇인지, 치매노인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비전 등을 제시하면서 치매 노인의 낙인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 과제로 강조하고 있다. 기존 국가치매전략과의 핵심적인 차이는 치매 환자와 돌봄 종사자들이 학술 연구에 정보를 제공하고 설계 단계를 포함한 연구 과정 전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스코틀랜드 정부는 연구 및 학술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지원할 것을 명시했다. 치매노인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조치를 포함한 2년간의 구체적인 서비스 전달 계획은 올 연말까지 개발하고 합의되어 2024-25년에 첫 시행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4차 국가치매전략 ‘Everyone’s Story’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핵심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 치매는 공중보건과 실무영역에서 사람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질병으로 인식된다.
• 정책 입안자, 지원 및 서비스 제공자, 지역사회 및 사회구성원 모두가 치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예방 및 조기 발견의 중요성 포함)
• 치매 환자와 보호자/돌봄 종사자가 항시 고품질의 의료 정보 및 조언, 증거 기반 치료, 관리 및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형평성을 보장한다.
• 치매환자와 보호자의 인권은 질병기간 내내 보장되도록 한다.
• 치매환자들은 교육 및 훈련을 통해 숙련되고 지식이 풍부한 치매 전문가와 인력들의 지속적 지원을 받는다.

 

○ 스코틀랜드 4차 국가치매전략의 원칙

스코틀랜드 정부는 4차 치매전략 ‘Everyone’s Story’를 개발하면서 스코틀랜드 전역의 치매환자들을 기록하고 분석했고, 이를 통해 중독과 치매의 연관성,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감각상실자들이 겪는 문제, 학습장애나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치매 치료활동에서 느끼는 소외감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치매에 걸린 사람의 65%가 여성이며, 연령적 요인을 넘어 여성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이유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치매전략을 시행할 때 이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또한 소수 민족이 치매치료 접근에 대해 불평등을 겪고 있는 사회적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확고히 하였다.

따라서 스코틀랜드 정부는 4차 치매전략을 통해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및 추가적인 장애에 관계없이 치매 관한 참여, 진단, 치료, 지원 및 돌봄에 대한 구조적 장벽을 최소화하면서 평등 문제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4차 국가치매전략을 통해 ‘파킨슨병과 다운증후군 또는 학습장애자, 소수민족,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 청각 또는 시각 장애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및 성전환자 등 치매 치료에 접근성이 낮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포용을 촉진’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우선순위로 삼을 것을 공표하였다.

• 치매전략이 추가적인 건강상 문제에 직면한 그룹에 미치는 영향 관찰
• 치매에 대한 증거와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정보 제공
• 치매전략의 영향에 대한 데이터 수집, 분석 및 게시
• 치매전략이 제공하고자 하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
• 인권 증진과 유지를 위한 노력

 

○ 스코틀랜드 4차 국가치매전략 활성화를 위한 종사자 교육훈련

특히 스코틀랜드 정부는 이번 치매전략을 통해 치매관련 종사자 교육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들의 업무환경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치매에 대한 교육훈련에 대하여 ‘당장의 필요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구통계학적으로 예측되는 변화를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미래에 필요한 교육훈련 지원 계획 수립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치매관련 교육은 치매환자들과 그들의 돌봄 파트너들의 권리를 보호하며, 낙인 문제 해결, 포용 촉진, 사회활동에 대한 참여, 치매에 대한 태도와 행동 변화에 기여한다. 따라서 치매에 대한 치료, 관리 및 지원을 제공하는 관련 종사자들은 치매 증상과 경험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직·간접적인 복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인 치매 교육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정부는 효율적인 교육훈련을 위해 △진단 후 지원(PDS)과 관련하여 종사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 △인권 및 권리에 기반한 실천 △관련 종사자의 안녕과 심리적 안정 확보 △자살, 고통, 위험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정신건강 및 복지 증진 △관리 환경 전반에 걸친 스트레스 및 괴로움 증상의 식별 및 관리 △실무적 개선을 통한 종사자들의 역량향상을 권고한다.스코틀랜드는 치매전략이 단순한 권고사항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

기 위해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통한 서비스 전달을 실행하고 있다. 특히 인간중심케어 모델의 구체적 실행을 위해 치매인들의 권리헌장을 발표했고, 스코틀랜드의 치매치료와 돌봄의 기준을 마련해 병원, 요양시설, 치매관련 서비스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한 치매인과 가족에게 치매 치료 기준 가이드를 제시하여 스스로 권리를 인식하고, 이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나라의 치매관리대책의 흐름도 스코틀랜드와 대동소이하게 발전해 오고 있지만 아쉬운 것은 치매인과 가족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가 많지 않고, 여전히 치매인이 최대한 지역사회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치매인에 대한 인간중심케어 실천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국가치매전략과 우리나라의 치매대책 간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시작은 인권존중 인식을 치매정책에 잘 녹여내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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