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 세계는 기대 수명 증가와 출산율 감소로 인해 인구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더욱 오래 살고 있으며, 전체 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과 수 모두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영국 정부도 노인들의 건강 및 돌봄에 대한 욕구를 적절하게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가 8억2700만 명으로 향후 30년 동안 15억 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세계적이고 돌이킬 수 없다.(Walker and Maltby, 2012)’ 특히 영국처럼 조세에 의한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갖춘 경우, 노인 인구 증가는 의료비에 대한 과중한 조세 부담과 직결되므로 고령화 이슈는 항상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다.

보다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의 고령화를 한국과의 비교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영국의 2022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총인구의 19%로 한국의 17.5%에 비해 높은 수준이지만 고령화 진행속도는 한국에 비해서는 완만한 편이다. 한국은 2018년에 처음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 인구의 14% 이상인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하였으나 영국은 1976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약 45년이 지난 현재에도 1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 고령인구 비중이 2025년 20%, 2036년 30%, 2051년 40%로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달리 영국에서는 2026년 20%, 2036년 23.9%, 2046년 24.7%로 매우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인구 증가는 영국 내에서도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자리잡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고령인구는 의료 및 돌봄 영역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인구의 고령화와 변화하는 인구 구조는 국가 및 지역 차원의 의료 보장 부문에 기회와 도전을 모두 가져올 것이며, 이에 따라 노인들을 위한 적절한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장기요양서비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노인 돌봄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돌봄은 흔히 ‘단기요양’과 ‘장기요양’의 두 가지 넓은 범주로 나뉜다. 단기요양이란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는 개인의 독립성을 극대화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비스 시간에 제한이 있는 돌봄 패키지를 말한다. 장기요양서비스는 지속적으로 제공되며, 간호 등 치료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서비스부터 지역사회에 적응을 돕기 위한 서비스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지원된다.

이 외에도 우애방문원(Friendly Visitor)은 특정 시간에 방문하여 노인의 동반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노인을 위한 상담심리치료 및 대화를 통해 노인의 정신적 건강을 책임진다. 또한 노인 교통서비스를 제공해 독자적으로 운전할 수 없는 노인들의 모든 예약 진료와 그들이 계획한 모임이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동을 돕는다. 특히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권을 극대화시킨 ‘현금 급여’가 중요한 장기요양정책으로 채택되어 확산됐다. 현금 급여는 일반 자유시장의 고객처럼 이용자가 지급된 현금 급여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인들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서비스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보건의료와 사회서비스 정책 전반은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욕구 사정, 서비스 계획 수립 및 진행 등 거의 모든 절차는 지방정부에서 이루어진다. 중앙정부는 운영관리 전반을 지원하며, 지방정부가 장기요양기관, 급여비용 심사 지급 등 제도 운영의 책임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영국 장기요양서비스의 특징

영국 베버리지 모델은 정부의 소득세 납부 정책을 기반으로 하여 영국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모델에서는 정부가 단일 지급인으로서 경제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료 분야의 경쟁을 줄이고, 진료비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이 자국민에게 거의 100% 무료 의료를 보장하는 영국 국가보건의료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해서는 민간 시장에 의존하는 방식을 채택해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국 국가보건의료서비스 초기에는 노인 돌봄을 포괄하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점차 노인 돌봄 서비스를 배제하기 시작해 현재는 대부분 민간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은 노인을 위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욕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서비스 제공 주체의 개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영국은 민간 부문의 활성화와 제공 주체의 다양화를 달성했고, 이는 급증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서비스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졌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뿐 아니라 각종 돌봄서비스의 시장화 수준이 높은 영국에서는 일찍이 서비스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중요한 정책으로 발전시켰으며, 돌봄서비스의 품질 관리를 위한 제도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은 사회보호조사위원회(CSCI, Commission Social Care Inspection)라는 사회적 돌봄을 감독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각 종류의 케어서비스가 ‘전국 최저 기준(NMS-National Minimum Standards)’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서비스 보장 수준은 약화됐다. 영국 정부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시장화를 추진하면서 노인복지 예산을 낮게 책정하자 각 지자체가 평가 단계에서 서비스 이용 자격을 높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비용 효율성을 고려해 이전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증상이 가벼운 노인들은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하는 타깃형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영국에서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장기요양서비스의 보장 수준을 높이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 장기요양정책에 주는 시사점

영국 장기요양서비스는 시장화로 인해 서비스 제공 주체가 다변화되고 시장 규모 또한 확대되었지만 보수적 예산 운용으로 인해 서비스 수급자격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보장성이 축소되거나 소폭 상승에 그쳐 점차 이용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서비스 품질이 일부 개선되기도 했지만 이는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이 같은 영국의 경험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정책적인 시사점을 준다. 물론 영국은 오래전부터 복지국가를 발전시켜왔고, 고령화에 대응해서 노인장기요양시스템을 구축한 선진국으로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고령화에 대응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민간 세력과 시장 메커니즘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인프라를 확충했고, 한편으로는 시장화의 각종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도 있다. 이를 고려한 양국의 경험은 우리나라에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첫째,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과 비용 감축을 도모하면서도 보장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시장화를 통해 보장성은 축소했지만 중증 노인에게 서비스 공급량을 대폭 늘려왔다. 우리나라가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시장화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민간 서비스 제공에 따른 관리비용 감축 등 시장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활용하되 보장성을 높여 장기요양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노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 정부의 시장화 추진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시장화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정부가 맡아야 할 역할마저 민간 영역에 떠넘기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영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서비스의 질은 시장에 맡겨 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담보되지 않는다.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존중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정부의 다각적인 개입과 감독을 통해 서비스 품질 개선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