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새 정부의 등장과 함께 한국형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정부는 한국형 복지가 획일적인 퍼주기가 아닌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역동적 복지’, 무차별적인 지원이 아닌 국민 개개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형 복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지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호주 역시 복지제도 개혁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최근 호주가 발표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육아수당제도 개혁 방안을 보면 한국과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제도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지수혜자에게 지워졌던 의무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호주는 왜 이런 결정을 하려는 것일까?

 

육아 수당과 페런츠넥스트(ParentsNext) 프로그램

육아 수당은 호주의 대표적인 복지제도 중 하나다. 자녀의 수와 나이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1자녀의 경우 최대 주당 한화 약 17만원 정도를 받을  있다. 페런츠넥스트(ParentsNext)는 이 수당을 받는 부모가 학업이나 취업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모들이 자녀가 취학연령이 되었을 때 취업이나 추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와 자신감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육아 수당을 받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이 프로그램 참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부모들의 경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육아 수당 지급이 중지될 수도 있다.

페런츠넥스트 프로그램의 참가 기준은 생후 9개월~6세 미만의 자녀를 둔 55세 미만 부모 중 육아 수당을 받으면서 6개월 이상 일을 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다음 3가지 조건 중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다. △만22세 미만이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경우 △만22세 이상,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으며 최소 2년 동안 소득 지원을 받는 경우 △만22세 이상이며 4년 이상 소득 지원을 받는 경우

이 프로그램은 비영리단체, 커뮤니티 그룹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 업체에서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 제공업체는 참가자들의 형편을 고려해 그들을 위한 맞춤형 진로 계획을 개발한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이력서 작성, 면접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직업훈련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며, 직장 면접에 참여할 경우 자녀 돌봄이나 교통편도 지원받는다.

하지만 참가자는 3개월마다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학습 또는 육아 관련 활동과 같은 정기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복지 지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부모는 약 10만명으로 이 중 95%정도가 여성이고, 75%는 한부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한 해 한화 약 4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런츠넥스트에 대한 비판적 시각 

부모들의 자립 능력을 키우겠다는 정책 의도와는 다르게 이 제도는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프로그램이 한부모에게 낙인을 찍고 일이나 공부에 대한 동기 가 없는 ‘복지 의존자’라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개인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지 않으며, 요건과 기대치가 너무 엄격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는 규정 미준수에 대한 금전적 벌칙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부 비평가들은 복합적인 도움이 필요한 취약한 참가자에게는 가혹하고 불균형적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프로그램이 참여자의 고용과 교육 성과를 높인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제한적이고, 시골이나 외딴 지역에 거주하거나 교통편이 불편한 참가자의 경우, 프로그램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자격 기준을 충족하지 않거나 너무 어린 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 추천됐다는 불만 사례도 나왔다.

이런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재평가하고 변경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호주 연방의회는 지난 2021년 프로그램 개혁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줄리언 힐 노동당 하원의원이 이끄는 위원회는 2023년 2월에 이 프로그램 개혁을 위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우선 이 프로그램이 “10대 청소년 부모와 미혼모를 돕고자 했던 초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모를 지원하기 위한 이런 프로그램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이 징벌적 프레임에 갇혀 있으며, 순기능에 비해 너무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러면서 호주 복지제도의 뿌리 중 하나인 상호 의무 준수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프로그램이 요구한 사항을 실천하지 못한 참가자에게 육아 수당을 전액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바꿔 일부만 잠정적으로 보류하도록 하는 것이 한 예다. 그리고 3세 미만의 자녀를 둔 부모를 의무 참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새로운 프로그램도 제안했다. 특히 생후 9개월의 어린 자녀를 둔 일부 부모를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은 “가부장적이고 완전히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참가자 자율성 높인 ‘기술 패스포트’ 수당 신설

의무 규정을 완화하는 것과 함께 참가자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수당을 신설하기도 했다. 참가자가 어디에 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연간 최대 90만원 한도의 ‘기술 패스포트’가 그것이다. 참가자들은 이 수당을 서비스 기관이 아닌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기술 향상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복지 수혜자에게도 일정한 의무를 지우는 상호의무 원칙을 일부 완화한 위원회의 새로운 제안은 복지제도 개혁에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학계와 전국 미혼모협의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제도가 완전히 자발적이고 강제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주어지든 의무로서 지켜야 하는 요구사항은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것. 특히 학대적인 관계에서 탈출한 여성들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있고, 양육 활동에 대해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자녀가 9개월이 될 때부터 부모들이 다시 일하도록 설계된 것은 무급 돌봄 노동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실업자가 되기를 선택했고, 복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래의 직업 결과에 관심이 없다는 잘못된 가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위원회가 보고서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평가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정부는 부모가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참여를 달성하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도덕적 명령이자 경제적 우선순위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를 적극적으로 양육할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부유한 부모에게만 주어져서는 안 된다.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부모들에게 어린 자녀의 양육보다 미래의 직업을 준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은 보살핌에 대한 매우 가부장적인 견해이며, 가족과 어린이 요구의 엄청난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