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의 인구 구조를 보면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인 상황으로 오래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고령인구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인 돌봄의 부재, 사회적 비용의 증가 등 여러 사회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인 인구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치매노인에 대한 지원 논의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본고에서는 치매노인의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제도를 통해 일본의 노인복지의 실태, 나아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높은 고령인구 비율과 늘어나는 치매노인

2022년 기준, 일본의 고령인구 비율은 29.1%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5년이라는 빠른 시기에 총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초고령사회에 진입, 현재까지 전 세계 1위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UN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인구 비율을 추월할 예정인 한국의 경우, 2022년 기준 17.5%로 아직까지는 일본과 비교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일본은 현재 만100세가 넘는 노인도 9만명이 넘는 상황으로 단순히 양적으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그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치매는 흔히 노인들에게서만 관찰되는 노인 질환의 일종으로 생활습관병과 함께 건강한 노인기를 영위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노인복지의 중요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치매를 크게 ‘알츠하이머형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로 구분하고 있으며, 각각 67.6%, 19.5%, 4.3%, 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천천히 진행되며 조기 발견이 중요한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치매 유병률은 2020년을 기준으로 약 17.2%이며, 2025년에는 20.6%까지 증가해 노인 인구 5명 중 1명이 치매노인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치매노인을 둘러싼 사회문제와 의사결정에 관한 이슈

치매노인의 증가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 크게는 노인 돌봄의 부재, 사회적 비용의 증가 등을 손꼽는다. 치매노인 지원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일본의 개호보험에서는 늘어나는 치매노인으로 인한 비용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장기요양 등급의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일종의 재택 중심 정책을 통해 노인시설의 대기인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반대로 수많은 치매노인들이 치매노인 돌봄의 경험이 없는 가정 내에 머물게 되며, 역으로 돌봄의 책임이 가족에 전가된 형태가 되어 새로운 사회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인시설의 포화로 인해 가족이 원치 않는 재택 돌봄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서 노인학대의 문제가 대두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인의 권리가 침해, 그 중에서도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당사자가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노인의 의사결정에 관련된 침해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치매노인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재택 돌봄을 위한 다양한 교육 정책과 가이드라인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의료와 연계한 형태로 노인의 치매가 진행되어 본인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ACP 제도이다.

 

재택 중심 정책…노인학대 등 인권문제 야기

ACP는 ‘Advanced Care Planning’의 약자로 ‘사전의(Advanced)’, ‘돌봄, 배려, 의료, 간호, 요양 등 각종 케어(Care)’, ‘계획 세우기(Planning)’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개념은 2018년에 이루어진 ‘인생의 최종 단계에 대한 의료 결정 과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4차 개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기존에는 복지와 의료의 연계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단순한 임종기 노인의 의사결정을 위한 지원에 국한되지 않고, 당사자의 치매가 진행됨에 따라 재택 요양부터 시설 요양으로 넘어갈 경우에 시설에서의 생활이 재택 생활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까지 포괄하게 됐다.

현재의 ACP는 ‘노인이 장래에 병이 걸리거나 돌봄이 필요해졌을 경우, 앞으로도 지키고 싶은 생활습관, 누구와 함께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희망하는 의료 및 복지 서비스의 형태 등을 사전에 상의하여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들은 ACP에 관한 안내문과 노인의 의사결정을 실제로 기입하는 메모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ACP는 노인 당사자와 가족 및 의료·복지 관계자와의 상의를 통해 작성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ACP 작성 과정은 ‘인생 회의’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작성된 ACP의 내용은 법적 효력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정부 차원에서 ACP의 일반화를 위해 의료 및 복지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이를 바탕으로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비단 의료 영역에서의 환자가 의료 서비스의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경우 이에 관한 환자의 바람을 기록하는 ‘사전지시의료서’와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ACP는 단순히 서비스 결정에 대한 내용에 국한되지 않으며 노인 당사자의 생활습관, 생활환경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또한 인생 회의라는 과정 속에서 단순히 본인의 희망 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가족 및 전문가와의 상의를 통해 작성된 내용이기 때문에 이를 적용하기 위한 현실성 또한 사전지시의료서보다 높다는 견해도 있다. 나아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작성하는 사전지시의료서와는 달리 ACP는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여 상시 원하는 타이밍에 작성할 수 있다. 그 내용 또한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추후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어 당사자가 더욱 심사숙고해 결정한 내용을 지원 내용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체적인 작성 내용에 대한 제약은 없으나 각 지자체에서는 메모장을 함께 배부함으로써 ACP에 특정 내용을 포함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은 예시로 도쿄도에서 배부하고 있는 책자에 기재된 항목들이며, 이를 작성함에 있어 ‘자신의 인생관 및 가치관’을 반영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또한 주변인과 상의하며 메모를 작성하거나 작성 후에 반드시 주변인에게 내용을 공유, 정기적으로 내용을 읽고 상황에 따라 내용을 변경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그림] 도쿄도 ACP 메모 항목
[그림] 도쿄도 ACP 메모 항목

 

ACP 제도의 한계와 과제
이렇게 점차 제도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 ACP이지만 여전히 다양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먼저 당사자가 비협조적일 경우 ACP의 작성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일본의 노인 세대는 이러한 미래 결정에 관해 가족 및 주변인과 상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며, 특히 남성의 경우 가부장적 리더십 성향이 강한 탓으로 자신의 생각을 남과 공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거나 자신의 결정이 남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제도로서의 연계가 불충분하다는 문제도 있다. 비록 각 의료 및 복지기관에 협력을 요청해둔 상황이나, 예를 들어 당사자가 이용하는 시설을 변경하였거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할 경우, 원활히 ACP의 내용이 다음 기관에 인계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한 대응으로 지역 내 관계기관들이 ACP를 열람하고 변경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법적 효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현재는 실질적으로 기관이 이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에도 어떠한 보호조치 혹은 명령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노인의 의사결정이 어려워진 상황에는 여전히 보호자의 결정권이 우선시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ACP의 내용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굳이 치매노인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노화로 인한 뇌기능 저하는 노인기의 의사결정 능력을 현저히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결국 노인, 본인이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의 끝맺음을 잘 하는 것은 인생의 대단원을 장식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온전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인생의 마지막 결정권을 잃는다는 것은 노인 본인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큰 두려움일 것이다. 노인의 의사결정 지원은 이러한 노인들의 불안을 경감하는 것뿐 아니라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지 한참 된 현시점에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반해 한국은 여전히 이를 생각하고 논의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의사결정의 자유란 기본권에 해당되는 문제인 만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노인의 의사결정 보장이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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