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세계로 현실과 가상의 교차점을 일컫는 ‘메타버스(metaverse)’. 메타버스 현실화·상용화에 핵심이 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VR 장비회사인 오큘러스의 창업자 팔머 럭키(Palmer Luckey)는 “과거, 전화·인터넷 이전에는 모든 의사소통이 대면방식이었다. 이제는 대부분 의사소통이 이메일과 메시징 서비스 등 디지털로 이루어진다. 만약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완전체가 될 것이다”라며 가상현실 기술 대중화를 전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사회복지서비스의 필요성 및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 미국 사회복지계에서는 가상현실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사회복지 교육에서의 가상현실 기술 활용

미국에서는 사회복지교육 차원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기존의 일방향 강의 기반 수업은 실천현장에서 공감 등 대화기술을 실습해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가상현실 기술은 교육공학 기술 중 하나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전미사회복지교육협의회(Council on Social Work Education, CSWE)의 ‘2022 교육 정책 및 인증 표준’에서는 디지털 기술 활용에 대한 문장들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사회복지 교육 및 사회복지 현장에서 기술 활용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대표적으로 9대 사회복지역량 중 하나인 ‘윤리적 그리고 전문적 행동’ 항목 마지막 문장에서는 ‘사회복지사는 디지털 기술 및 사회복지실천에서 기술의 윤리적 활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과 동시에 ‘현장실습’ 항목에서도 ‘학생들이 실습에 준비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사회복지 전공 학생들에게 사회복지 현장실습 이전에 개인, 가족, 집단, 조직 및 지역사회 실습을 포함한 모든 수준의 실습에 노출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활용했을 때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것과 현장에서 학습한 실천기술 적용 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학생들에게 실제 상황에서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기술을 연습해볼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며, 시나리오를 함께 복기해 보면서 슈퍼비전과 유사한 훈련을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패트릭 보드닉(Patrick Bordnick) 미국 툴레인대학교 사회복지대학 학장은 각종 극한 상황이 반영된 VR 실습 과정을 마련해 허리케인과 같은 재난상황에 개입하는 사회복지사를 교육하고 있다.

실제로 뉴욕대학교의 니콜라스 란지에리(Nicholas Lanzieri) 교수 연구팀은 모바일 장치와 함께 Wonda VR™과 Google Daydream 헤드셋을 사용해 360도 VR 시뮬레이션을 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복지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지역사회 맥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뮬레이션은 뉴욕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를 배경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이 VR 체험을 하면서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어떤 점을 알아챌 수 있습니까?” 혹은 “이 지역사회에서 클라이언트가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등에 대답하도록 돕는다. 연구팀은 VR 시뮬레이션을 통한 지역 조사 경험이 학생들이 단체로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에 비해 강의실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교사 및 동료 학생들과 의사소통하면서 해당 지역사회에 대한 성찰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고 보고한다. 이 시뮬레이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회복지 실천의 개념들을 더 잘 학습하고, 환경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아동복지서비스 훈련에도 VR 기술이 활용되기도 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사회복지대학의 게리 앤더슨 교수(Gary Anderson) 연구팀은 실습생이 VR 기술을 통해 사회복지 실천기술을 연습하고 현실적인 사례 시나리오를 경험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앤더슨 교수는 “아바타나 시뮬레이션 경험에 비해 가상현실 기술은 실제 인간과의 상호 작용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특히 가정방문 실습 시에는 거실 방문, 가족 구성원 인터뷰 등을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몰입적 환경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교육 경험에 재미와 놀이의 요소를 도입하여 학습에 대한 참여를 증진하는 효과도 있었다”면서 사회복지 현장실습 이전에 모의실습 형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 연구에서도 학생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으며, 사회복지 실천기술을 실습해봄으로써 학습의지가 고양되었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VR 기술을 사회복지 교육과정에 통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복지 실천현장에서의 VR 활용

교육 현장뿐 아니라 실천 현장에서도 VR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메타버스, 가상현실 기술 등이 흔히 ‘판타지 게임’으로 오해받는 것과 달리 VR 기술은 의료,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활용 범위가 커지는 것은 VR 헤드셋과 같은 장비들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대중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향후 10년간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VR 기술이 공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 실천현장과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트니 코그번(Courtney Cogburn) 컬럼비아대학교 사회복지대학 교수는 신기술 개발 및 도입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신기술이 출시되어 대중화되기 이전에 사회복지사들이 해당 기술을 직접 검토하거나 테스트 과정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한다. VR 기술과 같은 신기술이 소외된 집단 및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사회복지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VR 기술은 줌(zoom)과 같은 온라인 화상회의 기술을 넘어 보다 현실감 있는 집단 사회복지 실천을 위해 도입되고 있다. 실제로 켄터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에서는 위탁양육을 경험하고 있는 10대 대상 동료지원집단을 운영하기 위해 VR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집단 프로그램은 한 장소에 모여 진행해야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대면 모임 필요성이 낮아졌다. 또한 원격 서비스는 집에 있기를 선호하거나, 사회적 불안이 있거나,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쁜 일정이 있거나, 익명을 선호하는 참가자에게 멘토링 및 다른 동료와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ASK Teens VR’ 프로그램은 현재 위탁가정에서 양육 중인 14~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료지원 집단프로그램이다. 이중 한 그룹은 성소수자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됐다. 연구팀은 VR 기술을 활용해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성소수자 가정위탁청소년과 같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참여자를 위한 지지 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청소년뿐만 아니라 약물 남용을 경험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 가상현실 동료지원 집단프로그램이 시도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VR 동료지원 집단프로그램이 심리사회적으로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응답했으나 일부 참가자는 기술 활용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만족도는 이후 프로그램 출석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기술의 본질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사람들이 신기술을 수용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설명하는 ‘기술 수용 모델’에 따르면, 해당 기술이 개인에게 얼마나 유용하다고 여겨지는지, 해당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쉽다고 믿는지, 기술에 대해 어떤 신념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인식이 신기술 수용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상현실 혹은 원격 서비스에 대한 유용성, 용이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고, 이에 따라 점차 VR 등 기술에 대한 대중의 수용도 또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의 도입 그 자체를 목적으로 신중한 논의와 고민 없이 ‘메타버스’ 혹은 ‘가상현실’을 기존 서비스나 프로그램에 동일하게 적용하려 한다면, 새로운 기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게 될 것이다. 실제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신기술을 활용하려면, 신기술이 실제로 클라이언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지 여부, 신기술을 수단으로 하는 원격 사회복지서비스 도입 가능성과 그 전망 등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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