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캐나다, 멕시코와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선언(Declaration of North America)’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는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기후변화와 환경 △경쟁력 △이주 및 개발 △건강 △지역 안보 이상 여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 중 첫 번째인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은 미국에서 유행어(buzzword)라고 여겨질 정도로 공공 및 민간 등 다양한 조직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서 오랜 시간 동안 이에 관련된 논의가 발전해 온 미국에서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실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사회복지 교육 및 실천 현장에서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교육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미사회복지교육협의회의 대응

지난해 전미사회복지교육협의회(이하 교육협의회)는 사회복지사 양성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교과 과정을 확립하는 2022년 교육정책 및 인증표준(Educational Policy andAccreditation Standards, 이하 인증표준)을 발표했다. 교육협의회는 이번 개정안의 핵심을 ‘반인종주의,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원칙에 대한 사회복지 교육의 지속적 헌신을 확립 및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사회복지대학 및 학과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교육협의회가 제시하는 인증표준에 따라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하기에 2022년 인증표준에 따라 사회복지 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버전인 2015년 인증표준은 △프로그램미션 △명시적 커리큘럼 △암시적 커리큘럼 및 평가 이상 네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여기에 ‘반인종주의,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항목을 추가하는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프로그램 미션에서도 사회복지의 가치를 반인종주의적이고 반억압적 관점에 둔다는 점을 명시했다.

특히 반인종주의,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항목에서는 미국 사회에서 다양성을 이해하는 핵심으로 여겨져 온 ‘교차성(intersectionality)’ 관점을 강조한다. 교차성 이론은 미국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W.Crenshaw)가 1989년 처음 주장한 이후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과 경험을 이해하는 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연령, 계층, 피부색, 문화, 장애 여부, 민족, 성 정체성 및 성적지향, 이민 상태, 법적 지위, 결혼 여부, 정치 이념, 인종, 국적, 종교 등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의 차원이 서로 교차하면서 경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2022년 인증표준에서는 이 교차성 이론을 사회복지 교육에 적용하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에 대한 이해 증진을 핵심적 목표로 강조한다.

교육협의회는 또한 사회복지사의 9대 역량 중 하나로 ‘반인종주의,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 실천에 참여하는 것’을 추가했다. 사회복지사는 인종 차별과 억압이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방법과 이것이 사회복지 실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하며, 사회적·인종적 불의의 역사적 뿌리와 억압과 차별의 형태·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때 ‘문화적으로 겸손한(cultural humility)’ 태도를 통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클라이언트를 자신의 삶의 전문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겸손이란 최근 개발된 개념으로 경험보다는 학문적 지식에 기반한다는 단점이 제기되고 있는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e)’ 개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는 자신과 다른 지향의 관점을 가지고 정체성과 경험을 탐색하는 것에 대한 개방성을 의미하며, 클라이언트의 현실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말한다. 또한 문화적 겸손 개념은 끊임없이 성찰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역량과는 차이가 있다. 

 

전미사회복지사협회의 대응

2022년 1월 전미사회복지사협회(NASW)에서도 다양성·형평성·포용성과 관련한 성명문을 발표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진행하고 있다. 대럴 휠러(Darrell Wheeler) 전 전미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은 “사회정의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사회복지사를 양성하고 참여시키는데 집중해야 합니다”라며 사회복지사 조직 안팎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고려한 노력을 고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성명문에서는 “협회는 사회사업의 사명에 따라 반인종차별 단체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흑인·히스패닉·아시아계 등 유색인종들에 대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중시하겠다고 천명했다.

협회는 이에 따라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위한 사회복지사의 전문성 개발에 힘쓰고, 정부, 민간 및 비영리단체의 주요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면서 옹호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서 인종 차별, 다양성 이해 교육 등을 포함해 현직 사회복지사들이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도모하고 있다. 또한 ‘사회사업을 통한 인종 차별 해소(Undoing Racism Through SocialWork)’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사회복지 실천이 인종 차별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협회에서는 ‘흑인 역사의 달’, ‘아시아 태평양계 미국인 문화유산의 달’, ‘아메리카 원주민 유산의 달’ 등을 기념하고, 또 성소수자, 프라이드 등에 대한 성명문 및 연대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협회는 고위 간부와 중앙협회 및 지부 직원 20~25명으로 구성된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성위원회(Diversity, Equity & Inclusion Committee, DEIC)’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협회 내부의 변화를 촉진하고, 다양성 및 포용성 우선순위에 전념하며, 협회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위원회는 협회 직원을 위한 포용적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메커니즘을 연구·개발해 제안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워크숍, 토론, 친목모임 및 문화 행사를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협회 직원 간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증진하게 된다. 

 

사회복지 조직 안팎에서의 DEI 훈련 증가

현재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 및 사회서비스 제공자를 포함한 많은 조직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클라이언트의 다양성을 고려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회복지사 배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인종, 성별, 연령 등 다양한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사회복지 분야 뿐 아니라 각종 조직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훈련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컨설팅 및 교육을 제공하는 단체들이 설립되고, 컨설턴트 등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컨설팅 업체에서는 고객사의 현황에 대한 진단 및 보고서 작성, 조직 임원 및 종사자 교육, 코칭 등을 제공한다. 이 컨설팅 및 교육은 사회복지 분야 이외에도 미국의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조직들에는 사회복지사가 고용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대학에서도 사회복지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컨설팅 기관에 취업하는 진로를 안내하고 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훈련에서는 주로 특권, 정체성, 편견, 차별, 미세차별 등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이러한 훈련기관에 진출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 실천이 인 간의 존엄성과 가치, 인간관계의 중요성, 사회 정의를 핵심 가치에 기반하기 때문에 다양성·형평성·포용성 훈련을 제공하는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활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와 DEI, 그리고 사회정의

한국의 ‘사회복지사 선서문’에는 ‘사회정의의 신념’이라는 문구와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 이익을 앞세운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미국처럼 인종적 다양성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인증표준에서 제시하고 있는 연령, 계층, 피부색, 문화, 장애 여부, 민족,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 이민 상태, 법적 지위, 결혼 여부, 정치 이념, 인종, 국적, 종교 등 다양한 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주변화가 존재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의 다양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복지 실천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더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에 대응해 사회복지교육 및 보수교육 체계, 교육과정과 내용 또한 다양성을 더 포용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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