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맹학교 교단에 선 사람. 교단을 뒤로하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특수교육학 박사가 되어 시각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선생님이 된 사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이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상임대표로 활동 중인 김영일 회장을 만나봤다.

김영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김영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작년 3월 쟁쟁한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되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지 약 1년이 지났다. 그간 소감과 함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 달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는 1957년 ‘맹인들의 복지는 맹인들의 손으로’라는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되어 지난 65년 동안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복리증진과 권익옹호를 위해 활동해 온 시각장애인 당사자 단체다. 한시련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은 사단법인으로서 시·도 단위 17개 지부, 시·군·구 단위 200개 지회로 조직되어 있으며, 시각장애인 유관단체 15개, 시각장애학교 13개, 시각장애인복지관 15개 및 기타 시각장애인 유관시설 13개 등을 아우르는 26만 시각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다.

이런 단체의 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느끼고 있다. 회장의 책무는 조직 전체 구성원이 협력해 많은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고, 업무 우선순위를 잘 판단하며, 조직의 발전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임하면서 다짐한 각오나 강조한 공약은 무엇인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시각장애인과 미래 사회를 살아갈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각각 소개하고자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 간에도 삶의 기회 면에서 거주 지역에 따라 격차가 심하다. 서울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비교적 낫지만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거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특히 고령 시각장애인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복지 혜택을 포함해 삶의 기회 면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박탈당해 왔다. 시각장애로 교육을 포기해야 했고, 취업은 시도해 보지 못했으며,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노인이 되어서는 이웃 노인들이 가는 경로당도 편히 가서 어울리기 어렵다.

시각장애인의 90%는 후천성 장애인이다. 이들 증 많은 수가 제때 적절한 재활훈련을 받지 못해 시각뿐만 아니라 취업, 여가생활, 때로는 가족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51%가 65세 이상이다.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거주하면서 후천적으로 실명한 고령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 전달체계가 필요하다. 시·군·구별로 시각장애인지원센터를 만들어 어디에 살든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들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시각장애인을 위해 정보 장벽을 허물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할수록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면서 시각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더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키오스크, 즉 무인단말기다. 모두의 편리를 위해 도입된 키오스크가 시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장벽이 되고 있다. 집을 출입하는 입구에 설치된 터치패드, 집안에 설치된 월패드 등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불편을 초래하는 장벽이다. 불편을 경험하는 장애인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기술 개발 시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접근성 증진 등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는 미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무다.

 

특수교육과 교수로, 국립장애인도서관 초대관장으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첫째, 이용자 맞춤형 도서 제작 서비스를 실시했다. 시각장애인은 읽고 싶은 도서나 자료를 원하는 때 자유롭게 읽을 수 없다. 이를 ‘책 기근(book famine)’이라고도 표현한다. 시각장애인의 책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이 제작할 도서를 선정하는 것이 아닌 이용자의 신청을 받아 요구에 따라 책을 제작하는 이용자맞춤형 도서 제작 서비스를 시행했다.

둘째, 국가대체자료공유시스템인 ‘드림(DREAM)’이라는 앱을 개발했다.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부족한 것이 일차적인 문제지만 읽을 수 있는 도서 목록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 이미 제작되어 있는 책도 쉽게 검색할 수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장애인도서관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제작한 도서 목록과 원문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확인 할 수 있도록 만든 앱이 ‘드림’이다.

셋째,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지체·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기초연구와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장애인도서관이 전통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의 요구로 설치되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각장애인 이외의 장애인도 도서관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수어·자막도서, 발달장애인용 읽기 쉬운 책 등 장애유형별 대체도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장애 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도서관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장애 유형별 독서 보조기기를 공공도서관을 통해 보급하는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최우선 당면과제는?

장애인 지역사회재활시설의 하나인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를 ‘시각장애인지원센터’로 개편하는 것이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의 이동뿐만 아니라 장보기, 병원 방문, 민원 처리 등 활동지원을 병행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맹인심부름센터’로 1984년 시작된 서비스 전달체계였다. 그런데 이 시설의 명칭을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로 고치면서 이동지원 기능만 부각되어 마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른 특별교통수단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기초자치단체에서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사업을 중복 사업으로 취급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한 서비스 전달체계로 그 고유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지원센터’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 또한 이동에 중점을 둔 기능을 점자교육, 보행지도, 보조공학 훈련, 재활상담, 시각장애인에게 맞는 문화 프로그램, 고령자를 위한 쉼터 운영 등 시각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지역사회중심 서비스를 총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정책과 제도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장애 유형,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지체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 시설과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이 다르다. 정보습득에 있어서도 시각, 청각, 발달장애인 각각의 접근 방법이 모두 다르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 목표는 같더라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나 과제는 장애 유형과 정도를 고려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정부, 국회 등 정책결정자들뿐만 아니라 장애 분야 전문가, 장애인단체 지도자조차 장애 유형 간 차이를 간과한 채 특정 유형의 장애만을 고려한 정책이 모든 유형의 장애인에게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대표적 예가 활동지원서비스 급여를 결정하기 위한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로 지체·뇌병변장애인의 특성과 요구를 평가하는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항이 추가되어 있기는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특성과 요구가 고려된 문항들은 없다.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한다면서 장애 유형이나 정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다.

 

작년 10월부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상임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상임대표로 나서기로 결심한 배경과 활동에 역점을 두고자 하는 점이 궁금하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과 장애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전국단위 19개, 지역단위 14개 단체의 연합체로 장애 유형 간 공통점과 차이점을 균형 있게 담보하는 정책을 제안하기에 유리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등록 장애인 수가 적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장애인단체도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소수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장애 유형 간 균형을 이루는 장애인 권익옹호 단체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것과 복지저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군·구 단위에 시각장애인지원센터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활동이 최우선이다. 한시련 회장으로서, 한국장총 상임대표로서의 활동은 오늘을 살고 있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장애인을 위한 일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장애인을 위한 권익옹호 활동은 곧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권익옹호 활동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동참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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