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그리운 것은 산 너머에 있다'라는 책을 기억한다. 무릇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낳고 그 그리움은 어딘가의 너머에서 우리를 애닯게 한다.
우리를 위한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세월은 기억

어느 시인의 '그리운 것은 산 너머에 있다'라는 책을 기억한다.

무릇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낳고 그 그리움은 어딘가의 너머에서 우리를 애닯게 한다.

우리를 위한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세월은 기억마저 산 너머에 돌아 앉힌다. 산 너머에서 그리움은 언제나 아득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버렸고, 잃었고 그리고 떠나보냈다. 더러 가슴에라도 묻어두어야 할 소중한 것들조차 우리는 미련없이 털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고 그렇게 우리는 떼어내기만 했다. 그것이 우리가 끝내 지켜내야 할 삶의 가치이던 고귀한 전통이던 세상 하나뿐의 사랑이던 그렇게 우리는 뿌리치기만 했다. 그리고 무심한 세월은 흘렀다. 회오(悔悟)의 날숨 속에서 우리가 가슴을 칠 때 벌써 모든 것들은 산 너머에 그리움의 이름으로 묻히고 말았다. 우리에게 북한미술은 그렇게 묻혀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하나'

해방공간의 이념적 혼란과 6.25전쟁 피의 상잔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이산'이라는 업(業)을 지웠다. 이산 반세기는 세월의 간극만큼이나 멀고 깊게 남북을 갈랐다.

1988년 정부의 납·월북작가 해금조치가 있기 전까지 한국미술사 속에서의 북한미술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산가족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극적상봉의 감격도 잠시 우리는 너무 달라진 서로의 모습에 놀랐다. 이름도 예전에 부르던 그 이름이 아니었다. 전통의 동양화를 한 쪽에서는 '한국화'로 불렀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선화'로 개명해 부르고 있었다.

1966년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발표된 김일성의 미술계에 대한 교시 이후 북한미술은 '전통적 화법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한 주체미술의 서슬 아래 전통적 동양화에 있어서의 수묵화나 수묵담채화는 조선시대의 양반 착취계급이나 즐기던 반인민적 그림으로 비판되었고 섬세한 묘사와 선명한 필치의 채색화로서의 조선화만 일방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정종여, 리석호 등에게서 그나마 이어지던 동양화 본래의 전통적 수법과 화취(畵趣)는 그들 분단 1세대가 사망한 후 거의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당 중앙의 지침에서 벗어난 작가 개인의 파격이나 화풍(畵風) 등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미술이 주체미술의 획일성이라는 '익명의 늪' 속에 매몰되고 있는 동안 남한의 미술계는 비구상 계열의 작가들이 득세하면서 사실화를 천시하는 오만에 빠져든다. 남·북 미술의 재상봉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고 결국 달라도 너무 다른 '하나'를 확인하는 아픔만 안고 발길을 돌렸다.

'익명의 늪'에서 건져낼 때

북한 조선화의 특징은 선명성과 간결성에 바탕한 채색화에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화법에 있어서 구륵법과는 반대로 세화(細畵)로서 윤곽선을 무시하는 몰골기법을 강조한다. 그림이 수채화처럼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이다. 필획이 으뜸이 되는 문인화의 기법과는 정반대의 차원에 서 있다.

'마음으로 바라 본 세상을 붓 끝에 옮길 때 사물은 비로소 그림이 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다면 지금 평양에서 그려지고 있는 '주체미술'에서 화격(畵格)을 찾는 일은 지난한 작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미술에 대한 관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주체미술의 익명'에서 이탈하여 의미있는 창작에 열중하고 있는 적지 않은 숫자의 '마음의 눈'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그리움인 채로 묻어두면 병이 된다. 우리가 이산의 '업(業)'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길은 내가 먼저 비우고 그를 받아들이는 사랑 뿐이다.
노자(老子)에 광이불요(光而不燿)라는 말이 있다. 빛나되 그 빛으로 상대를 미혹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미술이 먼저 오만을 버린다면 북한미술을 '익명의 늪'에서 건져내어 한국미술사의 일원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북한미술을 '산 너머의 그리움'으로 묻어 둘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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