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말기의 월(越)나라 여인 서시(西施)는 중국의 사대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타고난 미색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서시가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수중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그만 강바닥으로 가

중국 춘추말기의 월(越)나라 여인 서시(西施)는 중국의 사대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타고난 미색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서시가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수중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그만 강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미인이었던 서시는 그러나 평소 얼굴이 밝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선천적으로 가슴앓이 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이었던 서시의 미모는 월나라 여인들에게 이상한 버릇을 갖게 만들었다. 서시를 흉내 내어 일부러 눈을 찡그리고 다니는 것이 그 시대 월나라 여인들 사이의 유행이었던 것이다.

사회학적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일종의 '변종 포퓰리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는데, 이렇듯 변종(變種)이 모본(母本)의 상위가치로 역치되는 기현상은 언제든지 우리의 전통적 가치체계를 전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로 지적되고 있다.

'변종 포퓰리즘'의 모순

17세기 초반 네델란드를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튤립 열풍의 아이러니는 당시 수천 길더를 호가하던 최상품의 튤립 품종들이 실제로는 튤립에만 있었던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이라는 사실이다.

본래 야생 튤립은 튼튼함과 단순한 색채로 유명했는데, 네델란드 황금시대에 인기 있던 재배종들의 꽃잎이 그토록 강렬하고 다양한 색깔로 장관을 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자이크바이러스 때문이었던 것이다(마이크 대시, Tulipomania,1999).

'변종 포퓰리즘'의 모순은 아류(亞流)끼리의 야합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모본의 부정으로 극복하려는데 있다.

대중의 인기와 영합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는 '변종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당장의 쓰임과 눈앞의 칭찬에 조급하다. 유구한 역사적 축적과 전통적 가치의 부인으로부터 출발하는 '변종 포퓰리즘'의 양태는 흔히 개혁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이 허정염담(虛靜恬淡)을 통한 자기부인의 성찰에서 잉태되는 것과 달리 '변종 포퓰리즘'의 출현은 겉껍질의 명예를 좇는 허상의 바이러스에 기인한다. 값싼 명예란 속은 병들었음에도 겉만 화려한 변종의 꽃과 다르지 않다.

아무런 명예도 없음이 곧 지극한 명예(至譽無譽)라고 가르치는 장자(莊子)는 '무용(無用)의 용(用)'으로 쓰임의 허상을 경계하고 있다. 부단한 허정염담으로 세속적 쓰임에 꺾이지 않는 것이 천수(天壽)의 용(用)을 지키는 길이라는 장자의 가르침은 지속적인 자기부인의 삶을 통해서 정도(正道)에 이르는 길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자기부인의 삶이란 바로 '자만, 오기, 아집'으로부터의 허정염담이다. '자기를 비워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욕심이 없는 것으로서 갈등을 없애면 진실해지며, 진실해지면 도리에 맞아 고요히 움직이게 됨으로써 정도를 얻게 된다(休則虛, 虛則實, 實者倫矣).'

선진사회복지시스템의 완성에 이르는 길은 오직 정도의 추구에 있다. 선진복지의 인프라 구축은 시대의 유행을 좇는'변종 포퓰리즘'적 접근을 차단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관치에 길들여진 구각을 깨트리고 복지사업 각 주체 스스로의 자율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참 복지는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참 복지의 구현은 정도에

도전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건강한 경쟁이 생동할 수 있도록 획일화된 평준을 걷어내야 하고, 민간자율에 맡겨야하는 일에서는 정책논리의 도식적인 틀을 제거해야 한다.

독선과 아집의 간섭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복지행정의 자기부인이며 허정염담이다.

당대의 가시적 성과에 조급해 하는 정책은 변종바이러스에 감염됨 기형의 꽃을 피워낼 뿐이다. 겉만 화려한 몇 송이의 꽃을 피워내는 것으로 복지시스템은 개혁되지 않는다.

복지는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사'가 아니라 각 사업주체가 자율적으로 수리(水理)하는 창조의 영농이며 씨를 뿌리고 과실을 수확하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에는 정도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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