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영국의 '찰스 하퍼 베네트'가 젤라틴 바닥의 사진 감광판을 개발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사진기술은 미국의 조지 이스트만이 "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설립한 이스트만 코닥사의

1878년 영국의 '찰스 하퍼 베네트'가 젤라틴 바닥의 사진 감광판을 개발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사진기술은 미국의 조지 이스트만이 "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맡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설립한 이스트만 코닥사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사진의 보급은 표현대상의 정확한 사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급기야 '미술시대의 종언'이라는 극단적 선언까지 나오게 하였다.

인상파와 리얼리즘 그리고 쉬르리얼리즘(극사실주의)으로 대표되던 일련의 미술적 실험들은 곧 엄청난 혼란에 봉착하였고 마침내 '미술은 죽었다'라는 자괴의 탄식이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나 미술은 죽지 않았다. 거칠 것 없이 밀려오는 사진의 해일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떠올려낸 지극히 간단명료한 명제 하나가 미술을 건져내었고 미술의 영원한 존재이유를 밝혀주었다. 결코 사진의 기술이 표현해낼 수 없는 대상, 그것은 바로 우리들 마음 속 꿈(소망)의 세계였던 것이다.

미술은 꿈의 세계

사진은 인화지라는 면 위에 도포되어져 있는 감광성 물질에 무수한 점의 입자가 착상된 2차원의 평면적 세계이다. 설령 인화된 사진을 액자라는 도형적 공간과 접합시킨다 할지라도 사진의 세계는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머무를 뿐이다.

그림 역시 캔버스라는 면 위에 물감으로 점과 선을 입힌다는 점에서 2차원의 평면적 세계이다. 그러나 그림의 프레임은 도형적 공간 너머에 있는 꿈이라는 3차원의 세계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사물의 구체적인 실상을 주관에 의한 해체와 재구성을 통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상(像)으로 착상시키는 과정에서 그림은 주관의 보편적 객관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일반적 질서체계 속에서의 대상이 주관적 파악에 의한 미술소재로 재해석될 때 그림은 시각적 상징부호로 나열된 은유의 목소리로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낸다.

수백 년 전의 그림 한 점이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림에 담겨있는 작가의 꿈이 지금의 우리와 교감하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나누는 꿈의 대화가 늘푸른 소망으로 영원히 살아있는 까닭이다.

4월은 동면을 끝낸 미술관들이 겨우내 준비한 기획전을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달이다. 새로 발굴한 고서화전에서부터 최근의 실험적 작품전까지 다양한 미술작품들이 각 미술관의 전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놓쳐서는 안 될 작품, 발품을 팔아야 할 전시회가 줄을 잇는 계절이다. 서울 소격동의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후기 그림의 기(氣)와 세(勢)'전에서는 겸재(謙齋)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14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덕수궁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조각을 도입하고 정착시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자연의 질서에 대한 오랜 사색과 통찰을 통해 서구적인 조형감각을 동양의 정신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전이 열리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터치・터치'전은 만5세부터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특별기획전으로 현대미술작품에 대한 대화식 관람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미술관들이 저마다의 독창적인 전시공간을 열어 우리에게 미술을 통한 인간성회복의 장을 펼치고 있다. 일찍이 동양의 화론에서는 형이(形以)를 넘어선 전신(傳神)의 경지를 지향함으로써 그림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예술에 이르기를 가르쳤다. 그러므로 한 점의 그림에서 꿈이 있는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매한 기상과 심오한 철학 그리고 사랑과 꿈의 단아한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올봄엔 미술관을 거닐어보자

인간 정체성의 표상으로 첫머리에 오는 것이 천지만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꿈(소망)이라면, 올봄 미술관의 회랑을 걸으며 꿈의 대화에 빠져보는 것도 참 좋을 듯싶다. 메마른 심성의 영양실조를 치유하겠다는 각성과 부지런함만 있다면 말이다. 평소 서화에 심취하기를 무릉도원에서 노닐 듯 하는 친구 김오곤 군이 연전 중국출장 길에 중국문화부 부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휘호 한 점이 습관처럼 익숙한 게으름을 깨운다.

천도수근(天道酬勤), 부지런하면 하늘의 뜻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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