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1600여개에 달하는 법인보육시설. 그 중에서도 사유재산을 출연해 설립된 1000여개 사회복지 법인시설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올해로 9년째 사회복지법인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씨(59). 김 씨는 최근 시설을 계속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역 인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시설에 다니는 아이들도 줄었는데, 그나마 45%씩 지원되던 유아보육교사 인건비도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된 뒤부터는 30%로 줄어들더니, 이마저도 장차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설립 당시만 해도 시설 운영보조금과 종사자인건비를 90% 지원한다는 말에 사회복지법인 보육시설을 설립했지만 이젠 거의 아무런 혜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간보육시설 지원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그래서 차라리 민간시설로의 전환도 알아보았지만 사회복지법인 시설로 묶여 있어 폐원시 모든 재산은 국가로 귀속된다는 말을 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끓이고 있다.

■ 법인보육시설은 '쌍방계약 위반사기'
전국적으로 1600여개에 달하는 법인보육시설. 그 중에서도 사유재산을 출연해 설립된 1000여개 사회복지 법인시설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의 지원 약속만 철썩같이 믿고 전 재산을 출연해 법인을 설립하고 보육시설을 운영해 왔는데, 지원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이제는 민간보육시설 지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고 있어, 시설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특히 김모 씨처럼 중소도시에서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의 경우는 더 심각해 정원채우기는 고사하고 반별정원을 한 두 명만 어겨도 보조금을 안준다는 공무원들의 서슬에 더 이상의 운영은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법인보육시설들이 분노하는 것은 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 시설 전환도 못하고 폐원시 재산 국가 귀속이라는,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쌍방계약 위반 사기' 같은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월 1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국보육법인이사장협의회 긴급총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300여명의 법인시설 대표들이 '속아 빼앗긴 재산 돌려받자', '내 재산 내 권리 우리가 찾자'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정부를 상대로 '일사항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부글부글 끓다 결국 폭발...
부글부글 끓다 결국 폭발...

■ 사회복지사업법 제27조
현재 '보육' 업무와 관련해서는 여성가족부가 관할하는 '영유아보육법'을, '법인'과 관련해서는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사회복지사업법'의 지도ㆍ감독을 받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1항에서 '사회복지사업'의 범위로 영유아보육법을 포함시켜 놓고 이를 근거로 동법 제27조1항에서는 '해산한 법인의 잔여재산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백승주 고려대 교수는 "헌법 제23조제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와 제15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를 근거로 했을 때, 복지 법인 대표자가 자신의 경제적 자력을 바탕으로 복지법인을 설립하여 시설을 운영한다면 복지사업 또는 시설운영의 변경을 도모하거나 사적 자치에 의해서 처분할 수 있는 자유 또한 인정해 주어야 한다"며 사실상 사회복지사업의 법인보육시설에 대한 사유재산 처분 제한은 '위헌'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법인보육시설들의 입법청원 대리인인 손범규 변호사도 "현재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조항은 법인재산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귀속만을 규정하고 있는 등 보육법인에 대한 활동의 제약 및 재산권의 제한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영유아보육법 및 사회복지사업법 등 기존 법률의 개정은 물론 필요한 경우 '법인보육시설의 재산권 보장 및 출연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가칭)'의 제정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 차라리 '노인복지' 하겠다
사실 법인보육시설의 사유재산 처분 제한 철폐 주장은 꽤 오랜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여성가족부 이관 이후 부쩍 줄어든 지원금과 민간보육시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실제 1991년부터 1996년까지의 보육사업 지침서에 의거, 시설운영비 및 취사부ㆍ사무원 ㆍ관리인 등을 모두 포함해 종사자인건비 90%를 지원받던 법인보육시설은 IMF가 터진 1997년부터는 시설장 90%, 보육교사 45%로 그 지원이 대폭 줄었다. 그나마도 2004년 6월 여성가족부로의 이관 후에는 더 깍여 시설장 80%, 보육교사 30%로 지원이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지원자체를 없애겠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급기야 지난해 11월 7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기도 했다.

형평성에 있어서도 민간시설은 교재교구비, 대체교사인력비 외에도 평가인증을 통과한 시설의 경우 유아 1명당 4만2000원씩 1개반당 최대 84만원의 유아기본보조금 등을 지원받는데 반해 법인시설은 보육교사 1호봉 기준으로 봤을 때 달랑 35만원 남짓한 인건비 지원을 받는데 그친다는게 법인보육시설들의 주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법인보육시설들은 법인설립 당시 약속 수준으로 지원을 늘려주든지,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마음대로 재산 처분을 하거나 사업변경이 가능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아동복지'나 '노인복지'라도 할 수 있지 않냐는 것. 더구나 전국적으로 2만5000여개에 달하는 민간보육시설이 있으니 1000여개 재산출연 법인보육시설들이 타 분야로 전환해도 요즘같은 저출산 시대에 우려할만한 보육공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부글부글 끓다 결국 폭발...
부글부글 끓다 결국 폭발...

■ 입법청원부터 헌법소원까지
법인보육시설의 이 같은 요구가 계속되자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말 법인보육대표들과 공동으로 TF팀을 구성해 재산귀속 문제를 포함한 법인보육시설의 전환방안을 연구하는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로서도 장기적으로는 유치원과 같이 국공립 대 사립의 구조로 보육시설을 재편하는데 유리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때마침 여성가족부가 보건복지부에 통합되는 대통령직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 발표와 맞물리면서 추진체는 동력을 잃은 상태다.

어쨌거나 법인보육시설대표들은 긴급총회에서 법인해산 및 설립허가 취소시 잔여재산의 국고귀속이 위헌법률심판 청구 대상임과 아울러 영유아보육사업을 계속하기를 희망하는 법인체에 대한 새로운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는 입법청원 시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결사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올해 4월 있을 총선 이후 의원들을 통한 법개정 작업에 박차를 가해나간다는 전략도 세웠다. 실제 이날 긴급총회에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 고경화 의원, 김충환 의원 등이 참석해 법인보육시설장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법인보육시설대표들은 보육업무의 보건복지부 재이관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난해말부터 여성부의 복지부 흡수 방침이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지만 여성계의 격렬한 반대와는 달리 여성부 최대 사업영역인 보육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한 법인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정권교체 될 때까지 10년을 참고 기다렸다'는 말까지 내뱉을 것을 보면 보육계, 특히 법인보육시설들의 보육시설정책에 대한 반발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법인보육시설의 권리선언이 향후 보육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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