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 간사
최은경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 간사

오늘 하루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길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조차 내기 힘겨워 외롭게 흐느끼는 복지 소외계층 대상자들을 찾으러 간다.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행복을 알려주는 좋은 이웃이 되는 것,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35년 사회복지사의 삶을 살면서 갖게 된 나의 소원이자 사회복지협의회의 사명이리라. 이를 이루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변화가 생겼다.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를 의무 설치토록 하는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된 것이다. 도움의 손길에서 벗어난 채 간신히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화수분이 전국 각지에 생겨날 수 있게 됐다.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집에 살고 있던 OO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몽골인 생모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연락이 끊기고, 이후 아버지도 가출하면서 OO이는 조부모의 딸로 출생신고 되어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이 가정의 주 수입원은 62세 할머니였다. 그러나 허리를 다친 후 거동이 불편해 그동안 해왔던 식당일을 못하게 되면서 할아버지가 주워온 폐지를 팔아 번 6만 원과 노령연금 30만 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가 됐다. 수리비가 없어 막힌 수도배관과 보일러도 고치지 못하는 집에 가출했던 친부까지 알콜중독자가 되어 돌아왔다.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는 복지소외계층 맞춤형 지원금 250만 원으로 OO이의 집부터 고치기 시작했다. 지역 내 봉사단체인 ‘사랑의 사다리’ 도배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수도배관, 화장실 변기, 세면대, 보일러를 교체하고, 도배장판도 새로 했다. 이런 도움에 감동을 받은 OO이 아버지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중국집에 취직했다. 늦었지만 딸이 안정되게 학교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협의회와 도와준 분들에 대한 은혜는 자기가 더 좋은 아빠가 되어 갚겠다고 했다.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의 활동무대인 대전 서구 인구는 지난해 11월 기준, 46만7866명으로 대전광역시 중 최다, 전국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상위 10%대에 드는 규모이다. 총 예산의 60% 이상을 복지에 지출하고 있는 서구는 크게 선거구 기준으로 갑 지역과 을 지역으로 구분된다.

 

민관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하는 서구사회복지협의회

을 지역은 대전시청, 법원, 국세청, 대전지방 노동청, 통계청, 백화점, 예술의 전당, 수목원 등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대전을 넘어 중부권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고, 주거환경이 쾌적해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다. 반면, 갑 지역은 도심 속 농촌 같은 분위기로 낡은 집이 많아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으로 당장 지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산업 기반도 취약하고, 갑 지역 내에서도 소득격차가 커서 주민 간의 위화감도 적지 않아 사회복지서비스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중요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수는 2만730명으로 총 인구의 4.43%를 차지한다. 여기에 차상위 계층과 복지 사각지대까지 감안하면, 빈곤 수준은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사회복지시설은 276개소로 4583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높은 지역 내 소득격차와 취약계층 비율에 비해 인구밀도 대비 사회복지시설과 종사자는 다른 구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는 ‘좋은이웃들’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지역 및 환경적 특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민관 복지 전달체계에서 중간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좋은이웃들’은 ‘복지소외계층 발굴 및 민간자원 연계지원 사업’의 브랜드 명칭이다. 행정복지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의 협약을 통해 좋은이웃들 사업을 홍보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주)에너넷과의 협약을 통해 도시가스 검침을 하는 안전매니저들에게 사업 취지를 교육한 후,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 자원봉사자로 위촉하여 복지 소외계층 발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월 1회 지역 유력 일간지인 중도일보에 좋은이웃들 사업을 홍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연 1회 대전MBC와 함께 복지 소외계층 발굴부터 서비스 현장까지 동행 취재한 콘텐츠를 송출함으로써 대전 시민을 대상으로 사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뿐만 아니다. 연중 사업으로 지역사회 내 사회복지사 역량강화 교육을 비롯 사회복지서비스 인력, 자원봉사관리사 등 가용한 민간 인력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사업에 주력했다. 30여 년 사회복지시설 운영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행정복지센터, 지역대학, 민간기업, 봉사단체에 대해 ‘찾아가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주기적·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사회복지 자원봉사자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대상자 맞춤형 위기서비스 제공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는 도시가스공사로부터 도시가스요금을 장기 연체해 가스가 끊겨 엄동설한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취약계층 10가구를 추천받아 밀린 요금을 대납했다. 이외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원자개발과 후원금 모금에 앞장서 모아진 성금으로 독거노인계란나눔사업을 펼쳤다. 또한 지역봉사단체와 연계한 독거노인 밑반찬배달 사업을 통해 소외된 어르신들을 찾아 지원하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등의 각종 지원사업을 신청해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퇴소 청소년과 독거노인들에게 이불이나 온열기구를 지원한 바 있다.

△△ 씨는 에너넷 도시가스 검침과 안전점검을 수행하는 안전매니저의 의뢰로 만나게 된 84세 독거노인이다. 장남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장남은 코로나19로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겼고, 집은 경매에 넘어갈 위기였다. 카드빚 독촉에 도망다니던 차남은 △△ 씨를 만나러 왔다가 집 앞에서 체포됐고, 현재 교도소에 있다. △△ 씨는 허벅지 혈관이 막혀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도시가스 요금이 밀려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차가운 침대 위에 덩그러니 누워만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없이 기초연금으로만 겨우겨우 살다 보니 허벅지 치료도, 체납된 도시가스 요금 납부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이웃들 사업을 통해 체납된 도시가스요금을 대신 납부했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청과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복지센터와 서구통합사례관리팀에 연계했다.

이와 같이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는 좋은이웃들 사업을 수행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들의 다양한 상황과 욕구에 맞는 맞춤형 위기지원 서비스뿐 아니라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 정기적인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있다. 그 덕에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관, 서구청 통합사례관리팀이나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아 원활한 사업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민관의 다양한 사회복지 담당자들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일하다 보니 시너지를 높일 수 있었고, 이는 좋은이웃들 사업의 효과성을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 씨를 지원한 것처럼 좋은이웃들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했던 사례를 알릴 수 있었던 이유는 협의회가 지역사회에서 다른 어느 조직보다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원 사례는 비단 대전서구사회복지협의회뿐만 아니라 좋은이웃들 사업을 추진하 전국 시군구 협의회에 넘쳐날 것이다.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는 한 지역 내에서 다양한 직능분야의 사회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는 시설뿐만 아니라 경제·언론·종교·법조·문화·교육·체육·보건의료 등을 대표하는 기관·인사들이 지역사회 복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연대하는 단체이다. 일정 지역에서 가장 강력하고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춘 조직으로서의 면모를 지닌 것이다. 이를 활용해 잘 드러나지 않는 위기 가정을 찾아 적절한 자원을 빠르게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복지 사각지대 주민들의 보루가 되고 있다.


살아갈 만한 세상 깨닫게 하는 좋은이웃들

혼자라는 아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 가거나, 쓸쓸하게 삶을 뒤로 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 우리 이웃들이 그래도 세상이 살아갈 만하고 따뜻한 이웃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힘과 소망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성이 살아나는 지역사회를 우리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가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 사회복지협의회가 설립되지 않은 62개 시군구에도 복지 사각지대를 위한 화수분은 반드시 필요할 터,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에 그 역할을 맡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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