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인간의 수명을 비교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척도는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이다. 그러나 고령사회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은 최선을 다하여 건강을 유지하여야 하고, 사회는 책임을 지고 부양·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나이인 최빈사망연령(Modal length of life span)이 현실적으로 중요한 지표이다.

최빈사망연령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세기 동안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빈사망연령의 표준편차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고령자의 사망연령이 지표와 실제로 매우 비슷해져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선택된 특별한 개인이 장수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장수시대가 되고, 인간의 실제 수명이 현재진행형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초장수인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료시스템도 이에 대응하여 개혁이 필요하다.

 

○ 고령사회에서의 의료계의 입장과 의료수요의 변화

고령사회와 비고령사회 간의 의료 수요는 의료의 주 대상이 고령자들인데 반하여 청장년층이라는 점, 장수인의 증가에 비하여 일반 노인의 증가, 고령인의 의료비 및 개호비가 막대한 데 비하여 의료비보다는 가족의 해체에 의한 동거의 격감과 전통 가치관의 변화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고령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개인의 노화와 인구고령화를 대응하여야 하는 의료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개인의 노화를 바라볼 때는 개인에 대한 진찰, 평가, 치료 및 재활이 강조되며 개인의 안녕과 복지를 추구함이 근본이다. 인구고령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고령화의 주요인인 저출산과 사회적 필요에 의한 의료서비스의 기획과 장기요양보호가 주된 목적 사업이 된다. 또한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입장과 대국적 인구동태를 분석유지하며 공중의 복지를 고려하여야 하는 입장에 따라 질병에 대한 대응 방안이 다르다.

개인의 치료가 주목적인 경우에는 고령자에 나타나는 다양한 면모의 질병과 복합적 질환을 다중약제를 사용하여 치료하고, 부작용을 분명하게 이해하여 처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증세를 완화하고 기능을 최선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노력한다.

그러나 공중 복지를 추구하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인구역학적 변화추이를 주목하고 만성질환을 감시하며 장애를 보정하고 기능의 패턴을 규명하여 지원함으로써 고령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여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후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사회가 고령화되어가면서 개인에 대한 치료 위주의 병원 의료가 아니라 보다 많은 주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하는 의료체계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인구고령화를 대응하는 의료계의 입장은 미시적으로 개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거시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입장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조율과 대응이 필요하다. 고령사회에서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도 큰 차이가 있지만 의료에 대한 수요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질병패턴 변화는 물론, 삶의 패턴, 경제상황, 환경생태, 사회문화, 과학기술 등의 변화가 복합되어 실제 주민에 있어서의 의료 수요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지역사회에서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재택의료, 응급치료시스템, 환경안전 교육, 생활개선 교육, 그리고 장기요양보호 등의 지원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안전 의료시스템(Safety program)을 중심으로 문화보장 프로그램(Culture program)과 생산성 프로그램(Productivity program)이 어우러져 영위되어야 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진정한 기능적 장수 사회 구축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조율되어야 한다.

 

○ 장수사회 대비, 의료의 개혁방향

1) 장애가 없는 의료(Barrier free medicine)

무엇보다도 환자의 의료와의 접근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공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여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의료와의 적절한 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원격의료도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이동성이 자유로운 의료이어야 한다. 건물 내의 통로는 물론, 환자가 이동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적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 환자의 의료 접근이 어려운 경우는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왕진의료체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왕진의료체계 활성화는 병원 입원이 필요 없도록 하여 의료비절감 요인이 되며, 거주공간을 이탈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들에게 소외감이나 고독감을 덜어주어 삶의 질을 고양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그리고 치료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특정 전문과목의 이기적 의료가 아니라 팀 접근을 통하여 환자의 다양한 질병 패턴을 명확하게 진료·치료할 수 있는 협동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또한 교육훈련의 장애가 없어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교육하며 다양한 문화가 수용될 수 있는 체계 구축은 중요하다. 이와 같이 의료와의 접근, 이동성, 전인적 치료 및 교육훈련에 장애가 없는 의료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2) 와상환자가 없는 의료(Bed-ridden free medicine)

일반적으로 노인병원이나 요양원의 심각한 문제는 만성 퇴행성질환으로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경우 발생하는 욕창(bed sore)이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의 사례를 보면 노인병원에서 욕창환자가 전혀 없다고 자부하고 있다. 극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기 환자를 병실침대에 눕혀 제한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 환자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또는 도와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와상환자가 없어지고 욕창이 없게 되면 환자들의 회복도 빨라지고 생존율도 증진할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위한 의료적, 시설적 및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야 한다.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인간중심적인 의료기술을 개발하여 지역친화적이고 고령친화적인 노인의 활동성 강화프로그램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3) 삶의 질 향유를 위한 장수의료(QOL longevity-ensured medicine)

진료와 치료, 낮병동 그리고 중환자 관리는 물론, 지속적 개호를 위한 방안으로서 요양원, 왕진의료센터, 치매센터, 장기요양시설 등의 운영은 기존의 전통적 의료체계이다. 이에 덧붙여 효율적인 응급 치료, 적절한 의료, 의료 부작용의 최소화, 질병 예방 보장 등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지역주민들의 건강 장수를 추구하기 위해서 운동, 영양 등의 생활지도는 물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돕기 위한 일반인 건강교육, 그리고 호스피스 운동도 병행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령인들이 감성을 충족해주는 의료를 통해 원활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리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지낼 수 있는 향거장수(鄕居長壽, Aging in Place)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향유하고 존엄성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여 삶의 질을 극대화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삶의 질 향유를 위한 장수의료’라고 정의한다.

 

4) 저비용의료체계의 구축

미래 장수사회에서는 병원의 전문 각과의 독립적 운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상호 협력하여 진료할 수 있는 통합의료 분과가 강화되어 전인적 의료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삶의 질 향상 의학 분과가 독립되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는 의료를 담당할 수 있어야 하며, 고령인의 기능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다면적 재활센터 운영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를 교육·훈련할 수 있는 자원봉사센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또한 지역협력센터를 설립하여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봉사 체계를 구축하고 주민친화적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주민의 건강증진과 질병치료를 더욱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지역할당의료체계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역보건소와 연계하여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수립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병원체계의 개혁은 저비용의료체계를 구축하여 가장 강력한 미래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 맺으며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의료의 주 대상이 노인이 되어 가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 향상이 의료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한 사회의 개혁 흐름에 의료계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노인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성 극대화와 질병예방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환자의 경우에는 의료와의 접근과 전인적 치료가 보장되어야 한다. 찾아오는 환자에 대한 수동적 진료가 아니라 환자를 찾아가는 능동적인 의료, 치료만이 아닌 질병 예방과 보다 나은 기능적 삶을 위한 교육과 사회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가 없는 의료, 와상환자가 없는 의료, 삶의 질 향유 장수의료가 꽃피울 수 있는 의료체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료개혁에는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극대화한 저비용의료체계 구축과 이를 위한 의학 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료 혁명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명경외운동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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