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영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지역복지아카데미 이사장
박태영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한국지역복지아카데미 이사장

지역사회 위기는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다. 이는 우리 삶에 직접적인 위험 요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사회 위기라면 인구감소로 소멸예정지역 증가, 저출생 초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 수도권 집중화 등과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지역사회 위기에는 이미 다양한 처방들이 나오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지난해 9월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제시한 4대 특구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기업의 지방 유치를 추진하는 기회발전특구, 지방대 육성을 통한 공교육 혁신을 추구하는 교육자유특구, 지방 역세권에 ‘지방판 판교테크노밸리’를 조성해 청년과 기업을 정착시키려는 도심융합특구, 7대 권역별 문화 도시를 지정하여 지역 콘텐츠의 브랜드 육성을 추진하는 문화특구 등이다.

그동안 출범한 정부마다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지방자치 등의 이름으로 정책을 펼쳐왔으나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이 잘 구현되어 지역사회 위기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주민 복지교육으로 지역복지 강화

지역사회 위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현상적인 것 외에 사회관계의 단절, 연대와 협력의 왜소화, 마을(자원봉사) 활동의 일자리화, 지역 리더의 실종 등과 같은 기능적이고 실질적인 것도 있다. 지역복지 차원에서는 현상적인 것도 중요한 과제지만 이런 기능적인 과제가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회 위기 대응 방안들을 보면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것은 없거나 있어도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좀 생뚱맞지만 지역복지에 대한 인식 부족 내지는 부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복지를 ‘국가복지의 지방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을 늘려가면, 지역복지는 저절로 잘 구현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 쪽에서 일하거나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국가복지의 확대는 지역복지 관점에서 보면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지역적(통리-읍면동-시군구) 차원과 주체적(이용자 및 주민 주도) 차원, 협력적·종합적(公的-共的-私的) 차원의 적절한 관여가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지역복지가 구현되는 것이다.

주민의 삶은 지리적 영역이 작을수록 사회관계의 빈도와 질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읍면동 혹은 통리 수준이 지역복지의 지리적 영역으로 좋겠지만 최소한의 자치권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시군구 단위로 볼 수 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마을에 대한 협력이라는 면에서 우리는 읍면동 혹은 통리 단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복지 강화를 위한 주민 복지교육,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과 실천 등은 시군구 단위에서, 그리고 통합사례관리, 마을복지계획 수립과 실천 등은 읍면동 단위에서 추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지역사회 자원개발 및 관리, 지역사회 조직화 등은 그 목적에 따라 지리적 범위를 달리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서비스를 요청한 후 제공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어느 정도 선에서 용인할 수 있을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지리적 권역을 설정해야 한다. 서비스의 종류나 긴급성, 일상성, 중요성 등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서비스 이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접근성 혹은 서비스 제공의 신속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살아온 지역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삶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 이용자의 자원봉사자화로 참여 높여야

우리 삶은 개인과 가족이 꾸려 가야 하는 것과 지역사회 차원의 서비스와 연대로 이어지는 것, 국가 차원의 제도 를 통해 대응할 것이 있다. 요즘 우리의 삶은 개인 및 가족 차원과 국가 차원으로 양분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역사회 기능의 왜소화 내지는 붕괴에 기인하는 것이다. 퍼트넘(Robert D. Putnam)은 그 원인으로 세대변화 내지는 세대교체, TV, 힘든 직장생활, 도시팽창 등을 들고 있고, 다케노시다(竹之下典祥)는 사유화, 과도한 쾌적성 추구, 생명과 평화 경시를 꼽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원인으로는 빠른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적 신뢰 구축의 미흡, 공동의 연대와 협력보다 개인적 성장 중시 경향, 아파트 주거방식 확산 등을 들 수 있다.

퍼트넘은 허물어진 지역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교와 청소년에게는 시민참여와 자원봉사 활동을 강화하고, 직장과 가정생활의 조화를 이루도록 제안하고 있다. 또한 도시설계는 출퇴근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웃과 유대관계를 맺기 좋게 하며, 매스컴은 지역사회참여를 강화하며, 문화예술은 ‘감상’에 머물지 말고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운용할 것 등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주민참여 강화이다. 이것은 지역복지의 중요한 특성인 주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주민이 지역복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지역생활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지역복지의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생활보호 및 시설보호 시기(1990년 이전), 재가복지 및 지역복지 기반구축 시기(1990∼2003년), 지역복지 체제구축 시기(2004∼2015년), 지역복지 주체형성 시기(2016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주체성 차원에서 정리해 보면, 2003년 이전까지는 정부 주도성이 강하였고, 2015년까지는 지자체와 민간조직의 협력적 구조였으며, 2016년부터는 읍면동 복지 허브화, 주민자치형 공공서비스 실시 등으로 주민참여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즉, 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공급자(지자체와 민간복지조직) 주도 시기를 거쳐 주민 주도로 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역복지 현장에서 주민 주도성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주민 참여라고 쓰고는 주민 동원으로 읽는다’는 말이 있다. 주민참여의 수준별 단계를 설정해 보면, ‘관망→동원→형식적·소극적 참여→실질적·적극적 참여→주도·자치’로 구분할 수 있다. 지역복지 실천현장에서 빈번히 접할 수 있는 수준은 형식적·소극적 참여일 것이다. 주민이 마을활동에 대한 의견은 내지만 실천에는 참여하지 않는 경우이다. 주민은 재미와 이익, 명분이 있어야 참여한다. 지역복지 현장에서 이런 요소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주민에는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이용자도 포함된다.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제공’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용어이다. 10여 년 전부터 ‘맞춤형 서비스’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요즘 제공되고 있는 사회서비스의 내용, 절차, 대상 등을 보면, 공급자가 정한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이지 이용자가 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활동은 있겠지만 계획 수립부터 제공 과정, 점검 및 평가 전체 과정에 걸쳐서 이용자 참여가 이뤄지는 서비스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현상은 이용자의 서비스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용자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기관의 노력뿐만 아니라 이용자에 대한 복지교육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서비스를 받는 것은 권리이지만 자신도 지역사회 일원으로 사회적 책무성을 가지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이용자 복지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이용자의 자원봉사자화(化)’이다.

 

○ 지역사회 내 민간조직·단체 협력 중요

국가의 복지정책은 지자체와 민간조직의 전달체계를 거쳐 주민(개인 및 가족)에게 제공된다. 공공전달체계와 민간조직 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필수적이다. 각 지자체장과 지역리더의 복지마인드에 따라 그 편차는 매우 커 보인다.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사회보장의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협의의 사회복지를 넘어선 보건의료, 고용, 주거, 교통, 평생교육, 문화예술, 환경 등의 영역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여러 영역 가운데 복지는 민간 영역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공공과의 협력을 위한 전문 인력 지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민간조직 및 단체들이 있다. 즉, 복지기관 및 시설, 사회서비스 조직, 각종 봉사단체, 종교단체, 사회단체, 사회적경제조직 등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지역복지 증진을 위해서 다양한 마을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활동을 사회적 일자리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마을활동 가운데는 시장규칙(일자리)이 아니라 사회규범(자원봉사 활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있다. 공동체 활동에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이 있으므로 이를 잘 선택하여 적용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돈을 받고 뭔가를 하면 신이 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 읍면동 마을복지계획 수립·실천 ‘희망’

끝으로 지역복지 실천현장에서 지역성과 주체성, 종합성을 총체적으로 높일 방안을 하나 제안하고자 한다. 읍면동 단위의 마을복지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시군구의 지역사회보장계획보다 주민생활과 관련이 깊은 복지과제가 사업화되므로 실질적인 주민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또한 지역 안팎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게 되고, 여러 관련조직과 협력하여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2년 정도 마을복지계획을 수립·실천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6기 시군구 지역사회보장계획 수립 시에는 지역사회보장계획(지자체 행정계획)과 마을복지계획(주민참여계획)이 연동된 하나의 계획으로 수립하여 실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역복지의 방향은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넘어 주민자치에 맞춰져야 한다. 주민참여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바로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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