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주 아름다운재단 연구원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연구원

○ “가상화폐를 기부받을 수 있나요?”

재작년 새해 첫 출근날의 첫 문의 전화였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는 기부, 공익활동, 비영리조직에 대해 연구하는 곳으로 모금 담당자가 기부자에게 답하기 어려운 내용을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비영리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가상화폐 기부 문의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연대한다. 그 활동은 일반적으로 시간, 재능, 돈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를 자원봉사, 재능기부, 기부라고 부른다. 이 중 국내 기부는 그 규모가 측정된 199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에는 처음으로 개인기부금이 10조 원을 넘어섰다.

기부금 규모는 전통적인 기부방식인 적십자 지로나 구세군 거리 현금기부를 거쳐 ARS, 거리대면모금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였다. 또한 온라인 기부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기부자가 원하는 대상이나 활동 방식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이 확산됐다. 국내 최대 모금플랫폼인 ‘해피빈’과 ‘카카오같이가치’를 통해 모인 기부금 총합은 2005년 약 10억 원에서 2020년 약 350억 원 규모로 껑충 뛰었다.

이처럼 기부방식의 변화, 특히 기술 발전은 기부 규모의 성장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방식 또한 확장하고 변화시킨다. 직접 기부를 할 수 없더라도 SNS를 통해 좋아요, 댓글달기, 공유를 하고, 오프라인으로 플래시몹과 같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집단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그 이전의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도 그렇게 될까? 블록체인 기술은 어떻게 공익활동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을까?


○ 해외 가상화폐 기부 사례는?

UN세계식량계획(WFP)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빌딩블록(Building Block)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부터 난민을 지원하고 있다. 빌딩블록은 주민등록증도, 현금도 없는 구호대상 난민이 홍채 인식으로 본인 인증을 하여 시스템에 기록된 생체정보를 바탕으로 난민캠프 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구호기관에서 다양한 유형의 구호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도록 해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물품 수송에 소요되는 비용과 송금 수수료를 혁신적으로 절감했다.

2019년 유니세프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크립토펀드(Crypto Fund)를 출범했다. 이 기금은 블록체인을 이용해 투자자와 수혜자를 연결하고 커뮤니티 토큰을 이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되었다. 투자를 받은 기업은 인도의 언어장애 아동을 돕는 앱 개발, 멕시코 아동교육 학위 ID 블록체인 발급, 쌀 공급망 추적 개선 등의 사업을 하는 곳이다. 크립토펀드는 빈곤 해결과 교육 증진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기빙블록(Giving Block)은 약 80여 개의 가상자산을 기부 받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기부 플랫폼이다. 미국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기부자, 가상화폐 관련 업체, 그리고 수혜자를 연결하는데, 지난해 기빙블록의 가상화폐 기부액은 약 1천637억 원이다. 특정 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고, ‘이스라엘-가자 긴급 구호 펀드’, ‘빈곤과 주거’, ‘LGBTQIQ+’ 와 같이 특정 이슈에 공동으로 모금하는 ‘임팩트 인덱스 펀드’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펀드에는 10여 개 이상의 모금기관이 공동모금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은 해외에서 저개발국의 원조를 위한 개인 식별, 원조, 그리고 송금수수료 절감 등을 위해 일찌감치 사용되어 왔고, 최근에는 가상화폐 기부 플랫폼이나 기금 설립을 통한 공익사업 투자에도 활용되고 있다.

 

○ 국내 가상화폐 기부, ‘현금화부터’

국내에서 첫 비트코인 기부사례는 2014년 ‘사단법인 피난처’의 비트코인 온라인 모금으로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관심이 시작된 것은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일던 2018년 무렵이다. 당시 블록체인 기반 기부 플랫폼 오픈,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위한 프로젝트 등 시도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었고, 위조가 불가능한 장점을 활용하여 선거 공약을 저장하거나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등의 사례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 당시에 있었던 시도들은 지속되지 못했다.

가상화폐로 기부하는 사례는 2020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푸르메재단, 전국재해구호협회, 환경재단 등이 가상화폐 거래소나 관련 기업으로부터 가상화폐를 현금화한 후 기부를 받았다. 가상화폐를 처음으로 직접 기부 받은 곳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서울지회로 1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갑을 개설해 수령한 후 즉시 현금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에 메타버스에서 공익캠페인을 열어 가상화폐를 기부하고, 참가자에게 NFT 증서를 발행하는 행사도 생겨났다. 블록체인 기반 모금플랫폼도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2020년 시작된 ‘체리(givecherry.org)’는 현재까지 383개의 단체와 1934건의 캠페인을 통해 약 113억 원을 모금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튀르키예 지진으로 인한 피해자를 도운 사례도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작년에 당사 거래소 회원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여 902명이 1억6000만 원 상당의 디지털 자산을 우크라이나 전쟁 피난민 지원에, 올해는 튀르키예 지진피해 돕기에 14비트코인(약 4억4000만 원 상당)을 기부하였다.

 

○ 공익활동의 가치와 연결되는 블록체인 기술

블록체인은 웹3.0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거대 은행들의 부실 운영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꾸어 주니 그 돈으로 은행의 경영진들은 돈 잔치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의 연결과 참여를 통해 거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시스템상에서 위변조가 불가능하여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교류와 네트워크, 모든 참여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기대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에 비해 투자의 수단으로 부각된 측면은 아쉽다. 특히 공익활동이 가진 신뢰, 참여, 연대, 탈중앙화라는 가치와 많은 부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를 활용한 기부 방식 이상의 상상과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실은 가상화폐 기부 자체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국내 거래소에서는 법인의 경우 지갑 개설은 가능하지만 원화로 환전이 불가능하다. 공익재단이 환전 후 원화로 기부 받는 이유이다. 직접 기부를 받는 경우에도 아직 가상화폐 가치 변동성이 크기 때
문에 기부금영수증 발급 시점을 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최근 한 기업이 국내 여러 대학에 거액을 기부한 후 상장폐지 되면서 시세 또한 크게 떨어져, 이 기부금을 재원으로 진행하려던 기부사업 역시 대폭 축소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보도(2023.10.18. 유령이 된 ‘기부코인’. 헤럴드경제)가 나오기도 했다. 가상화폐 또한 일반 현금이나 현물 기부와 같이 이해관계 상충, 기업의 평판, 조직 미션과의 적합 여부를 반드시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과 가상화폐, NFT의 발전 과정을 보면서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열풍이 떠오른다. 버블은 꺼졌지만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웹1.0, 누구에게나 정보가 평등하게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정보격차가 더 커졌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웹2.0, 온라인에서 누구나 정보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수익은 초거대 기업이 가져가간 것은 아닐까 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을 통해 이웃을 걱정하고 공감하면서 손을 내밀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나눔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웹3.0 시대, 사회복지와 공익활동을 하는 우리가 기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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