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아 온정을 나누는 따뜻한 손길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어 더 편리하고 투명해진 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관심은 단지 기부의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문제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부의 ‘본질’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기부의 새로운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편집자 주)

박태규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박태규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우리 사회에서 민간기부의 사회적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사회구호 NGO들이 처음 모금캠페인을 시작한 1990년대 초반으로 이제 30여 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민간기부의 사회적 역할이 대두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부터이다. 이 경제위기가 더 혹독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지속해 온 우리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소득이 고소득국에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의료보험, 실업보험 등을 중심으로 복지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사회 곳곳에 골고루, 충분히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다.

 

○ 규모도, 구조도 성장가도 달리던 민간기부, 그러나…

경제적 위기로 인해 대량 실업이 속출하면서 생계가 어려운 가정이 늘어났고, 이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발생했다. 더 이상은 시장과 정부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민간 비영리조직들의 활동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불어 사회 곳곳에서 필요로 하는 비영리조직의 활동들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기부의 활성화가 절실해졌다.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 정부는 민간기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민간기부에는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민간기부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민간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9년 2조9000억 원이던 민간기부금 규모가 2021년에는 15조5000억 원으로 20여 년 동안 5배 이상 커졌다. 이처럼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민간기부 규모가 급증할 수 있었던 데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들의 모금 확대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정부의 세제 지원도 민간기부 규모 증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간기부금을 구성하는 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민간기부 중 기업기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민간기부금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는 과정에서 개인기부가 기업기부의 규모를 넘어서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 기부금에 대한 민간의 인식이 변화했다는 증거이다. 이와 더불어 기부금 조성 환경이 기부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에는 민간기부의 70% 이상을 기업기부가 차지했으나 2021년에는 개인기부가 66%를 차지해 기업기부 규모를 넘어선 이런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민간기부의 구조와 규모가 변화했다는 것은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 외에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간 스스로의 자발적 노력이 크게 확대되어 왔음을 방증한다. 민간기부의 규모와 구조의 변화를 통해 이제 기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영리조직들의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 “원하는 곳 직접 선택해 기부해요”, 새로운 기부세대 등장

민간기부는 비영리조직을 활동하는 데 주요한 재원으로도 활용되고 있어 기부금의 증가와 구성의 변화는 비영리조직들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물론 전체 기부금 중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금 비중이 매우 높다는 한계는 있지만 일반 민간 비영리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기부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부금 규모는 2021년을 기준으로 GDP 대비 0.75%로 국민경제의 규모와 성장 수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가팔랐던 증가세도 점차 둔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34.6%였던 기부참여율이 2021년에는 21.6%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이는 최근 민간기부 증가 정체 현상을 잘 보여준다. 개인 기부 성장세는 물론 상대적으로 민간기부 규모의 성장세가 둔화된 이유는 국민경제 전반에 미친 경제적 요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지만, 민간기부를 결정하는 경제외적인 환경변화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규모와 구조에서 큰 발전과 변화를 가져온 우리 사회의 민간기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 민간기부에 참여하는 대부분 개인기부자들은 비영리단체들이 사회문제로 인식해서 활동하는 영역에 동의하는 수동적 참여자로서 기부해 왔다. 개별 기부자들과 기부 수혜대상 또는 기부활동의 대상이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연계되는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졌다. 다만 기업기부는 많은 경우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계해 이루어진다. 기업은 재원을 제공하고, 비영리조직은 그 재원에 기반하여 기업과 공동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개인기부에 비해서는 기부금이 활용되는 영역을 기부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

둘째, 기부자들은 기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부 대상자인 비영리단체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 판단을 통해 기부를 결정하기 보다는 비영리단체의 사업취지에 동의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기부자들이 기부대상 비영리단체의 사업성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경로는 해당 비영리단체가 발간하는 연차보고서 정도에 머물렀고, 기부자들이 지원하는 비영리단체가 어느 정도 사업의 성과를 이뤘는지를 판단해서 기부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기부자도 드물었다. 다시 말해 비영리단체들의 투명성과 윤리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에야 기부 지속여부를 결정하는 정도이며, 사업성과 및 지배구조의 투명성, 책임성 등을 고려한 기부의사 결정은 드물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기부세대의 등장과 IT기술의 혁신으로 인해 기부자들이 기부를 결정하는 방법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비영리 조직이 선정한 활동에 응하는 수동적 기부자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적극적기부자로 변화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MZ세대 젊은 기부자들은 과거 기부자 세대와는 달리 비영리 단체들의 모금활동에 ‘참여’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본인들이 직접 활동영역을 정하고, 자신들의 기부금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신속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IT기술과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IT기술에 익숙한 신세대 기부자들은 온라인상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아 직접 지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기부활동이 어떤 성과를 이루고 있는지를 비영리조직의 정기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신속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측면에서는 비영리조직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인해 기부자들과 수혜자들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방법으로 기부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2020년 이후 3년여 지속된 팬데믹 상황에서는 디지털 기술에 의존해서 활동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팬데믹 종료 이후에도 기부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는 일상이 좀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기부와 기술의 접목, ‘신뢰’, ‘효과성’ 높아진다

비영리조직들도 기부환경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서는 IT기술과 소설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새로운 기부자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IT기술과 소셜미디어는 취약점과 제약점도 있지만 신속하게 기부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즉시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점점 더 많은 기부자들이 선호하는 기부방법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기부에 대한 의사결정이 개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기술로 인해 기부자들 간에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협력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신세대 기부자들로부터 활동을 위한 기부재원을 조달받을 수 있다.

아직 국내 기부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여러 한계도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의 등장은 기부환경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부를 법정화폐가 아닌 가상화폐를 통해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고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쓰이게 된다면, 기부자들이 자신들의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자들의 기부를 재원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비영리조직들이 이런 환경에 신속하게 적응하지 못한다면, 향후 우리 사회의 기부활동은 발전을 멈추게 될 가능성도 있다.

비영리조직이 준수해야 할 기준에 대한 기부자들의 기대는 영리기업에 대한 기대 수준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사회가 기업들에게 ESG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기부자들은 비영리조직들에 대해 비영리 활동의 성과에만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건전한 지배구조와 더불어 지역환경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비영리조직은 본래의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과 동시에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립하고, 환경적 책임을 다하여야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기부자들의 평가와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으로서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 기업, 사희문제 해결하는 적극적 기부자 돼야

이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인적, 물적, 그리고 환경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때 비영리조직의 활동을 지원하는 민간기부에도 변화와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사회 기부자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기부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크게 변화하는 중이다.

과거와는 달리 기업들은 고용창출과 납세의무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변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기업이 다른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준 높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만을 갖추려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기업은 단순한 기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기업 민으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을 사회로부터 주문받고 있다. 기업이 경제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지역과 그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와 폭넓게 교류·협력하면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가 되는 적극적 기부자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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