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에 돌아보는 초고령사회의 노인빈곤

황진수 대한노인회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
황진수 대한노인회 한국노인복지정책연구소장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천리이고, 대자연의 섭리이다. 그 중에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대칭개념이며, 신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부터 형성된 증후이다. 노인이란 생애주기에서 왕성기를 지나 쇠퇴기 또는 황혼기에 접어든 연령계층을 말한다. 인생의 과정이 생로병사의 4고(苦)가 있다면 노인도 4고가 있다. 그것은 빈곤, 건강악화, 소외, 그리고 역할의 상실이다.

 

○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인과 빈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효과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작동시켰다. 정부 주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빠른 경제성장으로 복지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그 당시 성장정책으로 국가차원에서는 괄목할만한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고, 국민 소득의 꾸준한 증가가 실체적 복지를 대신했다. 이런 시절에 젊은 시기를 보낸 현재의 노인들은 대한민국 최근세사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특히, 80~90세 노인들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배고픈 시절을 경험했다. 그들은 배우지도 못했고,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다 보니 이제는 빈털터리 세대가 되었다. 옛 유교사상에 기초한 가부장적 권위는 간 데 없고,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첩첩산중에 버려진 듯한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인이다.

빈곤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으로 구분된다. 절대적 빈곤은 우리나라의 소득 및 지출여건을 감안하여 정부가 설정한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계층을 말한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절대적 빈곤율은 전 연령층의 9.3%이고 노인은 전 노인층의 32.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상대적 빈곤은 OECD가 적용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전체인구 대상 가처분소득 중위값의 절반에 미달하는 고령층이 전체 고령층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우리나라는 2022년 현재 43.4%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인 빈곤율과 사회적 관계망 간의 관계에서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율은 뚜렷한 정(+)의 관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은퇴 후 급격히 악화되는 경제적 여건이다. 그러니까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모두 일반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 노인 빈곤율은 삶의 만족도 간에도 역(-)의 관계가 성립되고 있어 사회적 안정을 해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은 의료비 지출이 많은 만큼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낮아 노인 빈곤율과 건강만족도 간에도 뚜렷한 역(-)의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하려는 노인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통계청의 2022년 고령자통계에 의하면 본인과 배우자가 직접 생활비를 마련하는 고령자 비중이 65.0%였다. 3명 중 2명은 직접 벌어 생활하는 것이다. 본인과 배우자가 생활비를 직접 마련하는 경우의 수입원은 근로·사업소득이 48.3%로 1위를 차지했고, 연금·퇴직금 35.1%, 재산소득 10.5%, 예·적금 6.2% 순이었다. 결국 고령자 대부분이 직접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셈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60세 정년이라고 하지만 대개 51.8세에 회사에서 권고 퇴직을 당하고, 58.8세에 정년 퇴직한다. 따라서 퇴직 후 연금 수급연령까지 소득 절벽이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중심으로 본다면,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금 중심의 노후소득보장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우선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소득이전제도는 아니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이 노인빈곤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근로장려세제와 함께 노인 일자리를 확대함으로써 주요 노후소득보장제도를 보완할 수 있다. 특히 노인 일자리 중 공익형(공공형)일자리는 일자리 차원이 아닌 복지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경력과 활동 역량을 활용한 새로운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민연금을 떠나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 국민연금의 지속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크게 정리해 보면 연금개혁 이슈는 크게 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 보장으로 구분된다. 연금의 주된 목적이 노후소득 보장에 있지만 개혁의 초점은 재정 안정화다. 이 두 이슈가 대립되는 이유는 미래세대의 부담과 현재 노인세대의 가난함 때문이다. 그러니까 연금개혁의 핵심은 현재와 미래의 노인 문제로귀결된다.

연금개혁에는 선배국가들이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OECD 국가들은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기초연금 도입과 연금 급여 확대 등 공적 연금을 중심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해 왔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세계 경제 침체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후했던 공적 연금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노후소득 보장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또 사적 연금을 도입해 공적 연금과 함께 소득보장 수준을 보완했다.

연금수령 시점을 정년으로 보는 유럽국가들은 정년을 늦춰 연금수령시점을 늦추고 있다. 이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독일은 올해 7월, 66세인 정년을 매년 2개월씩 늘려 2030년에 67세로, 덴마크와 아일랜드도 연금수급시작 연령을 67세에서 68세로 늦추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핀란드는 은퇴시기를 63~68세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늦게 은퇴할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과 영국은 군·경찰 등 육체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정년을 없앴고, 일본은 지난해 4월부터 기존 65세 정년을 70세로 올렸다. 프랑스도 올해들어 정년 65세를 67세로 높이면서 많은 국민으로부터 반발을 샀으며, 스웨덴도 올해부터 연금개시연령을 67세로 올렸다.

독일과 스웨덴의 보험료율은 각각 18.6%, 18.5%, 소득대체율은 각각 48%, 41.3%다. 일본은 보험료율이 18%이고, 소득대체율은 50% 선이다. 우리나라는 보험료율이 9%인데 이를 18%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70%로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비율은 29.3%에 불과해 일본 63.3%, 미국 64.8%에 크게 못 미친다. 노인이 의지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2.5%인데 이는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것이고 실제 가입 기간이 18.7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소득대체율은 22%인 ‘용돈 연금’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제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을 모든 노인으로 확대하고, 빈곤층에 해당하는 노인은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선해서 그 혜택을 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간 노인빈곤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었던 ‘부양의무자제도’가 폐지되었고, 보호수준도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만으로도 빈곤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소득 파악을 위해 많은 행정력을 소모하면서 기초노령연금에서 소외된 30% 노인을 파악하는 것보다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미 아동수당 도입 당시 하위 80%에게만 지급하려던 당초 계획을 소득 파악을 위한 행정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대상자로 확대 실시한 적이 있다.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확대한다면, 국민연금을 다른 연금제도와 같이 순수 소득비례 연금으로 개편해서 보험료 인상에 따른 가입자들의 반발을 최소화 할 수 있다.


○ 연금개혁,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연금제도는 간단하다. 일할 때 돈을 내고, 노후에 나눠받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낸 돈보다 더 많이 받는 구조이다. 매월 보수의 9%를 적립하면 65세부터는 소득의 40% 내외의 연금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 이 제도는 무조건 가입자들이 이득이다. 운영 측면에서 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적자구조다. 애초 설계 때부터 잘못됐다. 연금 제도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연금을 수령하는 노인이 많아지고 이만큼 장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못했다.

그러면 제도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은 재정안정을 중요시하는 측과 노후소득 보장을 중요시하는 측으로 나뉜다. 우리 국민은 연금을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안을 손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국민에게 연금을 더 많이 받게 해주겠다고 속삭이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입장에서 볼 때 연금개혁은 조삼모사다. 더 많이 받으려면 당연히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개혁은 답이 나와 있다. 연금재정의 수지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입제도 개선, 기초연금, 정부지원 등 노후소득 보장을 확대하는 각종 제도를손봐야 한다.

현재는 수지균형이 맞지만 2055년에는 모아뒀던 연금적립기금이 바닥난다. 기금이 고갈되면, 적립식으로 보험료를 걷어 연금으로 바로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바뀐다. 부과방식으로 변경될 경우를 놓고 재정을 추계해 보면, 보험료률이 30%까지 치솟고 이후 더 오른다. 미래세대는 자신의 소득 중 30%를 노인들의 생활비로 내놓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부족분을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가정이다. 이미 연금 파탄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강제 개혁에 들어간 그리스 사례가 있다.

연금제도를 우리보다 먼저 시작해 오랫동안 운영해 온 선진국들은 모두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을 택해왔다. 세금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는 우리나라 공무원 연금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다.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국회와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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