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혜 원장은? 1957년생. 이화여자대학교 외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툴루즈제1대학교대학원에서 DEA 학위를 취득했다. 중도 시각장애인으로서 부산점자도서관 관장,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및 열린네트워크 공동대표, 부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 센터장, (사)문화복지 공감 대표를 역임했으며, 제6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장애인 정책 발전에 여러 족적을 새겨왔다.

불혹에 찾아 온 시각장애로 중도 장애인이 된 한 여성이 있다.중증 시각장애인의 몸으로 NGO활동가, 정책연구자, 광역의회의원으로서 장애인 복지를 위한 활동에 매진하다 올해 3월 우리나라 최고의 장애전문기관인 한국장애인개발원을 이끌게 된 이경혜 원장이 바로 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한 이 원장이 추구하는 우리나라 장애인정책과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비전은 무엇인지 복지저널이 들어봤다. 

 

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
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

 

○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어떤 곳인가요?

한국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복지법’ 제29조에 따라 설립된 우리나라 장애와 장애인 관련 정책을 총괄·대표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우리 개발원은 우리나라장애인복지의 중심축으로서 장애 패러다임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자립 기반 조성으로 국가적 차원의 선진 장애인복지를 선도함은 물론, 사회통합까지 견인해내는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맡고 있다. 핵심 역할은 장애인들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는 현장 적합형 정책을 연구·개발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즉, 장애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부에 전달하여 정책에 반영토록하고, 반대로는 정부 정책 방향을 현장에 전달하여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도록 하는 민과 민, 민과 관의 가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의 소회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 간 NGO활동가로서, 정책연구자로서, 그리고 지방의회 의정활동을 하면서 줄곧 정책 현장에 있어왔다. 그래서 나름 장애와 장애인정책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또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체감했다. 우리나라 장애정책 중심이자 대표기관인 개발원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풀어가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주어져 매일매일이 감사하다. ‘우리 장애인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웃는 세상이 될까?’에 대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


○ 평소 ‘장애와 비장애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말을 자주한다고 들었는데

40살 되던 해 시력을 잃었다. 비장애인으로 40여 년, 이제 중증장애인으로 20년 넘게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화두 중의 하나는 양극화다. 중도 장애인인 저는 장애인으로도, 비장애인으로도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았으며, 중증장애인 당사자로서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양극이라 할 수 있는 장애와 비장애 양극을 아우르면서 그 차이를 넘어서는 유연한 사고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소통과 화합 구조 속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통합사회, 장애인을 포함한 국민 모두가 행복한 우리나라를 만드는 데 제대로 기여하고 싶다.

‘자립생활, 직업재활, 접근성 보장’으로 대변되는 장애인복지정책이 우리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와 비장애, 그리고 비장애와 장애 양쪽 모두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 제가 다리가 되어 양극을 허물고, 그래서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지지하는 장애인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

 

○ 원장이 되기 전의 다양한 경력이 눈에 띈다. 그동안의 활동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성과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배우고 경험하면서 일할 기회가 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재미있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기에 매순간이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다. 2000년 1월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특히 장애관련한 활동 중 되돌아보면 지금도 가슴 벅찬 몇 가지 일이 있다。

먼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추진연대에 참여한 것이다. 2003년 당시, 전국의 120여 장애단체들이 한마음으로 5년간 투쟁한 끝에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는 우리나라 장애정책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의미 있는 사건이다.

2006년 ‘유엔국제장애인권리협약’ 체결을 위한 한국시민단체대표단 여성위원장으로서의 활동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장애여성들과 함께 UN본부에 가서 협약 내에 여성 단독조항 제정을 성사시켰다. 이는 장애여성 문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시킨 국제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140여 개 나라 대표들을 일일이 만나서 논쟁하고, 토론하고, 설득했다. 드디어 마지막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여성 조항이 통과되었고, “이런 좋은 조항을 제안해 준 대한민국 여성장애인들에게 감사한다”는 UN 특별회의의장의 말이 회의장 전체에 울려 퍼지자 같이했던 우리 여성장애인들 모두 부둥켜안고 울었다.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 국민포장을 비롯해 각종 민간 분야에서의 여러 수상 이력이 있던데… 

부산은 영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는 전혀 무관한 얘기였다. 배리어프리라는 개념조차 생소해하는 부산에서 화면해설 제작인력 양성교육을 시작하고, 작가와 성우를 길러냈다. 2009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직접 제작한 화면해설영화 두 편을 상영하게 했고, 2011년에는 국제영화제 차원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버·장애인 전용관 설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배리어프리영화를 제작 상영하며,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초대하고 있다. 화면해설, 한글자막 제공으로 시각, 청각장애인도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듣고, 보며,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장애인의 영상문화 접근성 향상에 기여했다하여 제14회 KNN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부산광역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할 때는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맞춤형 이동지원 이원화 시스템인 ‘장애인바우처 콜택시 정책’을 개발하기도 했다.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에 필수조건인 이동권 보장에 있어 대혁명으로 평가받았다. 현재 울산, 창원, 서울 등 전국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는 이 정책으로 2014년 제2회 대한민국 위민의정대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사단법인 문화복지 공감을 설립하여 장애인을 비롯한 노인, 시설아동, 다문화, 한부모, 저소득층 등 문화소외계층의 문화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문화도 복지차원에서 보장, 복지가 문화영역까지 확대’라는 문화복지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모든 활동들로 2016년 세계인권의 날에 국민포장을 받았으니 일복만큼 상복도 많은 것 같다. 감사할 뿐이다.

 

○ 장애인분야 현안 중 가장 관심 있는 분야와 개발원의 당면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당면과제가 곧 제 관심사이다. 개발원은 시대의 변화에 선도적으로 부응하고, 시대의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정책개발과 연구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있어 장애인의 디지털 대응력 강화가 그것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사회의 디지털화가 혁명이라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열리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사회관계망의 무한 확대와 생활의 편리함을 약속하지만, 장애인들은 디지털 격차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술인 디지털 기술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것은 사회참여와 자립을 위한 장애정책에 있어 시대적 요구다. 더 망설이거나 늦춰서는 안 된다.

다음은 장애인구 고령화이다. 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통계로 보는 장애인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등록장애인 비율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37.1%에서 2015년 42.3%, 2022년도엔 전체 등록장애인 수의 절반이 넘는 52.8%가 65세 이상이다. 이 비율은 같은 시기 전체인구 고령화 비율인 18%보다 거의 3배나 높은 수치다. 장애인구의 고령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로 장애인이 된 노인장애인과 장애인으로 살아오다가 노인이 된 장애노인 각각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복지설계가 필요하다. 장애노인은 오랜 장애로 빈곤, 고독, 만성질환 등 다중적인 문제에 놓여 있다. 이밖에도 재난·재해 시 거의 무방비나 다름없는 장애인 안전문제도 있고, 내부장애·화상장애인 등 소수장애인이나 경계선 장애 등 더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문제도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을 높일 때이다.

 

○ 임기 내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 지난 10여 년, 길게는 20년 동안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마다 예산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고, 제도의 사각지대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장애정책이 시대상황과 요구에 따라 산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현행 제도와 정책, 서비스들을 한 데 모아놓고 종합적으로 내용과 역할을 검토해서 서로 충돌하거나 중복되는 것, 또 누락된 것 등을 찾아 재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장애정책의 큰 계통수(系統樹)를 세우고, 그에 따라 서비스전달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본다. 정책의 효과성과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여전히 존재하는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는 최근 중점 논의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위해서도 전제되어야할 작업이기도 하다.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장애정책현장에서 그 흐름을 알고 있는 제가, 그리고 개발원이 이 일을 해내고 싶다.

 

○  어떤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늘 그래왔듯이 개발원 원장 임무도 재미있게 열심히 할 것이다. 저의 활동으로 장애인들이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원장 역할을 확실히 해서 개발원의 위상도 높이고, 소중한 직원들도 더 행복하고,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 장애인에게도, 개발원에도, 직원에게도 좋은 원장이 되고 싶다. 떠난 후에도 ‘생각하면 기분 좋은 원장’이 되고 싶은데… 너무 큰 꿈일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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