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NPO스쿨 대표
이재현 NPO스쿨 대표

미증유의 사태였던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4월 8일, 영국 정부는 자국의 자선단체(Charities)를 지원하기 위해 7억5000만 파운드(약 1조1000억 원)의 지원금을 긴급편성했다. 7억5000만 파운드의 절반은 정부부처를 통해 자선단체로 직접 전달되는 보조금의 성격이며, 나머지 절반은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소규모 단체들을 위한 보조금이었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리시수낙 재무부장관은 ‘전국 17만개의 자선단체를 지원하는 데에 있어 충분한 액수가 아니’라며 여타의 모금행사에도 적극 참여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정부 입장문을 통해 ‘자선단체들은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데 중차대한(crucial)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당 소속으로 현재 영국의 79대 총리이다. 브렉시트로 경제상황이 어려웠을 영국에서 단행했던 정부 차원의 의사결정은 우리 사회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신기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사회가 비영리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 전 세계 비영리조직이 맞은 위기

국가는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어째선지 모두들 화가 나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묻지마 살인’과 혐오범죄, 괴롭힘과 갑질, 부조리와 천민자본주의는 어디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며 누구의 책임일까? 마스크를 벗으면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 알고 기뻐했지만 우리는 느끼고 있다. 분명 무엇인가 달라졌고 잘못되었음을. 적어도 이것이 우리가 말해왔던 미래사회의 뉴노멀과는 꽤 거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비영리조직은 위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집단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기류가 관찰된다. 유독 이들의 강의 요청이나 컨설팅 의뢰가 많아지는 현상이다. 이를 업으로 삼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적 상황이 대부분이다. 기관 운영 위탁계약이 만료되어서 ‘굿바이 워크숍’을 해달라거나, 보조금이 삭감되었는데 후원도 예전 같지 않아 모금 컨설팅이 필요하다거나, 지난 정부 때 민관협력에 역량을 집중했는데 결과적으로 영향력이 더 실추되었다거나, 환경변화로 사업의 혁신이 필요한데 방향성을 잡을 수가 없다는 등의 슬픈 사연들이다. 호황이 있으면 불황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정치·사회의 변화와 관계없이 공통된 특성도 보인다. 비영리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부에서나 ‘그저 그랬다’는 사실이다.

비영리조직의 위기는 우리사회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자선분야 전문지인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The Chronicle of Philanthropy)」의 올해 4월 6일자 기사는 현재 미국의 비영리조직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영향력이 실추되었는지에 대한 각종 통계조사를 수집하여 제시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약 48%가 ‘비영리단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오직 5%만이 ‘자신 혹은 가족이 비영리단체의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으며, ‘20년 전 미국인의 85%가 기부에 참여했으나 현재 50%로 급감, 약 25%의 자선단체만이 투명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조사결과에서 보이는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비영리조직이 쇄신해야 할 이슈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하지만 미국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미국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비영리조직들이 지속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과연 비영리조직은 지속가능해야 할까?

그렇다면 비영리조직이 자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비영리조직의 존재목적이 자신의 조직을 지속가능하게 오래 운영하는 일인지 과연 생각해 볼 일이다. 환경이 보전되지 못하니 환경단체가 생기는 것이고, 인권이 위협받으니 인권단체가 생기는 것이고, 복지가 부족하니 복지기관이 생기는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란 모든 사회문제가 사라져서 비영리조직이 더 이상 생겨날 필요도, 또 수고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아닌가? 그렇다면 비영리조직을 지속가능성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목적전치에 해당한다. 비영리조직은 스스로의 생명력 연장이 아닌, 오로지 공익을 향한 사회변화가 존재목적이자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명이고 업의 본질이다.

비영리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비영리조직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설정한 사명에 맞게 충실하게 일하는 것은 비영리조직 고유의 역할인 반면 비영리조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정부의 역할이 크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음에도 비영리조직에 대한 최대, 최적의 지원자가 정부라는 세계관이 아직도 정립되지 않은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전 정부는 어땠을까? 팬데믹 기간 동안 영국 정부와 같은 특별한 지원책은 커녕 오히려 활동 금지라는 추상과 같은 정책에 비영리조직들은 순응해야만 했다. 특히 코로나19 창궐 초기, 지역주민을 위한 서비스가 주를 이루는 사회복지현장에서는 그저 지자체의 입만 쳐다보며 발을 구르는 안타까운 상황이 수 개월 지속되었다. 관리운영비가 보전되지 않는 순수 민간 영역은 더욱 심각했다. 뒤늦게 정부는 일부 비영리 영역과 함께 마스크, 재난키트 지원 활동을 전개했지만 국민의 안전권, 생명권 등을 이유로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할 때 복지, 환경, 자치, 성평등, 인권 등의 의제는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물론 비영리조직 스스로가 쇄신하고 혁신해야 할 숙제도 있다. 서울대아시아연구소의 임현진, 공석기는 「월간중앙」 2022년 12월호에 실린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라는 제하의 기고에서 시민사회영역이 위기를 맞이한 이유를 ‘운동성 상실’에서 찾았다. ‘과거 문제제기자에서 문제해결자를 자처하며 운동성을 상실해온 것이 현재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공익활동이라는 워딩으로 대체되는 시점부터 중립적인 활동이 선호되었고, 장기적인 사회변화보다는 단기적 참여를, 운동(activism)이 아닌 행동(action)을 하게 되니 활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가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공익활동에 대한 통합적 법률이 없다. ‘시민사회 활성화’나 ‘공익활동’을 주제로 한 지자체의 조례가 개별적으로 추진되어왔을 뿐이다. 국가적으로는 조각난 법률 속에서 임의단체, 비영리 민간단체, 사단·재단·공익·특수법인을 구분하여 세금관계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는 있으나 특성이 드러나는 조직의 고유의제에 따라 법체계를 정비하지 않음으로써 현장의 혼란은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 사회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조직형태가 비영리조직?

비영리조직의 침체 원인 중 하나는 비영리조직 내부의 조직문화 이슈도 있다. 세대갈등으로 불리는 이 이슈는 MZ세대가 등장하며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고, 비영리조직도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기성 비영리조직은 세대갈등을 오롯이 마주하며 비영리조직에서 맛볼 수 있는 효능감, 소속감, 연대감, 성취감, 사명감 등의 비재무적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다. 대신 유례없는 세대갈등과 인력난, 지나치게 분절화 된 업무와 부서이기주의, 충분한 준비 없이 이행한 수평적 조직화와 그로 인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조직운영 등 시행착오로 매운맛을 보았다. 기성조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젊은 세대는 새로운 세상으로 시야를 돌렸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개하는 운동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의 실효적 해결책을 만드는 방법론 자체에 더 무게를 두는 방향이다. 실효적 해결책을 선호하는 현상은 변화된 사회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전 지구적 유행도 한몫했다.

과거 신생 조직을 벤처라 명명했던 시절을 지나 스타트업이라는 명칭이 부각된 이유는 신기술(테크놀로지)이나 참신한 아이템과 아이디어 기반의 방법론, 혹은 그러한 방법론을 통한 실효적 해결을 강조한 표현방식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한 신기술에 열광했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스마트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면, 상업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중심에 둔 구상은 인지상정이다. 오로지 문제해결을 위한 적합한 방법론이 무엇인지가 최고의 가치가 되니 영리냐 비영리냐의 조직형태는 2차적 이슈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적합한 조직형태를 비영리조직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 순간에도 비영리·임팩트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고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의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 비영리조직의 본질,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의 시선이 스마트한 방법론에 쏠리는 지금, 우리사회의 거시적인 비전에 대해서는 누가 고민하고 있을까? 당장의 현안을 해결하는 똑똑한 방법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올바른 쓰임새를 정의하는 사회의 큰 그림에 대한 상이 불분명하다면 무익하거나 위험하다.

철학자 박구용은 건강한 도시공동체를 위해 ‘사명감과 친밀감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사명감만 있다면 또 하나의 폭력이 되고, 친밀감만 있다면 정의는 실종된다. 사명은 정의에 근거하고 친밀감은 신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정의 없는 사명은 아집이고, 신뢰 없는 친밀은 형식일 뿐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비영리조직이 지속가능해야 할 당위적 이유는 없다. 완벽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기에 비영리조직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비영리조직이 사회의 건강성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비영리조직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의에 기반한 사명에 충실하고, 신뢰에 기반한 친밀감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비영리조직의 기본기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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