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원규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층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을 끄고 인명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단순화하면,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건물의 높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 커다란 사다리와 높은 수압으로 물을 내뿜는 큰 소방호스를 활용하여 큰 불줄기를 잡는 것이다. 둘째는 큰 불줄기가 잡혔다고 해도 이 건물의 각 층, 각 호실에는 남아있는 잔불들과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주된 사다리로부터 확장된 작은 사다리를 각 층에 걸치고 이를 통해 소방관들과 구조대원들이 촘촘하게 잔불을 진화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주 사다리와 확장 사다리, 공공복지와 민간복지

벌써 80여 년 전에 영국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베버리지 보고서는 당시 사회의 다섯 가지 거대한 문제를 5대 거악(the five Giants)으로 묘사한 바 있다. 궁핍, 질병, 불결, 무지 및 나태가 그것이다. 이들 거악들을 물리치기 위한 노력들은 사회보장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궁핍에 대해서는 소득보장정책, 질병에 대해서는 의료보장정책, 불결에 대해서는 주택정책, 무지에 대해서는 교육정책, 그리고 나태에 대해서는 고용정책이 각각 제시되었다. 

서두에 소개한 화재 진압 상황에 비유해 본다면, 이들 5대 거악을 물리치기 위한 사회보장정책들은 큰 불줄기를 잡기 위한 주 사다리의 역할에 해당할 것이다. 국가가 중심이 되어 이들 사회보장정책을 집행하면 5대 거악들은 모두 퇴치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베버리지 보고서 작성자들은 알았기 때문에 확장 사다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민간의 촘촘한 복지 노력을 강조하였다. 이는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사회보장의 세 번째 기본 원칙인 ‘정부와 민간의 협력(cooperation)’으로 표현되었다.

지난 수십 년 간 이루어진 한국 사회복지 발전을 보면, 제도적으로는 거의 완비된 것처럼 보인다. 베버리지 시대의 5대 거악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정책을 넘어 새롭게 등장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공공복지 영역들도 크게 확장되었다. 물론 아직도 각 정책 영역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 예로 노인문제와 이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자. 최근 보도에 따르면, 만 66세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OECD의 2018년 노인빈곤율 조사에서 한국은 43.4%로 전체 OECD 가입국 중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빈곤에 대처하는 주된 사다리 역할을 하는 공적 연금이 뒤늦게 시행되었고, 정규직에 유리한 방식으로 시행되는 등 문제가 적지 않으며, 그에 대한 대안 마련은 더디기만 하였다. 그러다보니 노인자살률 세계 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을 여러 해 동안 유지하고 있다.

생활주변에서 살펴보면, 생계를 위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 연명하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녀나 친지와 단절되어 고독사에 이르는 노인들의 사연은 이제 뉴스거리조차 되기 힘들 정도로 빈번하다. 치매 남편을 돌보던 부인이 12층 아파트에서 동반 추락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다는 최근 뉴스는 고령사회에서 대규모 비극을 예고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노인문제라는 화재 현장에 접근하여 큰 불줄기를 잡을 주된 사다리와 함께, 현장 구석구석에서 촘촘하게 진화하고, 꼼꼼하게 구조할 수 있게 해주는 확장 사다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연금제도를 포함한 노인복지정책을 개선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공공복지 정책들이 입안되어 시행되기까지 지체되는 시간을 고려할 때, 당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가슴 아픈 사연을 뉴스로 접하게 되면, 기부나
자원봉사를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는 시민들이 있다. 이러한 측은지심은 민간복지의 출현과 발전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종교에 뿌리를 둔 자선과 이타심에 기반한 박애는 민간복지의 원형으로서 오늘날에도 그 사회적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오랜 사회복지의 전통이다.

 

○ 자선과 박애의 조직화, 그리고 사회복지협의회의 출현

19세기 말 산업화에 가장 앞섰던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산업화는 빈곤, 질병, 범죄, 학대 등 많은 사회문제들을 발생시켰다. 해당 문제들에 대한 국가의 사회정책은 당시 막 논의가 시작되거나 혹은 일부 시행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서민들의 민생은 끔찍했다. 이를 보다 못한 종교인들과 독지가들이 각자 자선단체와 박애조직을 만들어 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나섰다. 각각의 자선 단체, 박애 조직들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펼치다보니 도움에서 중복이나 누락이 발생하였다. 가진 자들의 생색내기라는 따가운 비판도 등장하였다.

사회적으로 약한 자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조직화하고, 자선·박애 활동에 수반되었던 비효율과 부정의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끼리의 연락과 조정을 위한 우산과 같은 조직이 사회복지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출현하였다. 이렇게 출현한 사회복지협의회는 자선·박애의 조직화를 통해 지역사회 내의 기업, 언론, 종교 등의 영역들과 협력하여 국가 공공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 구석구석에 사랑의 빛을 비추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설립된 사회복지 공익법인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복지 증진에 기여해왔다. 사회복지협의회는 사회적 약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촘촘하게 돌봄을 제공하는 조직으로서 특히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는 지역 내 사회복지 기관·단체 간의 연계·협력·조정을 통해 지역 복지 공동체를 구축해왔다.

사회복지협의회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민간조직이다. 구체적으로 사회복지협의회는 복지소외계층 발굴 및 민간자원 연계지원(이하 ‘좋은이웃들’ 사업), 푸드뱅크, 사회복지자원봉사, 멘토링, 1인1나눔계좌, 고향사랑펀드 등 약자복지를 위한 사업을 전국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복지 전달체계인 사회복지협의회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63개(71.5%) 시군구에 설치되어 있을 뿐 아직도 65개(28.5%) 시군구에는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복지전달체계와의 긴밀한 협력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는 실정이다.

 

○ 민관 복지전달체계 간 긴밀한 협력관계 촘촘한 약자복지 위해 꼭 필요하다

사회복지협의회는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완화를 위한 지역 거버넌스 구축에 나섰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법’, 이른바 ‘복지 3법’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해 오고 있으나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있다.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그때마다 대책마련에 부산하였지만 대책은 허술하기 일쑤였고, 공공복지 전달체계는 기대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힘든 삶이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1차적으로 중요한 사례 발굴 및 제보 기능을 제한된 행정력에만 기댈 수 없다는 점도 밝혀졌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의 사례를 발견 혹은 발굴한다고 해도 읍면동이나 시군구청 등과 같은 공공복지 전달체계를 통해 돌봄과 지원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더딘 경우가 많았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기부나 봉사와 같은 자발적 복지 참여가 절실한데 시민참여를 활성화할 민간전 달체계는 미비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간 사회복지협의회가 공공과 민간복지 전달체계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이룩해온 일들이 촘촘한 약자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예컨대 사회복지협의회는 현재 전국 117개 시군구에서 ‘좋은이웃들’ 사업을 수행하여 2022년에만 17만3218건, 현금환산액으로는 약 90억 원에 이르는 다양한 민간 복지자원과 서비스를 연계하고 지원해왔다. 또한 사회복지협의회는 푸드뱅크, 사회공헌활동기부은행, 사회복지자원봉사, 고향사랑펀드 등 지역사회의 민간자원을 동원하여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해왔다. 아울러 지역사회 현안과 이슈를 효과적·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업자원 및 역량을 활용하여 민간복지의 확대를 도모해왔다. 2019년부터 ‘지역사회공헌인정제’를 시행함으로써 지역의 사회복지문제 해결에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여 사회복지협의회는 정부의 지역사회 중심 통합돌봄서비스에서 지역복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임해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군구 사회복지협의회는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 주거, 의료 등 다양한 분야를 연계하는 허브 기관으로서 통합돌봄서비스 제공기관을 연계·조정하여 이용자에게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뮤니티케어 센터 역할을 수행할 태세를 갖췄다. 실제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및 14개 시군 사회복지협의회는 지난해 7월 5일,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과 지역사회 돌봄 네트워크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지역복지에서 사회복지협의회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협력하여 지역복지를 위한 협치 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이르고 있다. 


○ 민간복지는 정말 사회복지라는 큰 바다에 내리는 ‘작은 빗방울’에 지나지 않는가?

예부터 자선·박애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들이 있어왔다. 속죄하기 위해 자선을 베푼다거나, 자선과 박애가 기득권층의 과시욕의 발로라든가, 자선활동은 부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석금이라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자선과 박애는 큰 바다에 내리는 빗방울과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아무리 거세게 내리는 빗방울이라 하더라도 큰 바다에 내리는 비는 해수면을 의미 있게 상승시키지는 못한다. 그저 수면에 물방울을 튀기는 정도라는 것이다. 자선과 박애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긍이 가는 비판들이다. 특히 제도적으로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 복지정책을 보다 책임 있게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물방울이나 튀기는 민간복지는 그 영향에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을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실제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실시한 ‘좋은이웃들’ 사업, 푸드뱅크, 기업 사회공헌활동 육성지원, 사회복지자원봉사 인증관리 등 정부보조사업, 기업 등의 후원금품으로 펼치고 있는 나눔사업 예산 내역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생각에는 일견 일리가 있다.

2022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총 예산은 694억원인데 보건복지부예산(추경기준) 101조4100억 원에 비추어보면 0.068%에 지나지 않는 규모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예산 가운데 정부보조사업 예산은 149억 원으로 총 예산 대비 21.6%에 지나지 않지만 모금이나 푸드뱅크 등과 같은 민간자원으로 조성한 나눔사업 예산은 513억 원 규모로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총 예산 대비 75.4%를 차지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20% 남짓한 정부보조사업을 마중물 삼아 민간의 각종 후원사업을 개발하여 민간복지에서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고, 취약계층을돕기 위한 복지자원의 파이(pie)를 키워냈다. 이렇게 더 커진 파이를 가지고, 보다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보다 더 촘촘하게 지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특징이자 존재근거이다.

 

○ 복지의 바다에 내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빗방울’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희망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694억 원의 예산은 101조 원에 달하는 보건복지부 예산에 비하면 큰 바다에 내리는 ‘작은 빗방울’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빗방울은 많은 시민들이 그 존재를 알아주는 물방울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이러한 의미 있는 작은 물방울을 복지의 바다에 만들어 내고 있고, 이 빗방울을 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키우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리고 이 빗방울 덕분에 조금이라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된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거기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민들도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 증진이란 거대한 공공복지 제도와 섬세한 민간복지가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협력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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