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이정규씨는 일찍이 대학시절의 노숙체험과 학보사 기자때 빈곤층 취재로 다져진 '내공'이 아니었다면 노숙인들과의 첫 대면은 무척이나 생경했을 터다. 그렇지만 이씨는 준비된 노숙인들의 벗이었다.

올해 첫 새내기사회복지상 수상자인 이정규씨는 대학시절부터 노숙인 체험을 하는 등 노숙인 복지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올해 첫 새내기사회복지상 수상자인 이정규씨는 대학시절부터 노숙인 체험을 하는 등 노숙인 복지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올해 첫 새내기사회복지상 수상자인 이정규씨는 대학시절부터 노숙인 체험을 하는 등 노숙인 복지에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음주하신 분들한테 소주병으로 얻어 맞은 적도 있어요. 속상하지 않았냐구요? 글쎄요, 그 분들은 누구에게 마음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안 되잖아요. 그 분들로서는 하나의 의사표현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는 '씩' 웃었다. 그 후로도 서너번 더 소주병으로 맞았다는 그다. 이젠 웬만한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익힌터라 더 이상 소주병 세례는 받지 않는다.

대한성공회유지재단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이정규씨(27·사진)는 2005년 10월 서울역에서 노숙인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일찍이 대학시절(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의 노숙체험과 학보사 기자때 빈곤층 취재로 다져진 '내공'이 아니었다면 그들과의 첫 대면은 무척이나 생경했을 터다. 그렇지만 이씨는 준비된 노숙인들의 벗이었다. 소주병 세례에도 '오죽했으면'하고, 오히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며 안타까워 했을까.

사회복지분야에서도 노숙인복지는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직과 가정해체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그제서야 노숙인 문제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노숙인들은 노인, 장애인, 아동쪽에 가려진 채 뒷전으로 한참 밀려 나 있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는 IMF직후인 1998년 9월 문을 열어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노숙인 복지시설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정규직 24명을 포함 40여명의 직원이 노숙인 상담, 무료급식, 무료진료, 쉼터제공, 인문학코스 개설, 취업알선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처음엔 소주병 세례 곤욕…저금통장 보여줄땐 뿌듯= 이씨의 소속은 현장지원팀이었다. 서울역과 용산역, 남산을 쫓아다니며 노숙인의 얘기를 들어주고, 욕구를 끄집어내는 거리상담이 주업무다. "노숙인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서 상처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쉽게 가슴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에겐 시간이 힘이 됐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노숙인들과 머리를 맞대며 어울리는 시간이 늘자 하나, 둘 가슴에 맺힌 얘기를 끄집어 냈다. "사업실패와 가정불화는 물론 사행성 게임에 빠졌던 그들의 과거사는 구구절절해요. '끝내 갈 곳은 거리밖에 없었다'는 얘기만 빼놓고, 노숙인들마다 속사정은 다 다릅니다. 그들에게 안성맞춤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욕구파악도 중요하지만 노숙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해요."

이씨는 "사회안전망을 빠져나가는 노숙인들에겐 무엇보다 주거안정과 일자리마련, 의료서비스 제공이 시급하다"며 노숙인시설 전달체계 확립과 진료센터 건립을 희망했다. 특히 그는 의료재활센터 건립을 강조했다. "노숙인 가운데 40% 가량이 알콜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비전트레이닝센터는 한 곳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실정에서 노숙인들이 재활치료를 받아 사회복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이씨는 사회복지계가 노숙인 복지에 더 많은 애정을 가져줄 것으로 주문하고, 노숙인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지지체계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사회복지계가 노숙인 복지에 더 많은 애정을 가져줄 것으로 주문하고, 노숙인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지지체계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사회복지계가 노숙인 복지에 더 많은 애정을 가져줄 것으로 주문하고, 노숙인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지지체계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현재 그는 '무료급식 당번'으로 보직을 바꿨다. 매일 250여명의 노숙인들이 저녁식사를 이 곳에서 해결한다. 이씨의 이어진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일반 사람 두끼에 해당하는 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어도 게눈 감추듯이 빨리 먹습니다. 거리에서 후다닥 먹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눈칫밥'을 먹잖아요."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의 식당은 쾌적했다. 3교대로 식사를 해도 20-30분가량 여유가 있는데 그들은 5-6분이면 수저를 놓는다고 했다. 하루 한끼를 이곳에서만 양껏 먹을 수 밖에 없는 이들도 마찬가지란다. 그만큼 거리에서 '눈칫밥을 빨리 빨리' 먹던 습관은 버리지 못했다는 것.

이씨는 "거리에서 쭈그리거나 선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고, 식당에서 여유롭게 식사시간을 갖는 것도 노숙인들의 자존감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식사시간마다 '천천히'를 입에 달고 산다"고 했다.

>▶앞으론 자활 프로그램 개발․수행통해 자립기반 구축=노숙인분야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임금도 박하고 노동강도도 세기 때문에 사회복지분야 중에서도 기피분야에 속한다. 이씨는 어떨까. "호봉제도 아니고, 수당도 없습니다. 하지만 월급을 보며 일하지는 않아요. 노숙인복지에 대한 애착이죠. 그래도 우리 형편은 노숙인분야 중에서 제일 좋습니다. 우리보다 어려운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구김이 없다. 웬만하면 '힘들다', '어렵다'고 하소연이라도 할 텐데 자신보다 더 열악한 다른 노숙인 시설을 보며 위안을 삼는 이씨다.

이러한 이씨도 "사회의 편견도 힘들지만 사회복지사 동료들까지 '노숙인 복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니냐'며 낙인찍는 것을 볼땐 정말 힘이 쭉 빠진다"고 했다. 젊은 사회복지사들이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으며 도전이 필요한 노숙인복지 분야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아쉽다는 그다. 노숙인에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는 그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이내 그는 앞날을 얘기하며, 자신있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인문학과정이나, 연극치료 등과 같이 앞으로 노숙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노숙인들이 거리가 아닌, 가정과 일터에 당당히 위치할 수 있도록 지지체계 복원의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끔 '돈 벌었다'고 저금통장을 보여주며 '소주 한 잔 사주겠다'는 노숙인을 만날 때나 가족과의 재회에 성공했다는 노숙인의 연락을 받을 때 가장 뿌듯하다는 이씨에겐 이제 '소주병 세례'가 아닌 '소주잔 우정'이 만발할 것 같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삼성전자, 국민일보는 제37회 새내기사회복지상 수상자로 이씨를 선정, 노숙인의 영원한 '길벗'이 되길 당부했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