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책임연구원
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책임연구원

보웬(Bowen, 1953)의 저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ies of the businessman)’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 기업 경영의 범주는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등 폭넓은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고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기업 윤리경영이 투자자의 투자 의사결정에 있어 최우선 가치로 대두되었으며, 환경이슈가 부각됨에 따라 기업 내·외부 이해 관계자가 기업으로부터 탄소중립 추진 전략이나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요구하는 모습이 확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ESG 경영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모습이다.

 

○ 가까운 듯 먼 사회복지와 ESG

ESG 경영이란 표현은 2004년 UN글로벌콤팩트(UNGC)가 발표한 ‘Who Cares Win’이라는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전통적인 재무적 지표로만 기업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기업 경영의 비재무적 요소를 평가하고자 고안되었다. 특히 기업의 친환경 경영(E), 사회적 책임 경영(S), 지배구조의 투명 경영(G)을 중심으로 한 평가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구속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준(準)강제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했던 CSR이나 CSV(Creating Shared Value)와 구분되는 차별점이기도 하다.

준강제성과 더불어 ESG 경영이 갖는 특징적인 성격은 바로 ‘확장성’이다. 개념적 특성상 자연스럽게 민간 기업에 대해 논의가 진행된 CSR, CSV와는 달리 ESG 경영의 확산은 민간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부문에서도 그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민간 기업의 ESG 경영 확산을 위한 정책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적으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있어 ESG 관련 지표의 비중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사회복지영역에서의 ESG 경영 활용은 아직까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구체적인 방안과 체계적인 사례가 제시되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본래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요구되어 발전해 온 ESG 경영을 사회복지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에 대해서조차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사회적 가치 창출, 지속가능성, 상생 등 ESG 경영의 관점에서 강조하는 핵심가치들이 사회복지 본연의 가치와 분명 맞닿아 있음은 분명하다. 민간 기업과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창출을 추구하며 환경, 인권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조직 또한 ESG 경영에 관심을 갖고 사회복지 조직 관리 및 행정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 ESG 경영은 사회복지조직에 적합한가?

간단히 말해 민간 기업이 재화를 생산하여 소비자에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 ESG 경영이라는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투자자 유치가 가장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영과정에서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철저히 공개하는 등의 노력을 취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대부분의 투자자는 ESG 경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다른 자동차 회사보다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ESG 경영은 민간 기업의 이윤과 직결되며, 큰 틀에서 기업의 궁극적 목적인 이윤 창출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사회복지조직의 경우, 본질적인 목적은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욕구 충족 또는 지역사회문제의 해결이라 할 수 있다. 즉, 사회복지조직의 ESG 경영 도입으로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가 더욱 만족하고 지역사회문제가 좀 더 효과적으로 완화될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복지조직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과중한 환경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 경영을 해야 한다는 동기도 다소 부족하며, 사회복지조직의 사업 자체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경영 과정에 추가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미 사회복지조직은 경영 공시를 실천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으로부터 수많은 평가와 감사 등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종 ESG 경영을 혼동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가령 취약계층 대상으로 제공해 온 도시락을 다회용기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으로 바꾸거나, 이동목욕차량을 전기차로 대체하여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시도 등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친환경적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에 ESG 경영에 가까울 것이다. 반면, 최근 여러기관에서 ESG 경영 사례로 소개하고 있는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단어 ‘jogging’의 합성어) 활동은 경영 차원에서 친환경적 요소를 고민한다기보다는 단순한 환경정화 또는 사회봉사활동의 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구성원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사회적 기여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CSR에 가깝다고 판단되며, 부득이 ESG란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ESG 실천’이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본질은 지속가능성이다

민간 기업,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너나할 것 없이 ESG 경영을 도입하고 있는 바탕에는 지속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 문제, 불평등 문제, 불공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자와 소비자가 칼을 빼든 것이다. 자발적 참여를 통해 추구해 온 CSR 또는 CSV와 달리 ESG 차원에서 기업 경영의 비재무적 요소를 평가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ESG 경영이 확산되고 있으니 사회복지조직도 ESG 경영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도 많아지고 있다. ESG 경영이 확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달성하는 데에 사회복지조직의 ESG 경영이 필요할까? 민간 기업 등 다른 조직은 이윤극대화 과정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면, 사회복지조직은 매우 그렇지 않다. 민간 기업 등 다른 조직은 사업 과정에 ‘S’를 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사회복지조직은 활동 자체가 이미 ‘S’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 기업 등 다른 조직은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을 위해 더욱 강화된 관리가 필요하겠지만 사회복지조직은 오래 전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철저한 평가와 감독을 받고 있다.

ESG 경영을 외면하자는 뜻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수용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사회복지조직이 추구하는 사회복지 가치를 실현하고 조직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탐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질은 지속가능성이다. 민간 기업이 무분별하게 이윤을 창출하고 독식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해치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면, 오히려 사회복지조직은 조직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조직은 ESG의 가치를 경영에 활용하기보다 실천에 접목하여 사회복지실천 영역 확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활동이 부족했던 ‘E’ 영역의 직접적인 실천을 늘릴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촉진하려는 노력도 사회복지조직의 역할이 될 것이다. 이미 지금까지 잘 수행해 오고 있는 ‘S’ 영역의 실천은 유지하되 더 많은 민간 기업이 ‘S’ 실천에 동참하도록 연계·협력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조직 단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거버넌스(G)가 수평적이고 공정하게 구축될 수 있도록 사회활동가(social activist)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