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개최된 지 올해로 100주년이 되었다. 100년 전 기념식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을 발표하였고, ‘어림(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으로 정의하며 어린이가 성장하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천명하였다. 이날의 어린이선언은 1924년 9월 26일 국제연맹이 채택한 제네바 아동권리선언보다 1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법제는 성장하는 힘을 가진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서 반영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아동복지법’만 봐도 아동은 대리자인 성인에 의한 보호와 양육의 대상으로만 반영되고 있다. 다행히 지난 4월과 5월, 국회에서는 아동중심 관점의입안을 고려하는 ‘아동기본법’안이 발의되었다. 아동이익 최우선 원칙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법적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아동기본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 필요성과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지 알아보고자 한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대한민국 정부는 UN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30년이 넘었으며, 비준국은 5년마다 협약 이행상황을 보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2017년에 제출한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하여 2019년 UN아동권리위원회는 최종견해로서 아동 존중, 아동이익 최우선 원칙 고려 등 모든 아동에게 적용되는 협약의 기본적 원칙의 국내법 규정화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였다. 국내에서도 19대 국회부터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동기본법’은 발의와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반복되고 있었다. UN의 권고와 국내의 아동인권 강화 움직임에 따라 정부는 ‘제2차 아동정책기본계획’에 ‘아동중심’, ‘권리 주체로서의 아동’에 대한 정책 기조를 분명히 했으며, ‘아동기본법’ 제정 의지를 표명하였다. 2023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발표한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방향’과 지난 4월 발표한 ‘윤석열 정부 아동정책 추진방안’에도 아동정책 거버넌스 강화를 위한 ‘아동기본법’ 제정 추진이 포함되면서 현재는 국가차원의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었다.

 

○ 아동 중심의 아동권리 실현 위한 법률적 근거, 아동기본법 

‘아동기본법’은 아동정책의 이념, 목표, 기본방향, 아동의 핵심권리, 운영원리를 규정하는 법률로 아동 관련 개별 법률을 규율하는 기본법률이다. 아동은 성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동을 주로 보호, 훈육, 교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미성숙한 존재로만 여겨왔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으로 노키즈존과 같은 아동혐오 및 차별문화가 생겨나고,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아동학대 및 아동살해 후 자살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뿐만 아니라 현행 아동 관련 법률도 보호와 선별적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간의 법제는 대부분 아동관련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정비하기 위해 아동학대 사후대응 등 시급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관련 법률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해 분절적인 서비스가 제공되고, 각각 다른 법률에 규정되어 비체계적이라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렇게 아동 관련 법률에서조차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회적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명문화하고, 일반아동과 보호대상아동을 모두 포괄하는 아동 중심의 아동권리룰 실현하기 위한 법률적 근거가 되는 ‘아동기본법’ 제정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동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제고하고 UN아동권리협약의 권고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아동기본법’은 협약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지금까지 관련 연구나 발의를 통해 구체화된 법안들에는 세부적 내용은 다를지라도 아동이익 최우선 원칙, 비차별 원칙, 생존·보호·발달·참여 및 자립할 권리 등 아동의 천부적·보편적·절대적 권리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고 ‘가족 내에서의 아동’이 아닌 ‘성인과 동등한 자율권을 가진 개인’으로서 아동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법안은 공통적으로 총칙, 아동정책의 수립 및 시행, 아동의 권리 및 보호, 권리구제를 담으며, 각 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첫째, 총칙에서 목적과 기본이념, 정의, 부모 등 보호자 및 국가와 사회적 책무, 그리고 타 법률과의 관계 등을 담아 UN아동권리협약의 이념과 원칙을 충실히 반영한다. 둘째, 아동정책의 수립 및 시행 부분에서 아동정책조정위원회,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실태조사, 평가 및 아동권리보장원의 설립 운영 등에 관한 근거와 지방정부 아동정책 추진체계와 아동정책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제시된다. 셋째, 아동의 권리 및 보호에서 수요자인 아동의 다양한 권리가 명확하게 규정되고, 이를 구현하는 국가, 지자체 등 사회구성원의 책임과 의무가 규정된다. 마지막으로 권리구제에서는 아동의 인권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기구가 필요하다는 UN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제2호에 근거한 아동권리옹호관을 두도록 명시하고 있다.

 

○ 아동기본법의 쟁점과 한계 

제정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쟁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첫 번째가 헌법과의 관계이다. ‘아동기본법’에서 다루는 이념은 헌법에서도 다루고 있고, 헌법의 대상은 모든 국민으로써 아동도 그 예외가 아니라는 이유이다. 법치 국가에서 헌법은 최상위근본법이고, 모든 법은 헌법의 구체화법이다. ‘아동기본법’은 헌법의 제1단계 구체화법으로 해당 영역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안내하게 된다. 해당 영역의 기본이념이나 원칙들을 담아 헌법의 2단계 구체화법이라 할 수 있는 해당 영역에 대한 개별법 제·개정 근거와 기준이 되는 규범력을 가질 수 있어 UN아동권리 협약의 실행법으로서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

두 번째 쟁점은 관련법들과의 관계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아동복지법’에는 이미 아동권리에 관한 규정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아동복지법’에서 권리조항을 분리한다 하더라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장기적으로 ‘청소년기본법’과의 통합을 고려하되 법률뿐 아니라 정책적 통합도 함께 고려할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그 밖에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와 관련하여 현 조항은 민법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사안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법률과 ‘아동기본법’ 간 연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숙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아동에게 중첩된 안전망을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는 만큼 ‘아동기본법’과 관련 법률이 두터운 상보적 규범관계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향후 발전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아동기본법’이 아동의 권리가 강조되고 책임과 의무는 규정되지 않아 아동이 책임 있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아동기본법’은 지나친 권리의 강조로 아동의 일탈과 방종을 눈감아 주는 법이 아니며, 아동을 성인과 같은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되 성장 과정 중에 있는 특성을 감안하여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자는 법이다.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권리는 타인의 권리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것은 각 개개인이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기대할 수  있다. 아동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 그 나이에 적합한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는 점은 ‘아동기본법’의 대전제이다.

마지막으로 UN아동권리협약에는 제정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혁신, 디지털 이행기의 새로운 양육·교육 패러다임 등 사회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한계도 있다. 따라서 ‘아동기본법’은 UN아동권리협약의 이행법으로 협약 내용을 조문화하면서 디지털 오보, 사이버불링, 온라인 그루밍, 개인정보 침해 및 해킹, 사이버폭력 및 부적절한 콘텐츠 노출 또는 접촉 같은 디지털 위험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문 보완이 요구된다. 동시에 아동의 디지털 역량 및 디지털 문해력 강화를 위한 가정과 학교, 국가의 책임에 대한 내용도 필요하다. 

각계에서도 한마음 한뜻으로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서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민간은 보편적 아동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아동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며 간담회, 캠페인 등을 추진하였다. 2023년 3월에는 아동과 NGO 단체가 모여 ‘아동이 제안하는 아동기본법, 100인의 원탁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 등 공공에서도 2022년 ‘아동을 권리주체로 존중하는 사회를 위한 기본법 제정 릴레이 아동권리포럼’을 총 5차례 개최하여 아동 당사자, 학계 및 전문가, NGO가 제시하는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였다. 더 나아가 민·관 협력으로 ‘아동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아동기본법 토론회’을 통해 아동의 목소리를 듣고, ‘아동기본법’ 제정에 대한 많은 이들의 지지와 공감을 확인하였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도 UN아동권리협약을 국내법에 편입시키거나 헌법 또는 각 법률조항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점진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이 2022년에 ‘아동기본법’을 제정하여 2023년 4월부터 시행하고, 어린이가정청을 설립한 것이다. 일본 ‘아동기본법’은 ‘아동’을 구체적인 연령기준 대신 ‘심신의 발달 과정에 있는 자’로 규정함으로써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사회적 지원, 권리주체에서 배제되어 버리는 상황에 대처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아동기본법’에도 적용을 고려해 볼 만하다.

 

○ 아동기본법, 세계 최고의 아동인권 보장하는 기반 되길…

그동안 우리나라 법제는 대부분 어떤 정책이나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을 설립하고, 그 권한과 기능 등을 정하는 공급자 중심의 입법 방식을 관행화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 흐름은 수요자 중심을 강조하고 있고, 공급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들은 개별 법률에서 상세하게 정할 수 있으므로 ‘아동기본법’은 아동의 권리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권리에 대한 성문화가 요구되는 사회는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동인권에 대한 포괄적 법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아동기본법’ 제정은 협약 이행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이다. 법이 제정된다면 UN아동권리협약을 단순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태어나든 대한민국에서 성장하는 아동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아동인권과 복지를 보장하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권 발전 역사에서 가장 소외받아 온 아동인권에 대해 ‘아동기본법’ 제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요구받고 있다. 100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이 그랬듯이 이제는 책임 있는 어른들이 나설 때다. ‘아동기본법’ 제정을 통해 향후 100년을 준비하고, 이 땅의 모든 아동들이 당연한 인권을 당당하게 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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