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김남숙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남숙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3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이 발표됐다. 본 계획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대한 주요 성과 중 하나로 2021년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탈시설로드맵)’을 꼽았다. 거주시설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장애인들의 온전한 자립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이며, 당시 문 정부는 대대적인 홍보를 아끼지 않았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이미 몇 세대는 더딘 행보이나 뒤늦게라도 UN의 권리협약 내용을 이행하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역사회 자립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였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동시에 장애계 뜨거운 이슈는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탈시설지원법)’이었다. 2021년 정기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아직 국회 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탈시설지원법’에 대한 찬반이 아직도 뜨거워 그 진행은 정지된 상태이다. ‘탈시설지원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나마 탈시설 로드맵은 지역사회로 전환될 거주시설 장애인 지원의 정부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탈시설 로드맵도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가장 큰 지적으로는 시설 폐쇄 원칙에 대한 적절한 제시가 부족하며, 시설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 내 지원 체계들의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런이유에서 탈시설지원법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거주시설 장애인 한 사람의 삶이 지역사회로 이동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다층적인 탈시설 지원이 필요하다. 거주가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옮겨지는 과정이므로 주거의 지원부터 필수적으로 논해야 하며, 의료, 교육, 직업, 의사소통지원, 권익옹호, 안전, 지역사회 교류는 물론, 함께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장애인 인식개선 등이 수반되어야 하는 총체적인 노력이다. 지역사회로의 거주 이동이 발생한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규율하고 사회적 현실에 보다 순발력 있고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자체 조례 분석이 적합하다.

헌법을 비롯한 국가의 법제들은 사회적 사실과 괴리가 있거나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주장애인의 지역사회 전환은 장애인 당사자만의 이슈가 아닌 지역주민, 그리고 그 지역사회 전체의 이슈이다. 이런 취지로 본고에서는 거주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위해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마련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정리하였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을 위한 조례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비전은 ‘맞춤형 지원으로 장애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실현하는 행복사회’이다. 과거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라는 슬로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두 지향하는 바는 평등한 삶으로 관철된다. 이는 거창한 변화나 혁신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장애의 유무를 떠나 누리고자 하는, 삶의 터전인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영위하는 매우 보편적인 일상적 삶(ordinary life) 그 자체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바로 탈시설 정책의 중추적인 기제이다.

정부차원의 법규나 정책은 지역주민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규범제정자와 수범자의 간격을 좁히고, 지역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입법자의 부담을 경감시켜 탄력적인 규율을 가능케 하며, 관련 법률의 제정을 전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권영성, 1994: 윤찬영, 2010).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전환을 위해서는 오히려 거시적인 정부의 움직임보다는 지자체조례를 통한 자립지원 마련이 지역사회의 삶과 거리 감이 더 좁다. 이미 기존 여러 연구들에서 조례가 실효성을 충분히 발휘하였는지 분석하는 틀이 제시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장애인 탈시설 관련 조례들이 지자체별로 이미 제정된 경우는 다음의 분석을 통해 개정이 요구되며, 혹 관련 조례들을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면 다음 내용을 반드시 담아야 한다. 즉, 권리성(조례 대상의 권리성을 제시하지 못하면 권리 구제에 대한 청구 등이 불가), 자치단체장의 책무성(지원 계획 수립 기간 및 시기의 구체성 명시), 대상자 범위의 타당성, 급여(지원사업)의 종류와 정도(지역사회 전환에 대한 지원 및 의무사항의 명문화), 재정의 책무성(임의적 규정이 아닌 강제조항 필수), 마지막으로 전달체계의 확보(서비스공급주체 명시로 그 책임성을 강화)이다.

 

ICT 기반의 지역사회 지원체계 구축

탈시설 로드맵의 기초를 파악하고자 한국장애인개발원은 2020년 대대적인 장애인 거주시설전수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시설장애인의 80.1%가 발달장애를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한국장애인개발원, 2020). 이는 탈시설을 위한 발달장애 특성 이해에 대하여 정부 및 범사회적 차원의 연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발달장애의 두드러진 특성은 인지장애이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혼자서 외출이 어렵다’고 보고하는 장애유형이 자폐성장애(77.3%), 뇌병변장애(51.3%), 지적장애(45.3%), 언어장애(31.2%) 순으로 나타나 자폐를 포함한 지적장애, 즉 발달장애유형이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더 살펴보면, 다른 장애유형이 교통수단 이용 시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36.2%)보다 발달장애인이 느끼는 장벽이 더 높았으며(41.0%), 발달장애인의 93%가 지난 1년 동안 영화를 제외한 모든 문화예술 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9) 인지장애와 의사소통장애가 지역사회 참여의 큰 장벽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이미 오랜 기간 우리에게 익숙한 유니버셜디자인(이하 UD)과 장애물 없는 활환경(Barrier-Free, 이하 BF)를 살펴보자. UD와 무장애(BF)는 상당 부분 유사한 개념을 지니고 있으나 UD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며, 그 표준을 통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무장애(BF)이다. 즉, 핸디캡이 있는 사람에게 그 핸디캡을 BF로 보정해줌으로써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나왔다. 왜 발달장애인들이 혼자 외출하기가 어렵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우며, 여가활동도 단순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지, 왜 병원에 가서 치료받기가 어렵고, 고등교육을 받고도 지역사회 진출이 힘들며, 고립된 생활을 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해 두고 마치 원래 못하는 것처럼 치부한 다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에 UD와 BF의 개념이 적용된 ICT 기술 개발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평등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한계도 예측된다. 개인정보노출에 대한 불안, 과도한 사용의 우려, 개발비용, 발달장애 관련 데이터 부족, 낮은 시장성 등이 그것이다.

 

맺으며

이미 복지 선진국에서 60년 전부터 이루어진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현재 우리에게는 아직 먼 길로 느껴진다. ‘탈시설지원법’은 거주시설의 전면 폐쇄도, 지역사회로 전환된 거주시설 장애인들을 방임하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설왕설래할 시간도 없다. 당장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광역시 탈시설자립지원 5개년 계획에 따르면, 2024년까지 300명의 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로 터전을 전환한다. 바로 내년이다.

각 지자체는 탈시설과 관련된 조례는 있어도 탈시설과 지역사회 지원을 목적으로 제정된 조례는 없는 실정이며, 설령 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많은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탈시설 자립지원 관련 조례는 장애인의 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 전환과 그 지원을 의미한다. 이는 장애인의 구속 없는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기반으로 인간다운 삶을 구현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 법규이다. 조례는 지역주민의 대표기구인 지방의회에 의해 제정되는 것으로 국가의 법제보다 지역주민에게 살갑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는 규범인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탈시설 관련 조례의 정비와 분석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또한 거주 장애인의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라는 특성을 고려한 ICT기반 지원체계 연구가 더욱 요망된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