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상임이사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의 이야기,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가 요즘 화제이다. 우연한 기회에 1회를 시청했는데 장기이식을 소재로 다루어서 흥미롭게 봤다. 극중 주인공 차정숙은 친정 엄마가 시장 건강원에서 사다 준 보약을 먹고, 간 수치가 3600이 넘어 급성 간염 판정을 받는다. 간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자식으로부터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외과의사인 남편은 기증에 적합하지만 자기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시어머니가 강력히 반대한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는 순간에 주인공은 기적적으로 간이식 수술을 받는다. 회복실에서 깨어나 보니 그 고마운 분은 바로 뇌사 장기기증자였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이다. 드라마에서 차정숙은 간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지만 현실에서 말기 간부전환자가 장기이식을 받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고령사회 진입하며 급증하는 장기이식 대기자, 하루 7.9명 숨 거둔다

2023년 3월 말 현재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4만158명이다. 이 중 78%인 3만1193명이 신장이식 대기자이고, 간이식 대기자도 6015명에 이른다. 평균 대기기간은 신장이 1905일(5.2년)이고, 간은 2372일(6.5년)이다. 드라마에서처럼 기적적으로 뇌사 장기기증자를 통해 간이식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많이 발생한다. 특히 장기이식 대기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장이식 대기자는 고령자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성인병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앞으로 장기이식 대기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이식 대기자가 폭증한 것과 달리 뇌사 장기기증자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16년 573명이던 연간 뇌사장기기증자가 2022년에는 405명으로 30%나 급감했다. 2022년 뇌사 추정자는 2163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실제기증까지 연결된 경우는 405명으로 22%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적인 이유로 기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유는 뇌사추정자의 가족들이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가별 장기기증 현황을 보여주는 인구 백만명당 장기기증자도 2016년 11.1명에서 2022년 7.8명으로 줄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같은 기간 장기기증이 가장 활발한 나라인 스페인과 미국은 2016년에 각각 46.9명, 31.9명, 2022년에 각각 46.0명, 44.5명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결국 장기기증자의 감소는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졌고, 하루 평균 7.9명이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하고 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늘려야 장기기증 활성화될 것

지난해 뇌사추정자 2163명 중에서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72명이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이란 장래에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사전에 신청하는 것을 말하는데 생전에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뇌사상태가 되었을 때 72명 중 34명인 47%가 장기기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언급한 전체 기증률 22%의 두 배가 넘는다. 즉 뇌사추정자의 장기기증 희망등록 여부가 유가족들의 장기기증 결정에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준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언제든지 등록을 철회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실제 기증상황에서는 반드시 가족의 동의를 구해야 하므로 법적인 강제력이나 구속력이 없음에도 유가족들의 장기기증 동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뇌사 장기기증자가 매우 증가한 미국은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이 56%에 이른다. 2020년 5월부터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가 아니면 모두 잠재적인 장기기증자로 간주하는 옵트아웃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41%를 기록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3%에 불과하다.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이 높은 미국과 영국의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를 운전면허시험장을 통해서 모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는 달리 두 나라는 운전면허 응시원서에 장기기증 의사표시를 묻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영국은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자가 장기기증 의사를 묻는 말에 대하여 ‘예’ 혹은 ‘아니요’ 중 하나를 반드시 표시해야 운전면허증을 발급 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운전면허 응시원서 서식에 장기기증에 대한 의사표시를 묻는 항목을 포함하도록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나 법 통과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2021년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의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장기기증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3%에 불과한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에 비하면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매우 높게 나타난 것이다. 달리 말해 기회가 되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할 국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이야기이다. 연간 운전면허 신규취득자가 100만 명을 넘는 현실에서 만약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이 통과되어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매년 등록률이 1%(50만 명)씩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뇌사 장기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부터

2000년 2월 ‘장기이식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뇌사 장기기증자는 7037명이다. 이분들의 장기기증 실천을 통해서 2만8830명의 환자가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명의 목숨을 구해도 의인이라는 말을 하는데 평균 네 명의 생명을 살렸으니 영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영웅과 그 유가족에 대한 예우는 부족했다. 유가족들은 자신이 가족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다는 심리적인 부담과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기증 이후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없었다. 만약 자신의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의 장기기증을 직접 결정한 유가족들이 기증 이후에 기증 전후 겪은 실망감 때문에 장기기증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장기기증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2017년 말 언론을 통해서 ‘뇌사 장기기증 이후에 사후관리는 가족의 몫’이라는 기사가 유가족 한 명의 인터뷰와 함께 보도된 이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의 등록 철회가 빗발치고, 실제 장기기증도 급감한 일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후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유가족 예우에 행정력을 쏟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각종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에는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영상콘텐츠가  ‘장기기증’ 검색순위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비롯한 민간기관 등이 협력하여 뇌사 장기기증자와 유가족 예우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4월에는 서울시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서울 보라매공원에 ‘나누고 더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건립기념식을 진행했다. 기념식에 참여한 유가족들은 자신의 가족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억하는 공간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고마워했고, 이곳을 찾는 시민들도 우리 사회가 생명을 나눈 영웅들을 제대로 대접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이를 계기로 조금 더 체계적인 예우프로그램이 지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가족들이 기증 이후에 겪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별기간에 맞는 적절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족의 장기기증으로 새 생명을 얻은 이식인들의 소식을 편지를 통해 접하게 하는 등 우리 사회가 장기기증자의 생명나눔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면, 가족을 잃은 큰 슬픔 속에서도 유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심한 것이 잘한 결정이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장기기증에 대하여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생명나눔 교육 추진해야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이해를 돕는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다. 스페인은 학교 정규교육과정 중에 장기기증 관련 내용을 포함한다고 한다. 학교 수업을 통해 이런 시절부터 장기기증에 대해 알게 되고 그 필요성을 인식한 스페인 국민은 성인이 된 뒤에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장기기증에 참여하기에 전 세계에서 장기기증이 가장 활발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10년부터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생명사랑 나눔운동’이라는 표어로 청소년 생명존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생명의 존엄함과 장기기증의 숭고한 가치를 교육하고는 있으나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일부 학생에게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생명나눔교육은 통일교육, 세계시민교육 못지않게 절실하다. 초등교육과정부터 장기기증 교육을 포함한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할 것이다.

얼마 전 한 종교기관에서 일일 장기기증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우리가 섬긴 장기기증, 생명 되어 돌아온다”라는 슬로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스페인은 오래전부터 “당신의 장기기증은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서 결국 당신의 가족이 도움을 받는다”를 모토로 ‘새로운 생명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장기기증 활성화는 우리 사회의 특별한 누군가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