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하면 법인 명의의 재산은 어떻게 처리될까? 본래 ‘민법’ 제80조에 따르면 법인 명의의 재산으로 먼저 법인의 채무를 청산한 후 남는 재산은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게 귀속시켜야 한다. 남는 재산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에 관한 규정이 정관에 없으면, 이사 또는 청산인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그 법인의 목적과 유사한 목적을 위해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다. 처분되지 않은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속된다. 하지만 사회복지법인의 해산에 대해서는 이러한 ‘민법’의 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업법’ 제27조가 ‘민법’ 제80조보다 우선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이 있으면 먼저 법인의 채무를 청산하고, 남는 재산은 모두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해산을 앞둔 사회복지법인은 그 재산을 국가에 헌납할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헌납할지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 최초에 그 재산을 출연한 자에게 돌려주거나 그동안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이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자에게 보상하거나, 해당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을 이용해 온 자들에게 환원하는 등의 행위는 할 수 없다. 심지어 유사한 목적을 가진 다른 사회복지법인에 잔여재산을 넘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규정 개정의 역사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이 최초로 제정될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조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와 유사한 취지의 조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당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되면서 ‘해산한 공익법인의 잔여재산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한다’는 규정이 신설된 것이다. 공익법인 해산 후에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재산을 계속 공익사업을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조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법자는 1992년 ‘사회복지업법’을 개정하여 공익법인 중에서도 사회복지법인이 해산할 때에는 잔여재산이 국가·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유사한 목적을 가진 법인에게도 귀속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그 개정 이유에 관해서는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간략한 서술만 존재할 뿐이므로 실제 위와 같은 조문을 둔 이유는 확인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시설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복지법인의 재산을 다른 사회복지법인이 인수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데 주안점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입법자는 2003년에 다시 한 번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여 유사 목적을 가진 법인에게 해산 사회복지법인의 잔여재산을 귀속시키는 것을 금지했다. 그것이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의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와 같은 개정이 입법청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 또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제출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내용의 제안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2001년 초 참여연대가 접수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관한 청원을 어떤 국회의원이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서 소개하면서 그 내용이 이견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다. 위 청원은 ‘사회복지사업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하여…해산한 법인의 잔여재산 처리에 관한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참여연대의 2001년 입법청원의 뿌리는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사회복지법인 사회화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사회복지법인에서 발생하는 각종의 인권침해사건의 원인이 설립자와 그 가족들의 사회복지법인 사유화 인식과 그에 따른 권한의 전횡에 있다는 인식하에 사회복지법인은 공공의 재산으로서 설립자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사회복지법인이 갖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 활발히 참여했던 한 학자는 ‘사회복지법인의 재산은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에…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한 경우에는…잔여재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회복지법인 재산의 법적 성격

사회복지법인이 담당하는 공익적 기능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본래 사회복지는 헌법 제34조제1항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야 하는 업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건국 직후부터 국가재정 부족으로 상당 기간 사회복지의 대부분을 외국 원조단체에 기대왔고, 그 결과 민간 영역의 사회복지법인이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거점이 되었다. 그 후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국가의 사회복지지출도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국가는 스스로 사회복지전달체계를 구축·담당하기보다는 기존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시설을 전달 지점으로 삼아서 각 시설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를 명분으로 사회복지 법인 및 시설을 관리·감독하거나 국가·지방자치단체 업무를 시설에 위탁하는 형식으로 사회복지사업에 관여하는 형태를 선호한다. 국가의 책무인 사회복지업무 중 상당 부분을 사법인(私法人)인 사회복지법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한 후 그 잔여재산이 공익 영역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사회복지 사무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기본재산은 대개 그 시설 거주자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는 장소이므로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에 자유로운 처분을 허용하게 되면,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인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을 당연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법인에 준하여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재산을 출연한 자도 사인이고, 법인 설립 후 그 운영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자도 사인인 이상, 사회복지법인의 사법인으로서의 성격은 여전히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개정 당시 입법자는 사회복지법인이 갖는 공공성과 공법인(公法人)성을 혼동하여 사회복지법인 소유의 재산을 사유재가 아닌 공유재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 사회복지법인에 재산을 출연한 자는 특정 ‘사회복지법인’에 그 재산을 증여한 것이지 ‘사회’ 일반에 증여한 것이 아니다. 재산을 출연 받은 사회복지법인은 여전히그 재산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때 재산권의 행사 권한에는 사회복지법인이 해산하는 경우에 그 재산이 귀속될 자를 정하는 권한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을 반드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도록 하는 것은 사회복지법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의 자율성

모든 사법인은 헌법 제10조에 따라 그 법인의 자율적인 운영권을 보장받는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사회복지법인에 대하여 ‘설립자의 자발적인 의사와 재산출연으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설립·운영되는 것으로서 독자적인 운영방침에 따라 개성 있는 복지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그 설립의 자유와 물적·인적 시설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때 운영의 자유에는 소극적 운영의 자유, 즉 운영하지 않을 자유도 포함된다. 자유로운 해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의 설립 강제로써 법률의 규정이 없는 한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사회복지사업법’과 같이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 그 재산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도록 강제한다면,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자로서는 법인의 목적이 이미 달성되었거나 그 달성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법인의 운영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재산의 헌납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사회복지법인을 해산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법인의 존속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른다. 

물론 사회복지법인이 수행하는 공익적 기능을 고려할 때 사회복지법인에 출연된 재산이 가급적 사회복지 영역 내에서 머무르도록 유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에서도 이른바 ‘최근사의 원칙(cy-pres doctrine)’에 따라 일단 설립자가 공익을 위해 재산을 출연하였다면, 설사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가능한 근접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 재산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기부된 재산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법리들이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이 원칙을 실현함에 있어서도 사회복지법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자는 정관에서 정한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재산을 출연한 것인데 당해 법인이 해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법인 소유였던 재산을 해당 법인의 본래 목적과 무관하게 사회복지사업 일반 어디에든 전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게 법인의 운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당해 사회복지법인에 출연된 재산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탈되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1992년 법과 같이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에 잔여재산을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유사 목적의 법인에게 귀속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회복지법인이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을 주도적으로 담당해 온 우리 사회복지의 역사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회복지법인의 해산 및 잔여재산 처리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은 사회복지전달체계의 물적 기반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해산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복지법인의 운영권을 다소 제한하는 것은 부득이할 수 있다. 하지만 해산 시 ‘사유재산의 무상몰수’라는 국가의 협박이 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 ‘사회복지법’ 역시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 남은 재산의 처리방법에 대해 정관으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하되 일정한 경우에는 관할 관청의 인가나 인정이 있어야만 해산의 효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회복지전달 체계로서의 사회복지법인의 존속을 보장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해산 시 정관으로 잔여재산을 유사 목적의 법인에 귀속시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은 동일한 사안에서 잔여재산을 유사 목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공익신탁법’ 또는 ‘사립학교법’과 비교해 봐도 부당하다. 사회복지법인의 재산권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사업법’ 제27조가 개정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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