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통합돌봄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돌봄 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무상의 노동을 통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으로 불린다.가족원에 의한 가정 내 돌봄의 부담은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때로는 간병살인과 같은 비극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돌봄의 탈가족화로 인해 빠르게 늘고 있는 돌봄 종사자들도 사회적 또는 공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과 열약한 노동환경에 처하게 된다. 이에 반해 우리사회의 돌봄 수요는 급격한 증가 추세에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6%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되며,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후기노령기인 75세에 진입하는 2030년부터는 의료를 포함한 요양 및 돌봄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지역사회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예방서비스와 재가서비스가 미흡한 수준에서는 거동이 불편해도 재가서비스 등의 도움을 받으며 살던 곳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노인들의 바램과 달리, 노화, 장애, 사고, 신체적·정신적 질환 등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놓였을 때 병원이나 시설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적 단절 없이 살던 곳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돌봄에 대한 사회적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미룰 수 없는 돌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고령 사회를 준비하면서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앞서 도입한 국가들은 지역 안에서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삶의 질을 공평하게 보장하기 위한 ‘돌봄기본법’을 제정하고, 돌봄 서비스에 대한 국가 기준을 만들어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국가이다. 국민의 생애주기별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국가정책이 시급하다는 인식하에 2018년부터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는 한국형 커뮤니티케어정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비용 입원치료에 대한 의존도와 급증하는 장기요양 재정지출을 개선하면서 지속가능한 국가돌봄 체계의 기반이 되는 법·제도를 갖추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역사회통합돌봄 법안은 2020년 이후 최근까지 4건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법 제정이 미뤄지고 전국 확산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가 추진되지 못하면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추진했던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은 본 사업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종료됐다. 이번달부터는 재가 의료서비스 확충과 보건복지 연계체계의 구축을 골자로 하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이 전국 1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된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100세 시대 노후생활 지원 및 건강돌봄체계지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 노인돌봄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연결성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급증하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 욕구와 이로 인한 정부의 재정부담 등 예상되는 미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노인복지사업을 보완하거나 요양 및 돌봄 서비스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 국가 돌봄정책의 방향과 비전이 보다 선명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돌봄 보장, 무엇이 필요한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준과 범위가 좁고, 선진국에 비해 적은 사회서비스 예산의 범위 내에서 저소득 취약계층 중심으로 선별적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사회적고립이나 자살, 고독사 등의 문제가 돌봄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상별로 파편적·분절적으로 전달되는 사회서비스 제공체계의 경직성으로 인한 돌봄 공백 문제는 노인뿐 아니라 아동부터 청년, 중장년까지 전 연령층에 걸쳐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보편적 국가 돌봄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주도적으로 개별 법률에 근거한 기존돌봄 관련 정책에 대해 조정·협의하고, 제도 간 정합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내용적으로 노인장기요양을 비롯하여 보건의료 및 재활, 주거 분야와 연계하여 추진 근거를 마련해야하기 때문에 노인서비스 관련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및 ‘노인복지법’, 보건의료서비스 관련 ‘보건의료기본법’ 및 ‘지역보건법’, ‘국민건강보험법’, ‘의료급여법’, 주택지원 관련 ‘주거기본법’ 및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다수의 유관 법률과 제도 연동성을 가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회서비스 제공과 관련해서는 ‘사회보장기본법’을 비롯하여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나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 ‘사회복지사업법’에 이르기까지 유관 법률의 정비가 필요하다. 예로 일본에서는 ‘의료법’과 ‘개호보험법’을 비롯한 관련 19개 법령의 일괄 개정을 통해 지역의 의료와 개호를 종합적으로 연계·제공할 수 있도록 ‘지역의 의료 및 개호의 종합적인 확보를 추진하기 위한 관계 법률의 정비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법적 근거 외에도 각 분야의 핵심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서비스 공급계획을 구체화하고, 서비스 판정체계나 서비스 제공기준, 급여제공 권한 등에 대한 실행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통합돌봄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행 돌봄 관련 제도는 건강보험 및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의 재정기여도가 가장 크며, 공공부조인 의료급여기금과 지역자율형 사회서비스투자사업에 대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지역지원계정, 국민건강증진기금 등의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추가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늘리고 신규사회서비스를 개발하는 것 외에 통합돌봄기금을 조성하거나 포괄보조금 형태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돌봄 강화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과 현주소는?

지역 중심의 책임성 있는 사회적 돌봄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맞물려가야 한다.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을 통해서는탈시설과 지역사회로의 전환 등을 지원하는 전담구조가 미흡했기 때문에 사회적 입원이나 시설입소가 줄어드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지역사회 내 다양한 돌봄 인프라가 확충됐고, 관련 사회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서비스전달 방식에 대한 경험치가 높아졌다. 또한 읍면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공공이 돌봄 지원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돌봄 대상자에 대한 발굴체계가 만들어졌고, 보건과 복지의 협업이 늘어나게 되면서 연계와 협력을 통해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방식에 대한 공유와 이해가 높아졌다.

지역사회 복귀 및 정주를 위한 지역 내 주거·요양·의료·재활 분야의 인프라 부족을 메꾸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서비스 확충과 돌봄의 연속성 확보를 위한 틈새 서비스 개발, 자체적인 돌봄 매니지먼트 체계를 갖추고 사람 중심의 통합 케어를 제공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주도성도 늘고 있다. 현재 65개 시군구에서는 지방비를 투입하여 통합돌봄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합돌봄을 추진하지 않는 지자체의 경우, 재정·인력 확보의 어려움, 사업 중복 또는 유사사업 추진 문제, 지역 인프라 부족 등을 주요 장애물로 인식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통합돌봄의 공적 책임을 가진 실행주체로서 조직과 인력을 갖춘 공적 전달체계(시군구 통합돌봄 전담 부서 및 읍면동 통합돌봄 창구 등)를 최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또한 노인장기요양과 노인맞춤돌봄, 치매안심지원 등 지역사회 내 유관제도와 서비스 운영에 대한 총괄적인 권한을 갖고, 지역돌봄 전반의 신청과 조사·결정 과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별로는 중기 법정 계획인 지역사회보장계획, 지역보건의료계획과 연계하여 지역사회통합돌봄 계획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도록 해야한다.

 

주민 참여와 지역사회 민간기관과의 협력은 숙제…

한 개인의 돌봄에 필요한 종적 지속성과 횡적 포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중심의 맞춤형 서비스제공과 조정이 가능해야 한다. 현재 지역에서는 다양한 돌봄 관련 사업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면서 대상·절차·기준 등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보건의료를 비롯한 요양·재활·주거 등 돌봄에 대한 다분야 협력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통합돌봄 추진상의 어려움이 크다. 기존의 통합사례관리를 확장하여 공공 및 민간의 서비스와 자원을 통합적으로 조정·연결하는 돌봄 매니지먼트 역할을 강화하고, 지역기반의 민관협업 네트워크를 활성화하여 실행단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지역사회통합돌봄 정책에서는 지방정부의 공적 책임은 강조되었으나 민간기관과 지역주민을 주요 주체로 고려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지역돌봄은 지역연대성에 기반을 두어 함께 서로를 돌보기 위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관계가 중요하다. 주민들이 자신과 이웃의 건강 돌봄에 관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생활터전 중심의 돌봄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또한 동 복지와 주민자치, 마을만들기 간 연결성을 갖고 지역 내 다양한 서비스 제공주체가 공동의 돌봄 공급자가 되어 주민참여형 협동조합 등을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광역지자체 단위에서는 사회서비스원이 공공성에 기반하여 기초지자체들의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며 지역돌봄 모형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풀뿌리 주민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돌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