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Ⅱ (탈시설)

김동기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동기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자립생활패러다임이 도입된 후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는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자립생활 운동(Independent Living Movement)이 자립생활 진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매우 미온적 또는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2017년 7월 발표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탈시설이 포함되면서 탈시설 관련 국내의 정책적 분위기는 급변했고, 장애인의 탈시설과 이를 지원하는 탈시설 정책이 국가의 정책적 어젠다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리고 탈시설 정책을 둘러싼 정책흐름은 현 정권에도 동일한 방향으로 이어져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장애인 자립 및 주거 자기결정권 강화’가 하나의 세부 추진과제로 포함됐고, 향후 자립지원 시범사업 추진 및 검토, 전달체계 강화, 자립지원 로드맵 보완 및 법령마련 지원 등 다양한 정책 및 제도가 곧 시행될 예정이다.

이처럼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언뜻 보면 본궤도에 올라 향후 빠른 속도로 정착 및 안정화되는 것 같지만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둘러싼 장애인단체, 거주시설, 정부 및 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집단들 간에는 아직도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며 앞으로 더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리나라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번 조망해보고자 한다.

 

탈시설, 정당한 법적권리인가?

첫째,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요구는 법적권리인가? 헌법 제14조(거주이전의 자유)는 ‘거주지나 체류지’라고 볼만한 정도로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장소를 선택하고 변경하는 행위를 보호하는 기본권(2009헌바406) 조항이다(염형국, 2021). 따라서 거주시설 장애인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장소를 선택하고 변경함에 있어서 현재의 ‘거주지’에 해당하는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의 새로운 ‘거주지’를 선택하고 변경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함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급여법 제5조(사회보장급여의 신청)는 지원대상자가 지원대상자의 주소지 관할 보장기관에 사회보장 급여를 신청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미국의 옴스테드 판결과 같은 사회서비스 변경신청 소송이 2009년도에 양천구청을 상대로 제기되어 서울행정법원이 원고승소판결을 내려 양천구청의 서비스변경 거부처분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는 국제조약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19조(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는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격리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선택권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완전한 통합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협약당사국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의 탈시설은 대한민국 헌법과 사회보장급여법 더 나아가 장애인권리협약에서 거주시설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마땅한 법적권리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와 같은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요구에 대한 법적 권리성을 현재 정부, 학계 더 나아가 거주시설에서도 전반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둘째, 탈시설이 법적 권리라면 거주시설 장애인은 탈시설을 원하고 있는가? 2020년에 장애인공동생활가정과 단기거주시설을 제외한 612개 거주시설, 2만421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거주시설 전수조사(한국장애인개발원·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하면, 중증장애 98.3%, 발달장애 80.1%, 평균입소기간 18.9년, 무연고 28%로 나타났다. 또 대면조사 시 본인응답이 가능한 장애인 6035명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를 조사한 결과 33.5%가 탈시설을 희망하는 반면 59.2%는 희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리고 탈시설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면, ‘시설에서 사는 것이 좋아서’ 69.5%,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21.9%, ‘경제적 자립에 자신이 없어서’ 14.7%. ‘가족이 이곳에 있기를 원해서’ 9.7%로 나타났다. 이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주시설 장애인 중 최소 33.5%는 탈시설을 희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탈시설을 희망하지 않는 이유를 고려해 보면 희망하지 않는 장애인들 중 상당수가 탈시설을 희망하는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 거주시설 장애인 중 최소 2000여명 정도의 장애인이 탈시설을 희망하고 있으며, 본인응답이 어려운 거주시설 장애인까지 포함해 탈시설 욕구조사를 실시하면 대상자 수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탈시설 개념의 정립

셋째, 그렇다면, 탈시설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탈시설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탈시설은 단순히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결과로서의 탈시설로, 자가 또는 임대주택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필요한 지원서비스를 제공받고 살아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로서의 탈시설과 함께 과정으로서의 탈시설 또한 매우 중요하다. 과정으로서의 탈시설
이란 거주시설의 규모, 환경, 서비스 내용 및 제공방식 등을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인 장애인 중심으로 변혁해나가는 시설개혁을 의미한다. 전자는 완료형으로서, 후자는 진행형으로서의 지향점이 있다. 하지만 양자는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전자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함에는 분명하지만 후자 또한 전자를 시도하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병행돼야 한다. 특히 거주시설 안에서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즉, 선택과 결정을 최대한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시설의 
환경, 서비스 내용 및 제공방식 등이 변경되어야지만 결과로서의 탈시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시설 장애인이 다시 거주시설로 재입소하는 회전문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실례로 서울시의 경우, 2009
년부터 2015년까지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장애인 158명 중 22명(13.9%)이 다시 시설로 복귀했다. 따라서 탈시설의 시작은 과정으로서의 탈시설로써 거주시설 내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거주시설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는 거주시설의 소규모화와 현 정권에서 계획하고 있는 거주시설의 의료전문화 또한 거주시설의 역할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탈시설 장애인이 살아가는 ‘지역사회’는 안전한가? 이 질문은 “지역사회는 탈시설 장애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로도 바꿀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지역사회는 안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포함된 정책들, 예를 들면 활동지원서비스 품질 제고, 응급안전안심서비스지원 확대, 야간순회방문 강화,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지원체계 구축, 최중증 발달장애인 전담주간보호시설 도입 등과 같은 지역사회 기반 정책과 제도들이 정착 및 시행되면 과연 지역사회는 탈시설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공공과 민간 사회복지전달체계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에서 주로 만나고 부딪혀야할 대상은 공공과 민간 사회복지전달체계에서 종사하는 공무원 또는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순수한 지역주민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주민들이 장애인에 대한 특히 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거주시설 장애인의 98.3%가 중증이며, 80.1%가 발달장애인이다. 즉, 거주시설에 입소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이 중증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일차적으로 지역주민들이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순수한 지역주민들이 포함된 가칭 ‘탈시설 발달장애인 안전네트워크’가 마을마다, 동네마다 점조직처럼 형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 지역주민, 민간학생위원, 사회복지협의회, 지적장애인상담원, 가족회 등으로 이루어진 지역사회 감시네트워크가 구축 및 작동하고 있어 지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장애인 학대 또는 부당한 대우에 좀 더 체계적·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편, 탈시설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현재 장애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시민옹호’사업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순수한 지역주민들을 장애인의 옹호자로 지정해 장애인 편에 서서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권익을 지켜주는 ‘시민옹호’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탈시설의 성공적 정착 위한 ‘근거법령’ 제정 필요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탈시설 정책의 성공적인 정착과 발전을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조속한 ‘근거법령’의 제정이다. 탈시설이 명확한 법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탈시설’이 법조문에 명문화되어 있지 못하다.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몇 건 발의 중에 있지만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안에 탈시설에 
대한 명문화된 법령이 제정되어 향후 탈시설 정책이 좀 더 성공적으로 정착 및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에 있어서 ‘속도’보다는 ‘준비’가 더 중요하다.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장애인을 탈시설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보다 거주시설과 지역사회가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그리고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정으로서의 성공적인 탈시설과 안전한 지역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탈시설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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