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Ⅱ (이동권)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경수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장애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교통수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가는 곳으로 쉽게, 자신 있게, 추가 비용 없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 영국 장애인교통자문위원회 비전선언

이동권은 모든 시민의 권리

2001년 1월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4호선)에서 설을 맞아 가족을 만나려고 지하철로 이동하던 장애인 부부가 지하철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애인들은 이동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2003년에야 비로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장애인 이동권’이 정식 어휘로 등록됐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21년 12월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의해 또다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휠체어 시위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장애인 이동권이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과 “예전보다 나아졌는데 왜 이렇게 시민을 불편하게 하냐”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동권은 접근권(Rights to Access)에 포함된다. 접근권은 건축물에 대한 이용과 접근권, 이동권, 정보접근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이동권(Rights to Mobility)은 영국 정부의 장애인교통자문위원회(DPTAC) 비전선언문에서 천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보도, 교통시설,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동시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에서 이동권을 교통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정당성은 여러 규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통약자법과 함께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모두 장애인 등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을 위한 목적을 갖는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여 ‘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 및 보건과 교육, 그리고 정보와 통신에 대한 접근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장애인 개인의 이동성을 지원하는 제반 조치를 요구한다. 이처럼 장애인에게 이동권의 보장은 단순히 신체적 이동을 넘어 교육, 취업, 사회적 서비스의 접근성을 강화함으로써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일상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전략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간주된다.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과 쟁점은?

교통약자법에 따르면 이동권 보장의 범위는 교통수단, 여객시설, 도로, 보행환경을 망라한다. ‘교통수단’은 사람을 운송하는데 이용하는 버스, 도시철도, 철도, 궤도차량, 비행기, 선박을 포함한다. ‘여객시설’은 정류장, 도시철도시설, 철도시설, 궤도시설, 환승시설, 공항 및 공항시설, 항만시설이 해당된다. ‘이동편의시설’은 휠체어 탑승설비, 장애인용 승강기, 장애인을 위한 보도, 임산부가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휴게시설 등 교통약자가 교통수단, 여객시설 또는 도로를 이용할 때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과 설비를 말한다. 비단 물리적 환경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안전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이동권을 보장하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수는 얼마나 될까? 2021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영유아 동반자를 포함한 전체 교통약자는 인구의 30.0%(1550만9000명)로 파악되며, 그 중 장애인은 교통약자의 17.1%(264만5000명)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이동편의를 위해 그동안 정부에서는 이동권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해 여객시설 전반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 의무화,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신규 보행환경 관련 국가계획 수립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 왔다. 또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특별교통수단 도입 기준도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에서 150명당 1대로 확대하고, 인구 10만명 이하의 지역에서는 100명당 1대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저상버스(중형저상버스, 2층 저상버스, 휠체어 탑승가능 고속·시외버스) 개발과 시범운영도 했다. 장애인콜택시와 저상버스만으로 모자라는 대부분의 광역단체는 바우처택시·임차택시 같은 대체교통수단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대다수 지하철역에는 승강기가 설치됐고 길에서 저상버스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장애인콜택시도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토부의 이동편의 실태조사(2022)에 의하면 2021년 말 현재,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30.6%(1만828대)로 나타났다. 그나마 이 수치는 시내버스에 해당하는 것이고, 농어촌스(1.4%), 마을버스(3.9%)는 도입률이 매우 저조하다. 또 2019년에야 휠체어 탑승설비가 갖춰진 시외·고속버스의 시범운행이 시작됐지만 일부 노선의 운행이 중단돼 사실상 버스를 이용한 지역 간 이동은 불가능한 형편이다. 특별교통수단은 법정대수의 86.0%(4047대)의 보급률을 보였지만 차량과 운전자의 부족으로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 이동지원센터마다 개별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지역을 벗어나는 경우, 환승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지역 경계를 벗어나는 구간의 서비스를 요청할 경우, 연계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특별교통수단 이외에 바우처택시와 임차택시와 같은 대체 수단이 있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은 이용이 쉽지 않다. 또한 여객자동차터미널, 버스정류장은 철도역사, 공항에 비해 이동편의시설 기준설치 적합률이 저조한 형편이다. 보도, 점자블록, 지하도 및 육교 등 보행환경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관심과 책임도 충분치 않다. 당연히 보장돼야 할 기본권인 이동권 보장 수단을 지방정부 자율에 맡기다 보니 지역 간 차별 문제도 있다. 장애인이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안은?

꼭 1년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내놨다. 2023년부터 시내버스는 저상버스로 의무적으로 교체하고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도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7년까지 장애인 택시 100% 도입을 달성하고, 대중교통 이용이 곤란한 지역을 중심으로 법정 대수도 상향하겠다고 덧붙였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챙겨야 할 것은 더 많다. 우선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을 더욱 다양화해야 한다. 장애인들은 지역 내에서 이동할 때 버스(40.4%)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지역 간(타 시·도) 이동할 때에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승용차(63.0%)를 가장 많이 탄다. 그래서 저상시내버스를 확대하고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특히 대도시의 경우, 저상마을버스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 기준을 상향해 증차하는 한편, 부족한 장애인 택시를 대체할 수 있도록 UD(Universal Design)택시, 바우처택시를 도입하거나 확대해야 한다. 장애인 교통수단의 운영 개선도 시급하다. 특별교통수단의 편리한 이용을 위해 원스톱 통합예약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버스번호를 입력하면 버스가 들어올 때 안내받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버스정보시스템(BIS)도 마련해야 한다. 또 턱 낮춤, 적절한 기울기 확보 등 보행환경을 정비해 장애인이 연속 보행으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동편의시설 설치가 저조한 항만 및 여객터미널을 정비하고 경전철, 트램, 버스정류장, 택시정류장을 포함한 모든 여객시설의 접근과 이용이 보장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들은 법·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적극 뒷받침될 때 실현 가능하다. 

제43회 장애인의 날이 포함된 4월. 다시금 장애인 이동권을 성찰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이동을 해야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이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감금의 상태와도 같다. 장애인을 특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권리를 누리면서 지역사회에서 일상의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넓게 공유되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시혜적 관점’이 아닌 ‘당사자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옳다. 2018년 영국 교통부는 2030년까지 장애인의 교통시설 접근 수준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포용적 교통전략’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접근성(accessibility)이 아닌 포용성(inclusiveness)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장애인을 단순히 수혜자가 아닌, 비장애인과 동등한 이용자로 바라보고 정책을 함께 설계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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