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Ⅱ (인권)

유동철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유동철 동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시혜에서 인권으로

지금은 인권의 시대이다. 장애인을 비롯해 여성, 노인, 성적 소수자 등 모든 사회적 약자 계층들이 인권에 기반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계도 ‘시혜(Charity)에서 인권(Human Rights)으로’라는 의식 하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세계적으로도 장애인권리 협약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제4조 2항에 의하면 ‘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기타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동법 제4조 1항에 의하면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이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요약해보면 결국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방식으로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결국 인권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책적 접근 시각은 시혜적 관점이 더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장애인을 ‘일반인들이 충분히 행하는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바라본다. 따라서 장애인은 일반인과 차이가 있는 다른 그룹으로 취급되고, 장애인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처우가 행해진다. 사회의 제도와 시설은 ‘일상생활에 제약이 없는’ 다수의 일반인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설계되며, 장애인에게는 별도의 보호조치가 행해진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인해 장애인은 외딴 시설에서 ‘보호’받게 되고, 분리된 작업장에서 ‘보호’받게 되거나 취약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양심을 발현시키기 위한 의무고용제라는 ‘보호’조치를 받게 된다.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진짜 장애인(truly disabled)’을 구별해내고 이들에게 복지조치를 행한다. 따라서 노동능력이 없고,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수당이나 급여가 제공된다. 시혜적 관점 하에서는 장애인은 항상 객체이다. 서비스의 종류, 양과 기간은 대부분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된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취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적 접근에서는 다르다. 인권적 시각에서는 장애인을 ‘장애로 인해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 기제에 의해 인권이 침해되는 사람’이라고 바라본다. 따라서 사회적 환경이 중요해지며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의 인권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을 지면 관계상 생존권에 관한 내용 중심으로 간단히 제시해 보기로 한다.

 

생존이 어려운 장애인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는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재가장애인의 복지욕구 조사 결과, 생계보장에 대한 욕구가 매번 40% 전후로 나타나 이것이 가장 큰 욕구로 파악되고 있다. 그리고 열 명 중 한 명은 ‘돈이 없어서’ 장애와 관련하여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절반 정도의 장애인은 ‘돈이 없어서’ 장애 때문에 수술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존권에 있어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장애인은 장애와 이로 인한 사회적 장벽으로 소득수단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장애인의 욕구에 따른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보장이 요구된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시도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 점들을 지적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국민연금이나 산재보험의 경우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보상금을 연금방식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외국에서도 대부분 연금방식을 통해 장애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장기적인 생활안정이라는 제도의 목표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또한 장애등급의 평가기준을 의학적, 해부학적 손실 정도에 국한하지 말고 작업능력과 일상생활에서의 장애정도로 확대하여 장애로 인한 실질적 생활상의 장애에 대해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개편해야 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소한 성인 장애인의 경우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여 장애인이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장애수당을 소득에 상관없이 지출될 수 있도록 데모 그란트하고 장애인 연금의 적용대상을 경증장애인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장애 아동부양수당 및 보호 수당은 이에 필요한 예산을 산정할 때 장애아동을 부양하는 실질 비용 및 중증장애인을 보호함으로써 야기되는 기회비용을 과학적으로 추계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

한편, 감면 및 할인을 통한 방식은 일정 소득 이상의 계층에는 도움이 되지만 지원의 필요성이 높은 일반 저소득층에게는 별 도움이 못된다. 예를 들어 저소득 장애인의 경우 재산이 많지 않고 자동차도 보유할 수 없으며, 항공편 등의 이용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감면 및 할인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한 장애인들이 각종 할인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장애인카드를 제시하고 할인카드를 검열 받음으로써 수치심(stigma)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간접적 소득지원제도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고 직접적인 소득보장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세 이상 장애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29.5%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고용율 60.4%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애인이 노동권 영역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아예 구직의사가 없는 장애인들을 고려한 실망 실업을 합치면 그 수치는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한편, 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자영업 종사자나 일용직 노동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 장애인의 경우처럼 한 사회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집단은 사회의 편견이나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임금고용보다는 자영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으며, 근로조건이 좋지 않은 일용직과 같은 2차 노동시장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취업장애인의 취업 분야는 주로 단순노무직(29.7%), 농어업(11.9%), 서비스업(18.3%)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업종으로 나타났다.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시행되면서 장애인의무고용제가 시작되어 장애인 고용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애인 고용율은 밑바닥을 돌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장애인 의무고용율은 겨우 3%를 넘고 있다. 장애인구 비율이 5.6%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여전히 낮은 고용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장애인 고용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 없이 접근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전략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지속가능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노동시장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경쟁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호된 노동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장애인 고용의 핵심전략이 통합된 노동환경에서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장애인의 고용전략도 경쟁노동시장에서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일부 보완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시행함과 동시에 고용평등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적인 과제는 장애인 의무고용제와 고용평등프로그램을 결합하는 것이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상의 장애인 의무고용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고용평등프로그램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용평등프로그램은 개별 사업체가 장애인 고용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보호고용을 위해서는 통합적 작업시설을 많이 만들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나 시설간 통합을 유도해야 하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차원의 경영지원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지적장애인 등을 위한 지원고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인권은 구성되는 것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장애차별이 감소하고, 장애인 인권이 크게 증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인권 상황은 요지부동인 상태에서 일부 장애인들만 적극적으로 권리찾기에 나선 상황이다. 정부차원에서도 많은 형식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체감온도를 높이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인권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인식의 변화에 따라 점차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여기에 인권의 진보성이 있다. 인권의 진보성을 인정하고 인권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인권을 둘러싼 무수한 논란과 담론의 형성이 필요하다. 이것의 시작은 권리중심의 기본법인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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