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

#1
세상의 변화와 사회복지현장의 대응’, ‘창의적인 기획’, ‘읽어버린 일의 동기를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비영리 모금과 프로포절 작성법’, ‘신입직원 생존법’, ‘건강한 조직문화’, ‘리더십 및 팔로워십’ 등 꽤 매력적인 제목을 달고, 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강의를 했다. 나름의 확신과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설명하고 교육했다. 30년 정도의 사회생활 경험과 그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던 독서가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2
리더십에 관련된 주제를 강의할 때면 사실 힘들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경험과의 격차와 거리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존재와 인식의 차이라고 할까. 리더십 강의는 객관화하기 상당히 어렵다. 강의를 하면서 계속 내 속에서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너는 잘하고 있니?’… 참 쉽지 않은 질문이다. 강의 중 스스로에게 하는 이 질문이 내 목소리의 자신감을 한풀 꺾어 버린다. ‘사실 저도 잘하고 있지 못하지만…’ 강의 중 스스로 고백할 때가 있다.

 

#3
리더가 된다는 것, 리더십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페이스북에 7만5000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사회복지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지가 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겪은 답답함과 고민을 풀어내는 공간’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익명성을 보장하고 제보를 받아 콘텐츠를 게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3124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가끔 몰래 훔쳐본다. 사회복지현장의 민낯을 마주 대하기 어려워 실눈을 뜨고 훔쳐본다. 화난 글, 마음 아픈 글, 거친 고백, 탄식이 넘쳐난다. 서로 격려하고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위로도 얻는다. 그리고 가끔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말싸움에 가까운 논쟁도 벌어진다.

 

#4
'사회복지 대나무숲’의 게시글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았지만(그래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의 내용이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관리자에 대한 것이다. ‘사람’을 최우선에 놓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면 당연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사회복지현장’이라는 현실이 이 ‘당연함’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씁쓸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5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연구와 책은 과할 정도로 많다. 한국 서점 중 한 곳의 검색창에 ‘리더십’을 입력하면 약 4만3000여권이 검색된다. 리더가 되는 것은 지위가 올라가고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꽤 많은 리더와 리더십 관련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포브스」가 ‘리더십 대가들의 학장’이라고 칭송한 워렌 배니스(Warren Bennis 1925-2014)가 말한 ‘리더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과 같다’는 리더십론에 공감한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일갈했듯이 ‘타자와 대면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되면서 진정한 나의 주체성’이 완성된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리더가 된다.

 

#6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사회복지현장에는 유달리 ‘관리자’라는 용어를 참 많이 쓴다. 초급 관리자, 중간 관리자, 최고 관리자 등 관리자라는 언어가 넘쳐난다. 관리자를 대체할 언어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관리자라는 용어가 불편하다. 관리라는 단어는 평균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타자의 주체성이나 다름은 용납되기 어렵다. 원천(source)으로서의 사람은 사라지고 자원(resource)으로서의 사람만 존재하게 된다.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체가능성은 증가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시 하게 된다. 성과중심의 사고를 고착화함으로써 성과주의 사회의 병폐를 사회복지현장에도 그대로 재현하게 한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To a man with a hammer, everything looks like a nail)’는 유명한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관리자라는 언어가 우리를 망치고 있는지 모른다. 이름은 바르게 붙인다는 ‘정명(正名)’이 우리가 가장 먼저 실천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7
사회복지현장은 어쩌면 ‘성공의 역설’ 앞에 놓여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늘 부족하고 아쉽지만 한국 사회복지의 제도와 전달체계는 양적으로 성장했다. 사회복지현장의 부단한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제도화되고 국가정책으로 실현되었다. 한마디로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또 다른 실패의 싹이 움트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복지현장은 변화와 혁신의 주체에서 제도와 정책의 성실한 수행자로서 역할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뀌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시도는 안전한 방법론으로 대체되고 복지행정은 점점 관료화되고 있다. 복지현장 경영은 성과위주로 재편되고, 복지자본의 힘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행정, 경영, 자본 사이에서 사회복지현장 실무자들은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8
힐러리 코텀은 ‘래디컬 헬프’라는 책에서 ‘오늘날에는 목적으로서의 이상은 사라지고 서비스전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서비스업체에 기대하는 것은 ‘신속하고 완벽한 무료배송’이다. 우리의 복지 서비스도 똑같이 되었다.’ 라고 썼다. 이 문장을 작금의 한국 사회복지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왜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무엇과 어떻게만 묻는 복지라면 흔들리고 위험하다. 리더의 역할은 명확해 보인다. 현실이 그렇더라도 리더는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9
왜라는 질문은 사실 어렵다. 명쾌하지 않고 복잡하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좋다.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멈추고 깊이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읽고 듣고 경험한 세계가 넓어야 한다. 생각이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읽고 듣고 경험한 것을 떠올려 조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왜는 학습을 동반한다. 학습은 한자어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리더와 리더십에 관해서도 정말 많은 배움의 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좋은 리더를 만나기는 많은 배움의 자리에 비해 빈약하다. 배웠지만 익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10
리더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평생의 과업이고, 완성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사회복지 리더들에게 냉혹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설가 김훈이 쓴 산문집 ‘연필로 쓴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늙어서 슬픈 일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못 견딜 일은 젊어서 저지른 온갖 못난 짓거리와 비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 될 짓, 함부로 써낸 글, 너무 빨리 움직인 혓바닥, 몽매한 자만심, 무의미한 싸움들, 지겨운 밥벌이, 계속되는 야근과 야만적 중노동… 이런 기억이 몰고 오는 슬픔은 뉘우침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한이나 자책일 뿐이다. 그 쓰라림은 때때로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아아, 나는 어쩌자고 그랬던가. 그때는 왜 그 잘못을 몰랐던가. 이보다 더 슬픈 일은 그 악업과 몽매를 상쇄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절벽과 마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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