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 예명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권진 예명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이 전격 발표되면서 기존의 유통기한 제도하에서 20여년간 운영되어온 푸드뱅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이미 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제도로써 가장 큰 목적은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식품을 줄이는 것이다. 최초의 푸드뱅크가 ‘먹을 수 있으나 버려지는 식품을 나누어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만큼 소비기한 표시제는 푸드뱅크의 운영취지와 맥을 같이한다. 한편, 기존의 유통기한이라는 제도하에서 운영되어온 생산, 유통, 소비의 시스템과 식품기부의 시스템이 소비기한에 맞춰 달라지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글은 지난 2022년도에 연구용역으로 수행한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기부식품 관리방안 검토 연구」에서 푸드뱅크 현장과 함께 고민한 질문과 나름의 해답을 중심으로 향후 푸드뱅크 사업의 대응 방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
소비기한 표시제의 도입은 어떤 의미인가?

우선 식품기한의 표시 유형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비기한은 사용기한(Use by date)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섭취했을 때 안전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기한까지를 의미한다. 부패가 시작되기 시작한 안전한계에 가장 가깝다. 한편, 유통기한(sell by date)은 안전한계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이론적으로는 식품의 품질이 변화되기 시작한 시점보다도 70~80% 수준의 보호적 기간을 둔 것이 유통기한이다. 예를 들어 제조된 식품이 10일째부터 품질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유통기한은 7일째까지로 설정하는 식이다. 따라서 3일 정도의 차이를 두고 식품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식품회사마다 또는 식품마다 유통기한을 다르게 잡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식품을 최종적으로 섭취하는 소비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잡은 기한이라는 것이다. 소비기한으로의 전환은 유통기한과 안전한계의 사이에서 안전한계에 가까워지는 날짜이기 때문에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지며, 소비자는 안전한계에 다다른 식품을 먹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부된 식품을 제공하는 푸드뱅크 입장에서는 소비기한에 다다른 식품을 기부 받을 경우에 푸드뱅크 이용자의 안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유통기한 표시제 하에서도 기부되는 식품은 대부분 유통기한의 마지노선에 다다른 식품들이었다. 그렇다면 소비기한 표시제 하에서도 소비기한에 다다른 식품을 기부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는 유통기한에 가까운 식품에 대한 이용자의 불만족감이 점차 높아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기부식품이라 하더라도 먹거리 자체에 대한 기대심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에 푸드뱅크 이용자들의 ‘배부름’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소비기한에 다다른 식품을 어떤 명분으로 취약계층에 전달할 것이며, 받는 쪽에서는 어떠한 마음일 것인가’이다.

 

두 번째 질문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면 식품 기부가 줄어들 것인가?

소비기한을 적용하게 되면 대부분 식품의 판매기한이 늘어난다. 따라서 식품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의 관점에서 보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얻는 것이다. 푸드뱅크 기부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식품기업의 기부는 소비기한 도입, 즉 판매기한이 늘어남에 따라서 기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됐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부보다는 판매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푸드뱅크에 기부를 하고 있고 푸드뱅크 시스템을 알고 있는 식품업·유통업 종사자나 학계, 연구자들에게 소비기한 표시제 하에서 식품 기부가 줄어들 것인지 등의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흥미롭게도 유통기한 표시제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이미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에 소비기한에 다다른 식품은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기존의 유통기한 역시 무조건적으로 식품안전에만 맞추어서 날짜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을 판매하는 회사마다 최상의 맛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꾸준하게 받기 위한 전략적인 날짜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알고 있었던 유통기한은 식품 폐기의 핵심적인 인식인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먹어서는 안된다’라는 통념과도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 역시 유통기한은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나 빵을 먹는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아서 그냥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고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서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식품폐기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소비자 교육, 식품업계의 노력, 정부의 홍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 번째 질문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에 따라 푸드뱅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가장 큰 이슈는 아마도 식품 안전이 될 것이다. 소비기한에 거의 다다른 식품은 안전한계선에 가깝기 때문에 관리가 소홀하면 금방 문제의 소지가 높아질 것이다. 식품을 기부하는 측에서나 푸드뱅크 측에서 보다 경각심을 가지고 기부식품을 다루어야 함과 동시에 이용자들에게도 상세한 안내와 주의를 표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해서 냉장·냉동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하며 기부식품 모집과 배분의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관리의 에너지를 적절한 인력과 인프라로 커버할 수 있는 자원의 보강이 시급하다. 그런데 이러한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관심과 실질적인 보강은 한국 푸드뱅크 사업과 관련해서 오래도록 지적되어 왔던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현재로써 가장 주요한 부분이다. 한국의 푸드뱅크는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공공과 민간의 협력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쪽 날개만 열심히 퍼덕인다고 해서 정상궤도에 오르기는 어렵다. 

영국의 경우에 푸드뱅크는 거의 100%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인데 식품 기부와 관련된 정책적 개입의 수준이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영국은 식품을 ‘재분배’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정부가 지침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식품의 재분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글로벌 푸드뱅킹(GFN:Global Foodbanking Network)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은 식품의 ‘표준적인 날짜표기와 관련된 정책의 유무’, ‘날짜 표기의 명확성’, ‘식품 판매 및 기부와 관련된 규정’, ‘소비자 교육 캠페인’ 의 네 가지 영역에서 조사 국가 중 유일하게 모든 부문을 달성하고 있었다. 특히 잉여식품의 날짜표기법이나 재배분의 가이드라인을 국가 차원에서 자료로 제공하고 있었으며, 식품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기준을 정립하고 업데이트 해 나가고 있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푸드뱅크 담당자의 역량과 재량이다. 식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세분화 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표준화된 지침에 들어맞기는 어려운 사회이다. 애초부터 소비기한이 부여되지 않는 동네 빵집의 빵은 어떤 기준을 둘 것인가? 현실에서는 기부식품의 50% 이상이 지역사회 내 소규모 빵집에서 기부되는 빵들이다. 개별 포장도 되지 않은 빵들은 즉시 배분하는 원칙을 가지지만 푸드뱅크 담당자가 한명 뿐인 많은 지역에서는 기부를 받아서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품안전의 문제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담당자가 꼼꼼하게 육안으로 확인하고 판단해 안전하게 관리·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업무에 걸맞는 지원과 보수가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정기적인 교육과 점검을 통해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식품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거시적인 차원의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잉여식품을 폐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부를 의무화하는 법률을 시행할 정도로 식품 재분배, 환경문제, 취약계층 지원 등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기업은 식품의 기부를 생산단계에서부터 염두 해야만 한다. 한국은 이제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돼 식품 폐기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됐지만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다. 20여년간 식품 재분배와 기부의 활성화의 측면에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온 푸드뱅크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안정적인 사업 인프라 구축을 토대로 취약계층에 대한 식품지원, 식품낭비 문제, 환경 보전 등 다양한 가치들이 충분히 달성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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