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책임연구원
이선우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책임연구원

엄숙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떠올랐던 도서관이 언제부터인가 친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주관적인 느낌일까? 열이면 열, 네모반듯했던 도서관의 외관이 제각기 멋스럽고 창의적으로 변한 것도 이유이겠지만 주로 책을 보거나 자료를 찾기 위해 찾았던 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이 오늘날에는 독서를 하는 장소를 넘어 연령대별 독서 및 문화 프로그램, 아동·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 문학콘서트와 전시회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도 한 몫 했다. 이렇게 도서관을 찾을 이유가 다양해지면서 이미지도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도서관의 문턱도 많이 낮아져 누구나 그저 도서관 로비에 있는 카페의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 들르는 곳이 될 만큼 도서관 숫자가 늘어나고,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년 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1208개의 공공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을 통해 현황이 기록되기 시작했던 2007년 600개소에서 15년이 되지 않아 두 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설치·운영되고 있는 6448개의 작은도서관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도서관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공공도서관과 사회통합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은 지역주민 간 네트워크와 사회통합의 장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은 취약계층이 낙인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며,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국제도서관연맹(IFLA)과 유네스코(UNESCO)는 ‘공공도서관 선언’을 통해 공공도서관은 나이, 민족, 성별, 종교, 국적, 언어, 사회적 지위 및 기타 특징에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에는 언어 및 문화 교육, 직업교육, 생활지원 프로그램 등 대부분의 다문화 서비스가 공공도서관을 통해 제공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도서관에서 다문화가족 대상 한글 및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례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인과 장애인의 공공도서관 이용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 및 프로그램이 점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즉, 공공도서관이 새로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로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제3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19~2023)’에서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도서관’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4대 전략방향 중 하나로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 도서관’을 제시했다. 핵심 과제로는 정보 접근과 관련한 정보복지 수준을 넘어 여러 취약계층을 포용하는 도서관서비스를 확장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 및 복지시설과 연계해 생애주기별 삶의 문제를 지원하는 ‘경계를 넘는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문헌정보학계에서도 오늘날 도서관 및 도서관 사서의 역할 변화를 인식하고, 도서관이 지역사회 통합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시설로서 큰 강점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사회복지실천의 최전선, 공공도서관

대표적인 자유주의 복지국가인 미국은 민간영역을 중심으로 사회안전망과 사회서비스 전달체계가 구축돼 있다. 또한 사회서비스 내용에 있어서도 근로연계복지 성격이 강하고, 서비스 대상으로 선정되기까지 엄격한 자격요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등 여러 기관이 운영되고 있는 국내와 달리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고, 여러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오갈 곳 없는 노숙인을 비롯한 많은 취약계층이 공공도서관을 장시간 이용하고 있으며, 이들을 응대해야 하는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사회복지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도서관 사서는 사회복지실천을 위한 전문성과 지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으며, 사서들 스스로도 사회복지실천 영역의 과도한 역할 수행을 요구하는 것에 불만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이러한 상황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미국도서관협회(ALA)는 공공도서관을 ‘사회복지실천의 최전선’이라 표현하고, 도서관 정책 매뉴얼에 취약계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미국사회복지사협회(NASW) 또한 공공도서관에서의 사회복지실천을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사회복지 영역으로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도서관 사회복지 프로그램인 산호세 공공도서관의 ‘Social Workers in the Library Program’은 도움이 필요한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전문 사회복지사가 무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노숙인, 이민자 및 난민, 가정폭력 피해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이 사회복지실천 전문가를 통해 도서관에서 제공되면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공공도서관에서의 사회복지실천 동향을 조사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서관 사회복지(library social work)’를 주제로 한 학술연구 및 발표, 언론보도 등이 201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에 상응해 미국공공도서관협회(PLA)에 서는 도서관 사회복지 관련 산하조직을 구성하고, 주요 이슈와 실천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도서관-사회복지 협력의 허브(hub)’를 자처하는 민간조직인 Whole Person Librarianship도 2013년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도서관에서의 사회복지실천과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거나 사회복지전공 학생인턴을 배치한 도서관 목록을 구글 지도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으로 총 70개의 도서관이 상근직으로 사회복지사를 고용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9000개를 훌쩍 넘는 미국 공공도서관 수를 고려하면 매우 적은 수치이지만 도서관 이용자의 높은 사회서비스 욕구와 도서관 사회복지사 배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며 사회복지사를 고용한 도서관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시사점 및 과제

지역사회복지 환경과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 있어 한국과 미국은 너무나도 상이하며, 오히려 공통점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을 통한 사회복지실천이 확대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공공도서관의 역할 변화를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미국 공공도서관 사회서비스의 주된 대상은 노숙인, 이민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으로 이미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이 설치·운영되고 있는 국내에 미국 사례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 공공도서관 사회복지실천의 발전 과정이며, 이를 참고하여 국내현황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판단된다.

미국에서는 도서관 사서 및 이용자 등에 의해 현장에서 사회복지실천 전문가 고용과 사회서비스 프로그램 제공 필요성이 제기돼 자발적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미국도서관협회와 미국공공도서관협회, 미국사회복지사협회 등을 통해 사례 공유와 프로그램 확산이 진행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Whole Person Librarianship과 같이 민간영역에서 자체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해 도서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도서관에서의 사회복지실천과 사회서비스 제공에 대한 필요성이 명확하게 확인됐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아직까지 학계나 관련 단체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서야 점차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는 복지시설 및 사회서비스와 연계하여 도서관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내용이 담겨있어 충분한 조사와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이 누락된 채 정책이 추진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미국 공공도서관의 사회복지실천 사례와 확산과정을 참고했을 때 국내에서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세부현황 파악과 현장의견 수렴으로 보인다. 현재 수행 중인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서는 도서관 이용자 정보에 있어 연령별 비율만을 조사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어린이, 청소년, 성인만으로 단순히 구분하고 있다. 이용자 연령대를 세분화하여 파악하고, 도서관 방문목적, 사회서비스 욕구 등 보다 구체적인 항목을 조사내용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서를 포함한 도서관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회서비스 연계 및 사회복지실천 전문가와의 협력 필요성을 묻고,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이 수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도서관 사회복지실천 욕구조사, 프로그램 개발, 효과성 평가 등을 주제로 한 체계적인 학술연구를 통해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사서협회 등 여러 기관이 함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중앙정부·지자체와 협력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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