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팀장

 

이진영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팀장
이진영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팀장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국으로 아동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할 책무가 있는 국가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권리협약 비준국이 정기적으로 국내 이행현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그에 관한 최종견해를 통해 개선점을 제시한다. 한국의경우, 2019년에 제5, 6차 이행 검토가 이루어졌으며, 2024년 12월 19일까지 제5, 6차 최종견해에 대한 후속 조치 관련 정보를 포함하는 제7차 국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원칙적으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지만 실제 사법 판결에 적용되지않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제5, 6차 최종견해에서는 ‘우리나라 법률에 협약에 인정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및 여타의 조치를 취할 것’을 분명히 권고했으나 여전히 아동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근거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정부와 아동단체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아동을 권리주체로 존중하는 ‘아동기본법’은 무엇이며, 제정의 방향성은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들여다볼 때이다.

 

‘아동기본법’이란?

‘아동기본법’은 다양한 정책 목적에 따라 수행되는 아동 정책의 기본적인 이념과 목표를 제시하고, 아동의 핵심적 권리와 국가, 사회, 가정의 책무 등을 ‘아동 중심’으로 규정하는 법이다. 현재 아동에 관한 대표적인 법으로는 ‘아동복지법’이 있으나 이를 비롯한 국내 아동 관련 법률은 아동을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라기보다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할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또한 우리나라 법과 정책 목적에 따라 아동을 규정하고, 개별법 중심으로 사안마다 분립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아동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달체계가 분산 배치되어 있다. 그로 인해 부처 간 협력이 어렵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했을 때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근거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동기본법’ 제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아직까지 제정에 이르지 못했고, 아동 관련 사회적 이슈를 단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파편적으로 관련법을 개정해왔다.

정부는 ‘아동복지법’ 제7조에 따라 5년 단위 아동정책목표와 기본방향, 주요 추진과제를 수립하고, 중앙부처·지자체 공동으로 시행·관리하는 중기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에 2020년 ‘제2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통해 ‘아동기본법’ 제정계획을 발표했고, 연구와 포럼을 실시하며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움직임과 더불어 아동단체들도 ‘아동단체가 제안하는 아동기본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이는 아동단체 현장에서 만나는 아동들의 관점이 담긴 내용을 법안에 반영하여 빈틈없이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정부와 아동단체 모두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완전 이행을 위하여 국가의 아동권리 보장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아동기본법’ 제정의 주요한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기본법’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야 할까?

 

‘아동기본법’에 담겨야 할 것들

첫째, ‘아동기본법’에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아동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 원칙과 기본 권리가 포괄적으로 담겨야 한다.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 아동 의견존중 원칙, 비차별 원칙을 전제로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보장을 위한 조항이 반영돼야 한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일반논평 등에서 명시한 것과 같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권리조항을 포함하여 이들을 보호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장애아동, 이주배경아동, 난민아동, 북한이탈아동, 경제적으로 취약한 아동, 학교 밖 아동, 범죄피해 아동, 소년사법 대상 아동, 성소수자 아동, 보호대상아동, 입양아동 등이다.

둘째,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태어나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국가 및 아동과 관련된 부모나 보호자, 사회, 기업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 책무를 명시해야 한다. 특별히 국가는 아동과 관련된 정책이 빠르고 정확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아동이 포함된 아동정책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정책의 수립 및 시행, 실태조사와 영향 평가에 이르기까지 담당 부처의 추진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명시한다면, 아동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이 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아동의 견해를 존중하기 위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참여 제도를 활성화하고, 아동이 권리침해를 당했을 때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포함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아동이 아동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에 접근할 때 아동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며,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법·행정 절차에서 아동이 직접 또는 대리인이나 적절한 기관을 통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아동의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환경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아동권리 침해 이슈에서 아동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전 인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기후 위기’는 아동의 생존과 발달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고 있으나 기후와 인권 측면에서 아동은 충분히 고려되고 있지 않다. 모든 아동이 기후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일은 더 오랜 기간 살아갈 아동들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져야할 책임이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이 빠른 속도로 구축되는 동안 아동들은 디지털 폭력 피해, 디지털 환경 격차로 인한 교육 격차 등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디지털 환경에 접근해 활동하고, 폭력이나 괴롭힘, 개인정보 침해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야 함은 마땅하다.

 

‘아동 당사자의 목소리’ 담아 법 만들어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주요하게 담겨야 할 것은 바로 ‘아동의 목소리’이다. ‘아동기본법’을 준비하여 제정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는 아동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돼야 하고, 이해관계자들은 그 절차와 결과를 아동들에게 안내할 책임이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 법안이 마련된 후에야 뒤늦게 ‘아동과 함께 만들어가는 아동기본법 토론회’를개최했다. 아동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시점 상 늦게 진행되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법안을 설계해 가는 과정에서부터 아동을 참여시켰다면, 좀 더 실효적인 법안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토론회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한 아동은 겨우 6개 아동단체 총 12명에 불과해 매우 었다. 여러 아동단체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 아동 대토론회와 설문조사를 별도로 진행해 아동을 대변하는 법안 제정을 대안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아동기본법’ 제정은 그간 분절돼 있던 아동 정책을 하나로 통합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있다. 그리고 아동 권리를 가장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충실하게 국내법으로 맥락화 한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그러나 ‘아동기본법’ 제정은 이제 시작일 뿐 관련 및 하위 법령의 제·개정이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과정도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또한 아동과 청소년의 개념을 법체계 내에서 통합적으로 규정하는 과정, 인식 제고를 위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이 이어져야 이해당사자와 책임 주체들이 같은 이해를 가지고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함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은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 의견을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아동기본법’ 제정은 아동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으로 아동들은 자신의 견해를 밝힐 기회를 더 보장받게 될 것이다. 아동의 의견을 법안에 충실하게 반영하되 그 과정과 결과까지 아동 친화적인 언어와 방법으로 안내하여 아동 당사자들이 제대로 된 이해로 법 제정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와 아동단체의 노력에 아동 당사자들의 관심이 더해진다면, ‘아동기본법’은 대한민국 아동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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