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3대 개혁 추진, 사회복지의 눈으로•노동개혁

최영기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최영기 한림대학교 경영학과 객원교수,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윤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3대 개혁 과제 중에서도 최우선 과제로 뽑아 올린 것은 미리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아닌 듯하다. 대선 과정에서 그가 보였던 노동에 대한 태도는 비교적 중립적이었다. 노동개혁 공약도 ‘쉬운 해고’와 같은 고강도 유연화 개혁보다는 임금과 근로시간의 유연화 같은 타협적 개혁안으로 짜였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일 때 한국노총을 방문하여 함께 가자고 손을 잡았고, 큰 선물도 줬다. 취임도 하기 전에 재계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조차 당혹스러워 하던 공공부문 노동 이사제와 공무원과 교원 노조에게 타임 오프(전임자)를 허용하는 법 개정을 관철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될 때 불법적인 점거 농성을 질타하면서도 공권력 투입을 통한 조기 진압보다 고용노동부의 중재를 통한 타협적 해법을 찾았다. 더 나아가 윤 대통령은 대우조선 본사와 하청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비상식적으로 크다는 사실에 놀라며 비서실에 그 해결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지난 해 10월 고용노동부의 ‘조선업원·하청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으로 구체화됐다. 비록 조선업종에 한정됐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실태와 그 해법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 담겨있는 종합대책으로 평가된다.

노동에 대한 윤 대통령의 우호적 태도는 연말 민주노총이 화물연대를 앞세운 ‘총파업, 총력투쟁’을 계기로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화물연대의 파업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법 집행과 더불어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강요와 금품 요구 등 불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비리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최우선 노동개혁 과제로 부각된 것이 법치주의 노사관계다. 올해 들어서며 정부는 노동조합의 불법과 비리의 근절을 위한 더욱 강도 높은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터진 몇몇 민주노총 간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수사는 올해 노사관계를 경색 국면으로 몰아갈 전망이다. 동시에 노동개혁에 대한 사회적 대화와 타협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투 트랙으로 가는 노동개혁 - 법치주의 노사관계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에 따르면 올해는 노동개혁의 원년이다. 최우선 개혁과제는 법치주의 노사관계의 확립이다. 노사의 불법 행위와 잘못된 관행 개선을 내세웠지만 핵심은 노조의 불법 파업이나 채용 비리, 불합리한 우격다짐이나 떼쓰기와 같은 행태를 바로잡는 것이 목표다. 어느 정권에서나 법질서의 확립은 노사관계의 기본값이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관계의 법치 확립은 최우선 노동개혁 과제로 격상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부의 주요 공직자들이 법조인 출신인 탓도 있다. 그들의 직업적 특성에 비춰볼 때 노사관계도 결국 법과 제도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노사의 대화와 타협도 법치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거정권에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론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법치주의 노사관계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대로 불법 파업은 물론이고 노조의 집회와 시위 등 단체행동에서 관행적으로 용인되던 불법 행위를 철저하게 규율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담고 있다 하겠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공권력과의 충돌이나 노골적인 불법 행위가 크게 줄어든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다. 그리고 이것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하다. 많은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20~30대 청년층이 기존 노조를 기피하는 이유도 불법을 불사하며 투쟁 일변도로 나가는 노동운동의 불합리한 행태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부도 명백한 불법과 회계 부정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의 자세로 엄정하게 대처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발본색원하겠다며 노조 전체를 수사 대상 또는 범죄 혐의자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면한 노동개혁 과제가 법치의 확립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투 트랙으로 가는 노동개혁-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윤 정부의 국정과제에 올라있는 노동개혁 과제는 연공 임금체계 개혁과 근로시간 제도의 유연화가 핵심이다. 이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가 꾸린 자문단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다. 연구회는 주당 근로시간 규제를 월·분기·년 단위로 확장하고, 근로자 건강권 확보를 위해 1일 11시간 연속휴식시간 보장을 골자로 하는 근로시간개편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기획과 연구개발 등 일부 직종에 한정됐던 선택근로를 모든 직종으로 확대하고, 독일에서 잘 활용되고 있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의 도입도 포함됐다. 이러한 근로시간제도의 유연화는 모든 업종과 직종에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 노사가 각각의 사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노사 자치의 폭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MZ세대의 다양한 가치관, 격변하는 시장 환경을 감안할 때 근로시간 유연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다만 기업의 필요만이 아니라 연간 근로시간의 단축과 근로자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노동계의 요구가 제도설계에 균형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절충이 필요하다.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개혁의 단골 메뉴처럼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연공체계는 아직도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의 주된 임금체계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과거와 사정이 좀 달라진 것은 청년층 근로자들 사이에서 직무 성과급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고, 정년을 앞두고 있는 50대 고령자들도 정년 연장 또는 계속고용에 대한 요구가 높다는 점이다. 또한 원·하청 근로자를 비롯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의 과도한 임금격차를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이 기업 단위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연공 임금체계를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평가를 통한 사업장별 직무급 도입 방침은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실패했던 낡은 매뉴얼일 뿐이다. 보다 폭 넓은 공론화를 통해 근로자 집단별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고, 민간부문에서 추진되고 있는 보상체계 개편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끌어내 정부와 민간, 노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임금체계 개편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최소한 유사한 업종과 직종에서 통용될 수 있는 직무별 표준임금 테이블을 만들어 직무와 숙련 등급에 따라 임금시세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공표함으로써 시장의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 잘 만들어진 통계 인프라만으로도 임금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바꿔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밖에도 최근 제조 대공장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 업종 확대라든가 재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민감한 이슈들도 전문가 자문을 구해 빠른 시일 내에 개혁 방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국회 법 개정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동계는 파견제 확대나 대체근로 허용에 결사반대할 것이고, 오히려 택배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종사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해소도 노동계의 오랜요구 사항이다. 60세로 묶여있는 정년 제도를 개편하는 것 또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할 난제 중 난제다. 이는 연금 개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연공 중심의 임금과 인사제도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고 과도한 격차를 줄이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의 목표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단품 메뉴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세트 메뉴가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야 국회의 법 개정 절차도 보다 수월할 것이다.

 

노동과 복지, 교육 개혁을 포괄하는 사회정책 개혁의 컨트롤 타워를 세워야

과거 주요 정책개혁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3대 개혁을 각 부처가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노동 개혁의 사령탑으로 세우기보다는 고용노동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교육 개혁의 경우에도 국가교육위원회보다는 교육부가 대학 개혁을 비롯한 지방교육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국회 특위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3대 개혁은 사회정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과 교육, 복지 정책은 연금과 정년, 직업교육과 훈련과 같이 중첩되는 영역이 많아 각 부처가 각개 약진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의 대통령자문위원회를 통하거나 별도의 전문가 중심 자문단을 구성해 주요 쟁점들에 대하여 공론을 모으고, 이견과 갈등을 협의하고 조정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개혁의 성패는 이슈의 정당성보다 개혁과정에서의 갈등관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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