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심리학회(Australian Psychological Society, APS)에서 정의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전쟁, 자연재해, 교통사고, 화재, 폭력과 범죄 등 마음에 큰 충격을 주는 경험인 외상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를 의미한다. 환자는 이러한 경험에 대한 공포심,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사건에 대한 반복적 회상과 회피 등의 증세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발족한 국립서울병원 공공정신보건사업단 심리적 외상관리팀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중동기호흡증후군(MERS),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사건 등의 피해자 심리지원을 수행한 이래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개소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정신적 안정을 돕기 위해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사고 현장에서 친구 둘을 잃고 홀로 생존한 한 고등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생존자들의 PTSD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주의 PTSD 대응과 현황

호주에서도 1995년 재향군인단체, 보훈처(the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등의 요청에 따라 전쟁과 관련된 PTSD를 위한 국립 센터가 처음 설립되기 전까지는 PTSD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이 크지 않았다. 이 센터는 보훈처가 5년간 재정을 지원하기로 하고, 멜번 대학교, 오스틴 송환 의료센터와 협력하여 만들어졌다. 주요 임무는 퇴역 군인들의 PTSD와 관련 상태의 인식 및 치료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후 센터에 대한 예산 지원은 유지하되 사회 전반의 외상 후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등 활동의 범위가 점차 확장됐다. 센터는 2015년 설립 20주년을 맞이하여 피닉스오스트레일리아(Phoenix Australia)로 명칭을 변경하고, 외상 후 정신 건강 서비스, 이에 대한 정책 개발, 치료 연구 및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7월 호주 통계청이 발표한 ‘정신 건강 및 웰빙에 대한 국가 연구(National Study of Mental Health and Wellbeing)’에 따르면, 16~85세 호주인의 43.7%(860만 명)가 일생 중 한 번 이상 정신 장애를 경험했다고 한다. 5명 중 1명(21.4%, 420만 명)은 설문조사 전 1년 이내에 정신 장애를 앓았으며, 그 중 불안 장애가 가장 흔한 유형이었다(16.8%). 불안 장애 중 PTSD는 사회공포증(7.0%)에 이어 발병률이 두 번째로 높았다(5.7%). 2007년 조사에서는 약 12%의 호주 국민들이 사는 동안 PTSD를 경험했으며, 2017~18년도 조사에서는 여성의 약 1.7%와 남성의 1.3%가 의사, 간호사 또는 의료 전문가로부터 PTSD 진단을 받았다고 보고됐다.

 

PTSD 예방 및 치료에 대한 호주 가이드라인의 개요

2020년 피닉스오스트레일리아는 외상 전문가, 외상경험환자 연구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가이드라인 개발 그룹과 협력하여 ‘급성 스트레스 장애(Acute Stress Disorder, 이하 ASD), PTSD 및 복합 PTSD(Complex PTSD, 이하 CPTSD)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호주 가이드라인(Australian Guidelines for the Prevention and Treatment of ASD, PTSD and CPTSD, 이하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이는 일반의와 정신 건강 전문의, 정책 입안자, 관련 업계 및 외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외상 후 정신 건강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선호도에 더 잘 대응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현재의 증거를 반영한 권고 사항들을 제공한다. 이 권고 사항들은 2020년 6월 23일에 국가보건의료연구위원회(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의 승인을 받았고, 지속적 검토를 거쳐 2021년 12월 22일 새로 추가되거나 개정된 권장 사항을 반영해 마련됐다.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대상자를 성인으로 국한한 2007년 가이드라인, 이후 아동과 청소년까지 대상을 확대한 2013년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것으로 CPTSD의 새로운 진단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혁신적인 온라인 리빙 가이드라인(living guideline) 형식으로 게시되어 만족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있는 권장 사항을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하여 항상 최신 상태로 유지되도록 한다. 또한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처럼 사용되기보다는 관행과 같이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각 개인의 고유한 상황과 전반적인 정신건강 돌봄에 대한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

총 9장 245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된 가이드라인은 피닉스오스트레일리아 홈페이지 (www.phoenixaustralia.org/australian-guidelines-for-ptsd)를 통해 각 장별 PDF 파일로 제공되고 있다. 1장 서론에서는 가이드 개발 과정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고, 목적과 범위를 상세히 설명한다. 2장에서는 외상 및 외상에 대한 반응과 관련된 배경 지식을 제공하고, 3~5장에서는 아동과 청소년 대상 연구에 대한 일반적인 고려 사항과 개입, 방법론을 제시한다. 6장 치료 권고 사항은 아동·청소년과 성인을 구분하여 제시한다.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심리치료를 우선하고 약물 치료를 권장하지 않는 것, 보편적·지시된·심리학적 개입, 강한·조건적인 권고 사항의 유형을 나누어 치료 방법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7장에서는 국제 질병분류 11차 개정판(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th Revision, ICD-11)을 통해 CPTSD에 대해 설명한다. 8장에서는 PTSD에 의한 경제적 충격을, 9장에서는 특정 인구 집단과 외상 유형에 대해 제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주요 권장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잠재적으로 외상 사건 이후 일상적인 심리적 질문 조사(debriefing)를 권장하지 않는다. 잠재적 외상 경험자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적 응급 처치(psychological first aid)’라고 통칭되며, 일련의 개입과 일치하는 정보, 정서적 지원 및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외상 후 첫 3개월 이내에 PTSD 증상을 보이는 성인의 경우에는 단계별 또는 협력 치료 모델(a stepped or collaborative care model)을 권장한다. 단계별 치료 모델 내에서 사람들은 증상의 심각성과 복잡성에 맞는 증거 기반 치료를 받는다.

셋째, PTSD가 발생한 성인에게 심리치료에 대한 최선의 접근 방식은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해 충격적인 사건의 기억에 직면하는 것이다. 권장되는 치료에는 외상 중심 인지 행동 치료(trauma-focused cognitive behavioural therapy, TF-CBT), 인지 처리 치료(cognitive processing therapy, CPT), 인지치료(cognitive therapty, CT), 장기간 노출(prolonged exposure, PE),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기법 치료(eye movement desensitisation and reprocessing, EMDR) 등이 있다.

넷째, 성인의 경우에는 외상 중심 치료보다 약물 치료를 우선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환자가 외상 중심 요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참여할 의사가 없거나, 우울증과 같은 추가적인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등 외상 중심 치료를 받기 어려울 경우, 약물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약물 치료를 고려할 때 첫 번째 선택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또는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재흡수 억제제(SNRI)인 벤라팍신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섯째, 학령기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은 외상 중심 인지 행동 치료이다. 그러나 이는 개별 아동이나 청소년의 발달 단계에 적절하게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또한 치료 과정에는 부모나 보호자를 참여시키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평가 및 치료를 위해 아동 및 청소년을 데려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아동 및 청소년과 함께 일할 때 매우 중요하다. 또한 아동은 일반적으로 ‘가족’과 같은 시스템의 일부이며, 평가 및 치료는 시스템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외상 후 정신 건강을 위한 호주 정부의 투자

호주 연방 정부의 2022~23년도 예산에서는 정신 건강과 자살 예방의 치료를 우선순위로 지정했다. 정부는 총 3억 9170만 호주달러(약 3357억 원)를 투자하여 접근 가능하고 효과적인 정신 건강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 중 홍수, 산불 등 자연 재해와 비극적 사건으로 국민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이들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총 4244만6000호주달러(약 364억 원)를 투자했다. 한 예로, 2021년 12월 16일 타즈매니아주 데본포트의 힐크레스트 초등학교(Hillcrest Primary School)에서 어린이 놀이 기구인 ‘점핑 캐슬’이 강풍에 날리면서 초등학생 6명이 약 10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3명의 아이가 중상을 입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호주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역사회와 가족, 아동 및 응급처치 요원 등의 정신 건강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만 80만 호주달러(약 7억 원)를 편성했다.

호주 연방 정부가 외상을 통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갖고, 관련 서비스와 이를 제공하기 위한 예산을 우선적으로 마련하려는 노력은 근래 발생했던 여러 사회적 참사와 자연 재해 생존자들을 위한 보상과 정신 건강 서비스 제공 측면 등에 있어 한국 정부의 대응을 돌아보게 한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