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팬데믹을 겪으며 고립이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초연결시대에서 외로움의 위험을 경고한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저서 ‘고립의 시대’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다. 타인과의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이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에 실패 경험이 누적되면서 안전한 방이나 집에서 머무르며 외출하지 않는 은둔자도 있다. 단절되었지만 다시 사회와 연결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을 갖게 된 이들이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고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 은둔하고 있는 이들이 원한다면, 다시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 발의의 의의, 그러나…

2022년 10월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이 발의됐다. 그 의의는 크다. 무엇보다 고립되었거나 은둔하고 있는 자들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 그동안 은둔자들은 말 그대로 드러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말했듯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 꽃이 되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발의가 은둔자들의 존재를 공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부정할 수 없다.

법안은 은둔자들의 존재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들이 은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스스로 혹은 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책무성을 명시했다. 그동안 사회적 관계를 사회적 현상으로만 이해하거나 사적 영역의 문제로 다루면서 정부 지원이 필요한 사회문제로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가 점차 해체되고, 개개인이 생명을 갖기 시작하는 현대를 혹자는 개인화 시대라고도 부른다. 개인화가 심화되면서 타인과 맺는 관계가 희미해지고, 고립과 은둔 경험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법안 발의는 은둔자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함께 대응해야 할 문제로 공론화한 데에 시대적 의미가 있지만 사회복지정책과 실천 관점에서 이 법안을 정책화하는 데에 있어서는 몇 가지 아쉬운 지점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 발의의 한계

첫째, ‘은둔형 외톨이’를 표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책적 사각지대를 남긴다. 발의된 법안에서는 이들을 ‘사회·경제·문화적 원인 등으로 인해 집 등의 한정된 공간에서 6개월 이상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해 정상적인 학업 수행이나 사회 활동이 현저히 곤란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의에 따르면, 은둔기간이 6개월 미만이지만 비교적 조기에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 은둔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니거나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일시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부정수급 대상자가 된다. 게다가 은둔 기간을 알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말하는 바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도치 않게 거짓을 말하게 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20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첫 실태조사 결과와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이 법의 제2조(정의)에서는 고독사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부채 부담과 건강 문제를 안고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 세 모녀는 ‘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독사가 아니다. 과연 그러한가? 법률에 의한 정책 대상의 정의는 정책적 사각지대의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둘째,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로 명명하는 것은 은둔자를 은둔하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해 낙인감을 유발할 수 있다. 공적 지원은 표적하는 문제를 완화·해소하기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은둔자는 다른 이들과 관계가 단절되어 사회적 관계 자본이 부족·결핍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이들의 사회적 관계 자본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관계 자본 회복은 다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은둔자들을 소위 ‘지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한다면, 은둔 경험을 갖고 있는 동료나 은둔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책이 은둔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회복을 돕는다는 것은 그들을 분리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재통합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어울려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은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해서 모두가 같지 않다. 10대 청소년도 있고, 20~30대 청년도 있고, 40~50대 중장년도 있으며, 노인도 있다. 은둔 경험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지원기관에서 청소년과 청년, 중장년, 노인이 사회적 관계 자본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당사자보다는 공급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의 체격에 맞는 책상과 의자를 쓴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미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지원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한 첫 관문이다. 최근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메타버스나 온라인 신청과 같은 웹기반 신뢰 관계 형성에 친숙하다. 노인이나 중장년이 원하는 관계 형성 방법은 또 다르다. 지원 사업이나 지원기관은 무엇보다 당사자가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넷째, 고립과 은둔 경험은 법적으로 성년이 되는 청년기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둔의 전조증상을 보이는 청소년도 있지만 학교나 위(Wee)센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들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고립되거나 은둔하는 노인들에 대해서는 ‘노인복지법’ 등 관련 법률에 의한 다양한 지원들이 있다. 최근 기본계획이 발표된 고독사 예방 사업은 중장년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 고립과 은둔의 관점에서 지원정책이 비어 있는 생애주기는 청년기이다. 최근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실시한 부산광역시 사례를 보면, 은둔형 외톨이의 80~90%가 20~30대에 은둔에 대해 처음 생각했거나 은둔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과 은둔 문제에 조기 개입하여 문제가 심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이 비어 있는 청년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은둔은 다종다양한 실패 경험을 누적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어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피난처이다. 전통적으로 빈곤 등 복지 지원을 고안할 때는 취약성 유발 원인에 따라 상태를 완화·해소하고자 했다. 고립과 은둔은 다양한 원인으로 취약해진 상태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주변 지지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자립준비청년이 은둔할 수도 있고, 가족의 돌봄 부담으로 인해 청년이 고립될 수도 있다. 취업에 계속 실패해 고립되다가 결국 은둔하게 될 수도 있다. 단순히 한 청년이 은둔하는 상태를 표적한다면, 취약성을 유발하는 다종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취약 청년은 또 다시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

 

생애관점 복지를 말할 때다

202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복지정책이 시혜적이라는 기존 관념이 기본권 보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복지정책이 양적으로 확대됐다. 여전히 OECD 평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00년 4.4% 수준이던 사회지출 규모가 20년이 지난 2019년 기준 12.2%로 증가했다. 팬데믹 이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복지정책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또 다른 20년을 준비할 때다.

새로운 취약계층으로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는 은둔자가 사회에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그들의 삶의 장면에서 필요로 하는 지원을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제공하고, 소관부처 등에 따라 파편화된 개별 지원사업을 사람 중심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생애주기에 따라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9~24세인 사람의 복지 증진을 목표로 한다. ‘노인복지법’도 있다. 사회복지정책이 비어 있는 새로운 사각지대로서 청년과 중장년을 위한 복지 지원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은둔자의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사회적 활력이 낮아진 청년들이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청년들과 어울려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장년 은둔자라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할 일이다.

현 시점에서 정책 사각지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복지정책은 환영할 일이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법안 발의의 의의를 부정할 수 없지만 몇 가지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은둔자를 특정 기준을 가지고 ‘은둔형 외톨이’로 정의하는 것은 자칫 그들을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분리함으로써 낙인감을 느끼게 하거나 은둔자와 비은둔자 간의 새로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은둔자를 놓칠 수도 있다. 고립에 대응하는 새로운 복지정책이라면, 은둔 경험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사회적 관계의 부족분을 메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세대를 가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청년은 또래 청년들과 어울리는 청년 복지를, 중장년과 노인도 또래와 어울리면서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생애관점 복지를 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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