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노인요양보험의 혜택을 받는 인구는 약 1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19만 명은 노인전문요양원에서 거주하고 있고, 17만 명은 본인 집에서 전문 요양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약 82만 명에 달하는 노인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여행, 교통, 상담, 치료 등의 지원을 받는다. 노인요양보험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80세 이상의 여성들로 전체 이용자의 65%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요양원보다 집에서 요양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기 원하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약 5만 명이 자가 거주를 선택했는데 현재는 17만 명 이상이 집에서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 자가 거주는 노인들에게 개인의 생활 습관과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정부는 요양원 설립과 유지에 필요한 예산을 아낄 수 있는 선택지로 받아들여진다. 전문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인구는 전체의 16%인데 반해 지급되는 보험금은 전체의 60%에 달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지급되는 연간 보험금 약 20조 원 중 12조 원 이상이 노인전문요양원에 지급될 만큼 노인요양산업의 규모는 크다. 필요한 보호와 의료 서비스에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자가 거주 노인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은 약 4조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거주하는 시설과 이용하는 서비스에 따라 자기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들은 요양원 거주를 위해 내야 하는 보증금을 제외하고 시설 이용과 의료서비스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의 약 27%를 부담하고 있다. 이는 5년 전의 자기부담비율 28%보다 감소한 것으로 요양원 거주 노인 인구 수는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정부 부담금이 증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양원에 지급하는 보험금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비싼 의료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력난으로 인건비가 증가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자의 숫자는 변하지 않는데 비용이 급증하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노인에 대한 학대와 비인간적인 대우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호주 정부는 노인요양보험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게 됐다.

 

노인요양보험 개혁,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 줄 수 있어야

호주 정부는 10월부터 주거용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정부 보조금 지급방식을 변경했다. 호주국정노인요양등급(Australian National Aged Care Classification, AN-ACC)이라 불리는 모델을 통해 노인요양시설은 △신규 입주자를 위한 일회성 보조금(약 105만 원) △거주자의 노인요양등급에 따라 차등으로 지급받는 AN-ACC 보조금(1인당 1일 3000원~20만 원) △노인요양원의 크기, 위치와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지급받는 고정보조금(1인당 1일 10만~38만 원) 이상 세 가지 보조금을 지급받게 된다.

이번 변경은 기존 보조금 지급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정부 보고서에 기초해 이루어졌다. 이 보고서는 기존 보조금 지급방식이 요양 등급에 따라 피보험자 간에 보조금 지급액수에 차이를 두지 않았고, 노인요양시설의 수익과 정부 지출액의 예측 가능성이 낮았으며, 노인요양시설 의료종사자들이 피보험자의 요양비용 평가 업무까지 담당하면서 요양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호주 정부는 노인요양시설에 지급되는 보험금을 세분화, 차별화함으로써 요양원 거주 고령 노인들은 △노인요양시설에서 24시간, 언제든지 상담받을 수 있는 간호 서비스 제공 △거주자당 하루 평균 215분의 요양 서비스 보장 △노인요양시설 거주자들에게 더 나은 음식 제공 △장애 노인 맞춤형 지원 제공 △자가 거주 노인들에게 간호 서비스 비용 관리 권한 부여 △변화하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택 노인 간호 재설계 △노인들이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 △방치와 차별로부터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규제와 독립적인 감독 도입 등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공정한 보조금 지급을 위해 호주 정부는 피보험자의 노인요양등급 결정과 거주시설에 대한 고정보조금 지원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독립적인 평가관리기관(Assessment Management Organizations, AMOs)을 민간 기관 중에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노인 의료부문 비용산출 전문기관인 독립의료노인요양비용청(Independent Health and Aged Care Pricing Authority, IHACPA)의 자료를 이용하여 매년 관련 비용을 조정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호주 정부는 6개 민간기관을 독립적인 평가기관으로 선정했다. 이들 기관은 호주 정부가 공인한 평가척도에 따라 피보험자의 신체 능력, 인지 능력, 행동, 정신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맞는 요양등급을 책정하게 된다. 평가척도를 살펴보면, 우선 신체 능력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한다.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능력, 침대에 눕고 일어날 수 있는 능력 등을 5등급으로 구분한다.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세분화해 간단한 달리기가 가능한지, 지팡이나 휠체어 등 보조기구가 필요한지 세밀하게 평가된다. 피보험자의 행동양식도 평가 대상이다. 밤에 시설에서 혼자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지, 다른 거주자, 가족 구성원, 보호자, 방문자 또는 직원에게 해를 끼치는 위협적인 행위를 하는지도 관찰한다. 자살이나 자해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등급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비용평가 모델, 현장에서는 ‘우려’

AN-ACC는 피보험자의 요구를 더 잘 충족하는 제공자에게 더 공평한 의료 기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독립의료노인요양비용청이 신체 능력, 인지 능력, 행동 및 정신 건강을 고려하는 AN-ACC 평가 도구를 사용하여 거주자를 13개 범주 중 하나로 분류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그러나 AN-ACC 모델이 발표되자 노인요양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작년 2월 발표된 미루스 호주(Mirus Australia)는 노인요양시설 제공자들이 새로운 비용평가 모델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하다고 평가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지급받게 될 보조금이 기존 수준과 비슷하거나 증가하리라는 것에도 비관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한 관련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정보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시스템 안정화에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 의료기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작년 5월 조안나 탄(Joanna Tan) 호주 물리치료협회 노인요법단체 국민회의 의장은 “AN-ACC 모델은 요양기관이 피보험자에게 할당된 돈을 어떻게 쓰는지 명시하지 않는다”면서 노인요양시설들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제휴 중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응해 호주 정부는 요양기관이 새로운 펀딩 모델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일괄 처리해 서비스하는 온라인 포털을 개설했다. 이 포털에서는 피보험인의 요양등급 변경 신청과 재심 신청도 가능하다.

 

노인요양등급 결정 민간참여로 공정성·독립성·전문성 보장한다

호주가 새롭게 도입한 노인요양보험 보험금 지급 모델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양등급 결정을 위해 전문 독립기관을 민간으로부터 선정하는 것이 그 하나다. 공정성과 독립성, 그리고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민간기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급증하는 노인요양 관련 정부예산 운영의 투명성 높이기 위해 전문기관과 함께 관련 비용의 적정성을 매년 심사하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요양 서비스 제공 기관이 새로운 펀딩모델에서 불이익이나 불편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요양기관의 눈높이에 맞춰 제공하려는 호주 정부의 노력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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