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의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20대 남녀가 결혼해 남자는 생계, 여자는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슷하게 성 역할에 대한 인식과 이에 따른 가족 형태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터부시됐던 미혼·이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작년 6월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남녀 공동 참획 백서 : 100세 시대 속 결혼과 가족’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가족상과 결혼관을 비교해 보자.

 

일본의 ‘남녀 공동 참획 사회 기본법’

일본에서는 1999년 6월 23일 성 평등 사회 구축을 목표로 하는 ‘남녀 공동 참획 사회 기본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내각부 산하 ‘남녀 공동 참획국’의 주도 아래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이 법에 명시된 ‘남녀 공동 참획 사회’의 기본 이념은 크게 5가지로 △남녀의 인권 존중 △고정적 성 역할로부터 벗어난 사회 제도 및 관행 정착 △남녀의 대등한 관계를 위한 정책 입안 및 결정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 △국제적 움직임과의 동조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남녀 공동 참획국에서는 여성권 증진을 위한 정책 및 방침의 결정, 가정 내 성 역할 불균등을 없애기 위한 남성의 가사 참여 유도와 가정 폭력 근절, 여성 고용기회 확대 등에 힘써왔으며, 그 내용으로 보아 한국의 여성가족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매년 연차 보고서로 여성가족백서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남녀 공동 참획국에서도 매년 6월경 ‘남녀 공동 참획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2022년 발간된 남녀 공동 참획 백서는 ‘100세 시대 속 결혼과 가족’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으며, 현재 사망 연령 최빈값이 여성 93세, 남성 88세인 초고령사회 일본에서의 가족상 및 결혼관 변화와 이에 따른 과제를 담고 있다.

 

일본의 ‘100세 시대 속 결혼과 가족’

현재 일본에서도 미혼, 만혼, 이혼 등이 만연하는 등 결혼에 관련된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가족의 형태, 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고 있다. 2022년 남녀 공동 참획 백서의 주제인 ‘100세 시대 속 결혼과 가족’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채택됐고, 일본의 다양해지고 있는 가족상과 결혼관을 일부 조명하고 있다.

먼저 가족 형태의 변화를 살펴보면, 1980년 전체 약 60%를 차지하고 있었던 ‘부부와 자녀(42.1%)’와 ‘3세대 이상(19.9%)’은 2020년 기준 각각 25.0%, 7.7%까지 감소했고, 1인가구 비율이 19.8%에서 38.0%까지 증가해 전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혼인 건수는 약 60만건 전후를 유지하고 있고, 이혼 건수는 약 20만건 정도로 혼인 건수의 3분의 1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혼인 건수는 2020년 52만6000건, 2021년 51만4000건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미혼 혹은 배우자와 이별 등의 사유로 독신 비율이 크게 증가했으며, 2020년 기준 30대 미혼율은 여성 40.5%, 남성 50.4%를 기록했다. 또한 50대의 경우에는 약 30%가 미혼 혹은 이별 등의 이유로 배우자가 없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이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2021년을 기준으로 ‘현재 배우자 혹은 애인이 없다’고 대답한 20대의 비율은 여성 51.4%, 남성 65.8%로 남성이 조금 높게 나타났지만 절반 이상의 청년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교제한 인원에 대한 조사에서는 독신 중 ‘교제 경험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20대에서는 남성, 여성이 각각 40%, 25%였으며, 30대에서는 남성, 여성이 각각 34%, 22%로 여기에서도 남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혼에 대한 생각의 변화도 엿보인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장래 이혼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여성은 20대 16.6%, 30대 17.8%, 40대 20.5%, 50대 15.9%로 나타났으며, 남성은 20대 15.9%, 30대 16.4%, 40대 19.3%, 50대 15.5%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약 15% 이상이 이혼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021년 기준 50대의 이혼 경험 비율을 보면, 여성 19.4%, 남성 13.3%로 나타났다.

결혼관에 있어서는 2021년 조사 결과 여성 중 약 38%가 ‘상대방의 수입이 자신보다 높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으며, 남성은 약 13%에 그쳤다. 반대로 ‘상대방의 수입이 자신보다 낮아도 된다’고 답한 남성은 약 22%인 반면에 여성은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여성은 자신보다 높은 수입의 배우자를 원하고, 반면 남성은 배우자의 수입이 자신보다 낮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일본 기혼 여성 약 60%의 연 소득이 200만 엔(한화 약 1920만 원)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남녀 간 높은 소득격차에 의한 불안심리가 여성들에게 강하게 작용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동일한 조사에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여성은 20대에서 14.0%, 30대에서 25.4%였으며, 남성은 20대에서 19.3%, 30대에서 26.5%로 남성이 여성보다 결혼 의사가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결혼할 의사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결혼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결혼에 구속받고 싶지 않고 자유롭게 있고 싶어서’라고 대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고, 남성의 경우에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경제력이 없거나 직장이 불안정해서’가 여성에 비해 높은 비율을, 여성의 경우 ‘여자가 가사를 모두 짊어지게 되기 때문에’, ‘결혼으로 성이 바뀌는 것이 싫어서’가 남성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100세 시대 속 결혼과 가족’의 분석 및 과제, 시사점은?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들을 분석해 일본 남녀 공동 참획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가족 형태의 변화를 봤을 때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1인가구인 점이 확인됨에 따라 세대 단위로 이루어지는 사회복지정책을 개인 단위에 맞는 형태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젊은이들의 미혼, 전 연령대에서의 이혼이 만연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성 1인가구가 남성 1인가구에 비해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남에 따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성별 임금 격차의 해소, 여성의 고용 확대, 여성 비율이 높은 직종의 임금 개선, 유리 천장 없는 승진 환경 구축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혼으로 여성이 빈곤에 빠지는 것에 대비해 조기부터 여성의 커리어 향상을 위한 교육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미혼 남성들을 위한 상담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남성들이 결혼을 못 하는 요인이 낮은 경제력에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와 같이 일본과 한국은 상당히 유사한 상황에 있다. 한국과 동일하게 미혼 및 이혼의 증가가 나타나고 있고, 그에 따라 1인가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에서 일본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이 ‘결혼 자금 부족 및 고용 상태 불안정’인 반면, 일본에서는 남성 쪽에서만 경제적 요인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날 뿐 공통적으로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일본 남성은 소득이 낮을수록 이성교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저소득 남성의 결혼 곤란은 일반적 현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는 타의적인 요인으로 인한 미혼이 많은 반면, 일본에서는 자의적인 미혼이 많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보다 더 열악한 일본의 여성 고용시장 상황이 일본 여성들에게 결혼을 통한 경제적 의존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남성에게 있어서만 ‘타의적 미혼’이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대응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일본은 심화되고 있는 미혼과 이혼 증가를 억제하려는 노력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초점을 맞춰 여성 1인가구가 빈곤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을 향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혼인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미 사실혼이 일반화되고 일부 국가에서는 혼외자의 비율이 50% 가까이 된다. 결혼에 대한 인식, 특히 그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변화한 것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더욱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다. 다만 그 속에서 정부는 미혼과 이혼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받아들여 사전 개입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 사후 개입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선택해야 할 수 있다. 국가적 상황과 당사자들의 생각을 면밀히 검토해 단순히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에게 ‘맞는’ 정책적 대응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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