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르신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좋아서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16년째 일하고 있는, 결혼, 출산, 이혼을 경험한 싱글맘 사회복지사다. 특별할 건 없다.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와 리모컨 경쟁을 펼치는 시간이 행복한 평범한 사회복지사 엄마일 뿐.

이혼이라는 선택을 고민하는 고단한 시간 속에서 나의 첫 선택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가득 불러온 배와 밀려드는 혼란 속에서 밝게 웃으며 일상을 버텨낼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서둘러 사직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결정했다. 출산 후 3개월째 다시 일을 시작했다. 새 일터는 그때 막 개관을 준비하던 노인복지관,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곳이다. 처음 만난 직원들에게 ‘나’를 꺼내어 놓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0년부터 머물기 시작한 복지관은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함께하는 곳이다. 야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직원휴게실은 마치 놀이방 같았다. 따뜻함이 가득 묻어있는 목소리로 이모를 자처하며 아이 곁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간식을 나누어주던 직원들을 아이는 지금도 각각의 애칭으로 부른다. 순식간에 흘러간 시간 속에 내가 느끼고 이겨낸 여러 어려움이 낱낱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늘 의지할 곳이 되어준 고마운 동료들 덕분이다.

힘든 순간을 이겨낸 후 또 다시 찾아온 시련에 나약한 나를 얼마나 더 꾸짖어야 하는지 고민할 때 읽었던 위로가 된 글,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한 계절을 겪어내도 다른 계절은 또 다른 어려움과 함께 찾아오는 법이니 늘 힘들 수밖에 없다. 모든 상황과 고통이 같은 형태로 찾아오지 않기에 우리에겐 늘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각각의 계절을 이겨낼 각각의 힘.’

 

코로나19로 2년 남짓 닫혀있던 복지관의 문이 열리고,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복지관을 찾아온 아이를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조그맣던 아기가 벌써 이렇게 컸어?”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는 어르신의 표정에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따듯한 마음이 가득 느껴진다. 복지관을 내 집처럼 편하게 드나들며 아이는 걸음마를 떼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글을 읽고, 관계와 배려와 사랑을 배운다. 사회복지사 엄마의 삶 한가운데서 자라난 아이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경험이다.

아이가 5살 때, 복지관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요구르트를 나눠드리는 것으로 시작된 첫 봉사활동은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바자회 체험부스 보조역할로 이어졌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에 염색 한 번 하지 않고 부지런히 기른 머리카락은 벌 써 두 번이나 기부했다. 매달 저금하는 용돈의 절반은 고심 끝에 결정한 사회복지시설 두 곳에 기부금으로 보낸다. 모든 과정에서 엄마는 설명하고, 아이는 선택한다. 나눔의 의미와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행복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아이를 통해 배우는 중이다. ‘행복의 높이를 조절할 줄 알고, 주어진 모든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위대한가.'

 

복지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숱한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가득한 긴긴밤의 삶 이야기들은 수백 권의 책을 읽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인생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가 어르신들의 삶을 비교하면서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나의 삶도 상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지금의 삶을 바라 보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금을 잘 살아갈 좋은 관계를 맺는 것, 도움을 주고 받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배운다.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이고, 싱글맘은 싱글맘이다. 이혼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선택 가운데 하나일 뿐, 둘 사이에 특별한 연관성이나 상호작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내 인생에 영향을 주는 어떤 선택에 어려움이 따를 때, 이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좋은 환경과 사람들을 곁에 있게 해주고, 내 삶의 방향을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또 다른 어둡고 긴 시간이 찾아오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다고,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아침이 찾아온다는 것을 오늘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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