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영 서울대학교 한국행정연구소 선임연구원
황선영 서울대학교 한국행정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리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이제 엔데믹(endemic)으로 향하고 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에 더욱 가혹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팬데믹 기간에 지속적으로 증가한 아동학대 신고 및 판단 건수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21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약 5만 건으로 2020년 대비 27.6% 증가했다. 학대 판단 건수도 전년 대비 21.7% 상승했다. 2021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0명으로 파악되며, 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아동의 연령군은 만 1세 이하(24개월 미만) 아동으로 37.5%를 차지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아동학대 사례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졌지만 사실 아동학대 신고 및 판단 건수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신고 및 판단 건수가 증가한 이유를 긍정적으로 풀이해보면, 과거보다 아동을 학대하는 사례가 발견될 때 관할 기관에 신고하는 시민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을 학대하는 사례가 실질적으로 증가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코로나19 발발 이후 공적 돌봄·교육기관이 일정 기간 문을 닫으면서 아동이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학대 가해자와 피해 아동이 분리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장기간의 비대면 상황에서 그간 공적 교육 및 돌봄 시스템에서 작동되던 초·중·고교 직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등 신고의무자를 통한 모니터링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그 결과 팬데믹 기간 동안 아동학대 신고 및 판단 건수가 크게 증가했을 가능성도 높다.

 

아동학대 대응체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

정부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학대 방지 보완대책(2018년)’, ‘포용국가 아동정책(2019년)’, ‘아동·청소년 방지대책(2020년)’을 연달아 발표하며 아동학대 대응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개선에 대한 요구는 한층 더 강해졌다. 정부는 이 같은 요청에 대응하고, 아동학대 예방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놓았다.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개선책에 대한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아동학대 발생 초기에 면밀한 조사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현장 대응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둘째, 현장 대응인력인 경찰·공무원·아동보호전문기관 간 역할을 정립하고, 협업을 강화하고자 했다. 셋째, ‘아동복지법’을 개정하여 1년 내 2회 이상 신고아동 중 학대가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와 보호자가 아동의 답변을 방해하는 경우, 즉시 아동을 분리 조치 하도록 했다. 넷째, 현장 인력이 학대현장에서 조사 및 수사 진행할 시 대응 이행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다섯째, 대응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고, 이들이 업무로 인해 소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업무 여건을 개선하고자 했다. 여섯째, 학대 아동과 가해자의 학대 위험이 높은 위기 아동을 발굴하고, 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했다.

 

아동학대 예방, 근본적인 사회 제도 변화 필요

불행하게도 이 같은 정부의 노력이 무색하게 아동학대 사망 사건 보도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 접속해 ‘아동학대’를 검색하면,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아동이 학대당했다는 기사가 넘쳐난다. 이 같은 상황은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회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까? 가장 먼저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이전 제도를 개선하는 사후약 방문식이 아닌 사건이 발생하기 전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간 나온 모든 대책들은 소중한 어린 생명들이 가해자로부터 학대 받고 사망하거나 신체적·정신적 상해를 입은 후에야 마련된 대책들이었다. ‘아동 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은 천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2020년 6월)과 창녕 아동학대 사건(2020년 7월) 발생 후 마련된 대책이었다. 2021년 1월과 8월에 보건복지부가 연달아 내놓은 ‘아동학대 대응체계 보완 방안’은 양천 학대 피해아동이 사망(2020년 10월)한 후 내놓은 대책이었다.

2021년 2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아동보호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자는 법이 발의됐다. 바로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사건 발생 후 아동학대 사건들에 대한 대통령 직속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2018년 1월부터 법 시행일 이전까지 발생한 중대 아동학대 사망사건 사례를 선정해서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것을 주요 골자로 했다. 이를 통해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고, 땜질식 제도 개선이 아닌 아동학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포함한 좀 더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이 특별법이 발의되기 전 주로 참고됐던 자료가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이다. 영국에서 8세 소녀가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진상조사단을 꾸려 2년간 275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분석해 보고서를 냈고,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2004년 ‘아동법’이 제정됐다. 한국에서는 민간 차원의 조사가 이전에 두 차례 이뤄진 적이 있지만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는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완벽하지 않다. 앞서 살펴본 양천 학대 아동 사망사건 또한 제도의 허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민간에서 수행하던 학대 조사 업무를 시군구로 이관하고, 기존 학대 조사 업무를 담당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관리 기관으로 개편했다. 학대 아동에 대한 국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제도의 전환은 바람직한 방향이었지만 한 사건에 너무 많은 주체들이 개입하게 되는 문제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제도 이행 초기에 양천구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서는 학대 아동에 대한 신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아동학대 조사기관은 경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아동학대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조사기관의 신고가 있어야만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기에 양천 학대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정부가 사건 이후 발표한 제도 개선 방향은 아동을 구조하지 못한 핵심 이유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적 상황으로 인해 여러 차례 학대 신고가 있었음에도 가해자와 아동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이 같은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하지만 이 법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된 뒤 통과되지 못했다. 연이어 터진 아동학대 보도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면서 정부에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지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또 다른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학대당하고 있다. 또 한 번 귀한 생명을 잃고나서 뒤늦게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기 전에 우리 사회는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발의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해당 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면밀한 조사가 더욱 필요한 이유는 아동학대 대응 제도가 그 무엇보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Child)을 중심에 두고 세심하게 설계돼야하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는 모든 정책에 아동의 이익을 우선으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가해자와 아동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 쟁점이 되면서 즉각 분리 조치가 시행됐다. 다만 학대 정도가 심각한 아동에 대해서는 즉각 분리가 필요하지만 무엇이 가장 아동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중심에 두고 분리 여부를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동의 의견은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분리 과정에서 아동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보완할 전문가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지, 분리 이후 아동의 정서적 안정감을 지원하는 대책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등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이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더욱이 아동학대 문제는 어린 생명을 다뤄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세심히 숙고해야 한다. 더 이상의 땜질식 대책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