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저임금제는 시행 초기부터 도도부현별로 다른 금액을 적용하고 있고, 산업별로도 별도의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생활임금제 도입을 비롯해 최저임금제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일본 최저임금제의 역사와 현황을 통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제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용자 주도로 시작된 일본 최저임금제

일본 최저임금은 1947년 ‘노동기준법’을 통해 처음 규정되었으나 패전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실질적인 최저임금제는 1959년 ‘최저임금법’ 제정과 함께 정립됐다. 그러나 1947년부터 1959년까지 12년 동안에도 최저임금이 완전히 기능하지 않던 것은 아니었다. 1956년 시즈오카현에서는 통조림 조리공을 대상으로 한 ‘초봉 협정’이 체결됐는데 이는 사업자 단체에 의한 자주적인 협정이었기에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 측의 참여 없이 사용자의 사정으로 인해 체결된 협정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세계적으로 봐도 이례적이다. 일본에 이러한 방식이 보급된 이유는 인력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동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직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지방정부와 사용자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 제정된 ‘최저임금법’ 조항에는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노동 협약과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심의회를 통한 결정 방식이 명시되었으나 당시에는 실질적으로 ‘노동자 없는’ 결정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 이유로는 당시 일본 정부가 섬유 및 금속기계 산업 분야와 같은 저임금 업종의 급격한 임금 상승을 경제성장의 방해 요소로 보고, 임금상승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업자 간 협정 방식’을 장려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문제는 ‘업자 간 협정 방식’이 일정한 가이드라인 없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일본 고도성장과 맞물려 산업 간, 그리고 지역 간에 엄청난 불균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법’에 근거해 설치된 ‘중앙최저임금심의회(이하 중앙심의회)’에서는 1964년에 ‘최저임금 대상 업종 및 최저임금 금액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며, 1966년에는 최저임금 대상 업종 구분을, 1968년에는 업자 간 협정 방식을 폐지하고, 심의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심의회 방식으로 결정 방식을 변경했다. 이후 1971년에는 지역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지방최저임금심의회(이하 지방심의회)’가 만들어졌으며, 1978년에 현재와 같이 중앙심의회가 정한 표준 금액을 바탕으로 지방심의회가 최종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표준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심의회에서 노·사·정이 합의하여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던 것은 1978년 표준 제도 도입 후 1981년까지 단 3년뿐이었고, 그 이후에는 노사가 최저임금에 대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형식으로만 최저임금 결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통해 일본 최저임금이 일본 특유의 ‘조용한’ 노동조합의 성향과 맞물려 노동자의 능동적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 시작은 사용자 주도였으나 후에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의 온정주의적 성격을 갖춘 결정 방식이 확립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별 최저임금과 산업별 최저임금

현재 일본의 최저임금제는 △심의회에서 ‘지역별 최저임금’과 ‘산업별 최저임금’을 명확히 구분해 다룰 것을 법률 상 규정 △지역별 최저임금 필수 설정 명시 △최저임금 수준을 생활보호제도(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해당)와의 정합성을 바탕으로 할 것을 명시하도록 하는 2007년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기초해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최저임금은 크게 ‘지역별 최저임금’과 ‘산업별 최저임금’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데 모든 최저임금은 상술한 표준 제도에 따라 일본 후생노동성이 설치한 중앙심의회가 매년 전년과 비교해 표준 금액을 인상할 것인지 인하할 것인지를 결정 한다. 이후 각 지방 노동국에서 운영하는 지방심의회에서 지역별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한다.

지역별 최저임금은 그 지역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와 사용자에 적용되며, 모든 지방심의회는 반드시 최저임금을 정할 의무가 있다. 기본적으로 지역별 최저임금은 중앙심의회에서 경제 수준에 따라 지역을 4단계로 나눠 각 단계별로 표준 금액을 제시하고, 지방심의회는 이를 기준으로 지역의 물가 수준, 지역 노동자의 생계비, 지역 사용자의 임금 지불 능력 등 지역 사정을 고려해 자체적인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한다. 2022년 현재, 전국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곳은 수도인 도쿄도로 1072엔(약 1만200원)이며, 가장 낮은 곳은 아키타현, 오키나와현으로 853엔(약 8100원)이다.

이와 별도로 마련된 ‘산업별 최저임금’은 ‘특정 최저임금’으로도 불리며, 지역 내 특정 산업에 대해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본적으로는 노사의 신청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역별 최저임금에 비해 노사의 주체적인 역할이 중요시되며, 지역별 최저임금과 달리 매년 갱신되지 않아 세월이 흘러 지역별 최저임금이 산업별 최저임금보다 높아질 경우에는 자동으로 지역별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되어있다.

 

최저임금 인상 추이

일본에서는 매년 6~7월 중앙심의회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표준 금액을 정하고 있으며, 이를 지방심의회에 제시하고, 8월부터 지방 심의를 거친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10월부터 변경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지난달 결정된 최저임금은 역대 최고 인상폭인 31엔(약 300원)이 올라 전국 평균 961엔(약 9200원)으로 고시됐다. 이처럼 역대 최고의 인상 수준을 기록한 원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 상승 및 이로 인한 최저생계비 증가분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 이와는 별도로 2016년 아베 정권에서 발표된 ‘일본 1억 총 활약 플랜’의 일환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일본 1억 총 활약 플랜’이란 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바탕으로 한 경제 부흥 전략으로 여기에는 전국 평균 최저임금 1000엔을 목표로 매년 약 3% 수준을 인상하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2016년 823엔에서 2022년 961엔까지 6년간 약 17% 증가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사용자, 특히 중소기업은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영세 자영업자 및 기업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지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업무 개선 조성금’이라는 이름의 보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강제적 임금 인상뿐 아니라 임금이 최저임금 이상이어도 근무자의 임금 인상을 희망하는 사업자가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 사업장 내 가장 낮은 임금의 인상액과 이로 인해 임금이 상승하는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당초 계획과 달리 2020년에는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그러나 근로자에 대한 각종 지원 제도를 함께 마련해 소득이 현저하게 줄었거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가 최저임금 동결로 경제 손실을 입지 않도록 했다.

 

일본 최저임금제의 과제와 한국에 대한 시사점

최근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실제 생활수준에 맞는 임금을 보장하는 ‘생활임금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생활임금제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지역별 최저임금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전국 일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여당인 자민당 내에 ‘최저임금 일원화 추진 의원 연맹’이라는 의원 연맹까지 출범해 활동할 정도다.

전국 일률 최저임금제 도입 주장의 근거로는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할 정도로 최소생계비 수준에 명백한 차이가 없고, 오히려 산업별 최저임금을 설정 또는 강화함으로써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아울러 현행 지역별 최저임금이 지역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최저생계비 수준이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으며, 지역별 임금 격차로 인해 최저임금이 높은 지역으로 노동력이 집중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노동시장이 역동적이고, 노동조합의 의견 표출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어 일본 최저임금제와는 다른 방향성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다만 일본에서 지역별 최저임금제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 간 격차, 나아가 노동자 간의 소득 격차는 결코 다른 나라 일로만 묵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의 두 가지 측면인 ‘급여’와 ‘규제’에 있어 대표적인 급여적 소득보장이 공공부조라면, 대표적인 규제적 소득보장은 바로 최저임금제이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제도인 만큼 노·사·정이 협력해 노동자와 사용자 양측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합의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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