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황영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지난 7월, 거침없는 의견 제시와 강한 추진력으로 ‘검투사’라는 별명을 가진 경제인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동권리옹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냉혹함’과 ‘따뜻함’이 함께 떠올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금융투자협회,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유수의 금융기관 수장을 지낸 황영기 회장. 경제인으로서 그동안 쌓은 전문성을 재단 운영에 어떻게 발휘할지 들어봤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10대 회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포부와 각오를 말해 달라.

금융·경제 분야에 평생을 몸담으며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런 제가 우리나라 아동복지 분야 최고 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취임을 결심한 이유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저출산 시대를 맞이해 아동복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아이들의 행복이 우리 사회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아동의 입장에서 직접적인 복지사업을 펼쳐나가고자 한다. 또한 각 분야에서 소신을 갖고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들이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활동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어린이재단 74년 역사상 최초로 경제인 출신이 회장을 맡게 됐다. 경제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재단 운영에 접목시킬 복안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기후위기, 고물가와 경기 침체 우려 등 대외 환경이 녹록치 않다. 지난 세월 여러 기관의 수장으로 재임하며 조직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전략을 세워 실행해왔다. 경제에서 아동복지로 분야가 달라졌을 뿐, 재단에서 해야 할 일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임 회장으로서 74년이란 역사를 디딤돌 삼아 재단이 한 단계 도약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아이들을 위하는 기관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아동복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재단 설립 취지를 되새겨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가장 잘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뚝심 있게 일하려 한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기부문화의 확산과 정착뿐 아니라 ESG경영 측면에서 여러 기업들이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독려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후원은 곧 미래의 소비자를 위한 투자와 같기 때문이다. 경제인 출신으로서 기업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토대로 재단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해 보다 많은 기업들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나가고자 한다.

 

재단 후원자가 53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후원자 수도 많고, 유형도 다양할 것 같다. 국내 기부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올해 우리나라 인구가 약 5100만 명, 재단의 후원자는 54만 명이다. 국민 100명 중 1명은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2년 약 20만 명의 후원자가 불과 10년 사이에 2.6배로 늘어났다.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과 나눔 활동을 이어가는 후원회도 전국에 53개나 된다. 이와 같은 변화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급격한 경제 발전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나보다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한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민들의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부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소액이지만 타인을 위한 마음을 갖고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는 이들이 경제적 능력을 키워감에 따라 기부금액을 높이고, 이후에는 고액 및 유산 기부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기부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먹기에 따라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재단이 고액 후원자 모임 그린노블클럽과 유산기부 후원자 모임 그린레거시클럽을 운영하는 한편, 소액 간편 후원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플랫폼 구축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유 역시 그와 맞닿아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타인을 위한 기부가 결국은 스스로의 기쁨과 행복을 위한 일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그간 성공적인 성장을 이뤄냈듯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의 기부문화 성숙도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재단이 우리나라 기부·모금 시장에서 매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쟁 또한 치열하다. 현재 기부·모금 시장, 어떻게 보고 있나?

작금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명성’이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관들이 일반 기업들과 같이 수없이 새롭게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생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 기준점은 명확하다. ‘무엇을 하겠다’는 기관의 비전과 그를 위한 투명한 기금 집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 75주년을 맞는 재단은 아동옹호대표기관으로서 가장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하고 있다. 국내 NGO 중 최초로 국제비정부기관 인증기관 ‘어카운터블 나우(Accountable Now)’의 정식회원(Full Member)으로 등록된 것은 물론, 국내 공익법인들의 투명성, 재무 안정성,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로부터 6년 연속 별점 3점 만점을 받기도 했다. 2016년 이후 6년 연속 종합평가 만점을 받은 기관은 어린이재단을 포함해 국내 7곳뿐이다. 2016년에는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투명경영대상을 받기도 했다. 기부금을 받는 기관은 단순히 기부금을 받는 것을 넘어 기부를 결심한 후원자의 뜻까지 함께 생각하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그 소명을 다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난 8월,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해 독립한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극단적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재단 회장을 맡기 전과는 이러한 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랐을 것 같다.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아동과 청년,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소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연일 보도되는 이 같은 사건에 재단 회장으로서 단순히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적 결론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격차가 개인 삶의 질적 차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이 꾸준히 강화돼왔지만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하고, 이를 줄여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사각지대란 단순히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하는 문제를 넘어 지원하는 방식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으로 접근해 해소해나가야 한다. 자립준비청년의 비극 역시 단순히 지원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바람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고, 그들의 기본 생활을 위한 보호 체계 구축에 보다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단은 기존 자격증 취득 지원 및 진로교육, 정서지원 집단 프로그램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놓친 사각지대가 없는지 살펴보고, 더욱 촘촘한 지원책을 마련해나가고자 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최우선 당면과제는?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다.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 곧 재단에게 최우선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재단은 이 땅에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 특히 ‘보호권’에 주목하고 있다. 아동학대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고, 아동학대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참담한 사건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자연재해로 재조명된 반지하, 옥탑방, 비주택 등 ‘주거 빈곤’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상황이 결국 ‘빈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지원을 펼쳐나감으로써 아이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들을 순차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아동복지정책, 제도 등에 아쉬운 점과 개선 방안이 있다면?

우리나라 아동복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동지원 규모도 과거에 비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나 아동권리 신장을 위한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아동’이라는 특성으로 여타 유권자들과는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단이 아동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아동복지를 비롯해 우리가 직면한 주요 사회문제를 국가와 민간이 합심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저출산, 기후위기 등 거대 담론에 대한 국가와 민간의 역할과 활동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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